조도로프스키 감독, "한국영화는 日·홍콩 초월"


"한국영화가 보여주는 테마의 다양성과 촬영기법의 발전이 놀랍습니다."

세계적인 컬트 영화 감독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가 연출작 '홀리 마운틴'과 '엘 토포'의 개봉을 기념해 지난 5일 방한했다. 6일 오전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내한 기념 기자회견을 가진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자신의 작품이 국내에 정식 개봉되는 것에 대한 기쁨을 드러냈다.

'성스러운 피'로 국내에서도 많은 마니아 팬을 거느린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아방가드르, 초현실주의, 실험주의 등 다양한 색채가 가미된 작품들을 선보여왔다.이번에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1970년대 연출작 '홀리 마운틴'과 '엘 토포'가 오는 15일 씨네큐브와 필름포럼 등 국내 스크린에서 관객과 만나게 된다.

1927년 칠레 태생의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판토마임을 영화 스크린 안에 끌어들였으며 음악가, 작가, 무대 연출가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다.

백발이 성성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에 관심이 많아 한국에 오게됐다"고 말하는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여든에 가까운 나이에도 엉뚱함과 유머가 넘쳐났다.

한국영화 '왕의 남자'와 '괴물', '올드보이', '섬' 등을 인상깊게 봤으며 "기회가 되면 한국작가와 작업을 하고 싶다"고 열정을 드러낸 노장의 영화 철학을 들어봤다.

한국을 방문한 소감은

매일같이 집에서 영화를보는데, 한국영화를 매우 좋아하며 관심이 많았다. 한국영화에 관심이 많아 이번 내한이 이뤄진 것 같다. 두 작품은 영화를 굉장히 오래 찍었는데, 30년 정도 걸렸다.

제작자와 너무 싸우다 보니, 이제는 친한 친구가 된 것 같다. 어떤 적도 친한 친구로 바꿀 수 있다. 새롭게 리마스터링해 새 영화처럼 만들었다. 아무도 처음에는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 관객이 아닌 미래 관객을 상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야 영화를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멀리서 한국을 찾아왔다.

서구적인 영화에 동양적인 사상이 가미돼 있는데

'엘 토포'가 10년 전 미국에서 이 영화가 개봉됐을 때 사람들이 많이 놀랐다. 서부영화인데 동양적인 색채가 가미된 최초의 영화였다. '엘 토포'는 그 때 한창 명상 수련 중이던 시가에 만들었다.

미국 차이나타운에서 홍콩 영화를 많이 봤는데, 동양영화가 마음에 들었다. 영화에도 사상을 넣었다. 상징적인 표현이 마음에 들었고 '홀리 마운틴'에서는 불교와 도교, 연금술 등이 수록됐다. 한국말 할 수 있게 되면 더 많이 설명해 주겠다. 마를린 맨슨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작품이기도 하다.

'홀리 마운틴'은 존 레논에 의해 만들어졌다. '엘 토포'가 미국에서 개봉했을 당시 영화를 본 존 레논이 제작비를 지원해서 '홀리 마운틴'을 만들었다.

데뷔작이 '환도와 리'가 맞는지

친구의 대본이었고, 원래는 연극을 위해 제작됐던 것을 영화로 만들었다. 연극에서 생각난 점을 가지고 영화로 만들었다. 연극에서 한 것을 기억해서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는 산업이자 자본을 필요로 한다. '환도와 리'를 만들 때는 돈이 한푼도 없어 매주 토요일마다 영화를찍었다. 주중에 번 돈을 주말에 다 쏟아 붓는 식으로 촬영했다. 멕시코 영화와는너무도 달랐던 영화다. 아카풀코에서 그 영화를 촬영했을 때는사람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 지금도 이해를 못하겠다. 왜 그때 사람들이 나를 죽이려 했는지. 하지만 멕시코에서는 정말 다들 나를 죽이려 들었다. 그때 멕시코에서 했던 영화들과 내 영화는 너무도 달랐다. 가장 큰 문제가 된 장면은 소녀가 돼지를 낳았다고 하는 것이었다. 20대 때는 판토마임으로 만든 영화가 있었는데, 이제 막 보여지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데뷔작은 '환도와 리'가 맞다. 나는 연어같은 존재라 모든 흐름을 거꾸로 타고 흘러간다. 내 영화는 당시 상영되던 많은 영화와는 늘 정반대의 것이었다.

종교주의적인 색채가 강한데, 어떤 영향을 받나

관계가 분명 있다. 종교는 정치이자 섹스같은 인생에 꼭 있는 존재다. 그 모든 것에 다 영향을 받았다. 내가 이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시였다. 시는 모든 것을 다하는데 그래서 나도 영화에서 모든 것을 다했다. 이야기를 만들고 세부사항도 다 하고 의상, 음악, 편집, 연기까지 모든 것을 다 했다.

두 영화 모두 집단적 광기를 그리고 있는데, 당신인 유태계인 것과 관련이 있나

나는 칠레 출신이고 어머니가 절반이 유태인이다. 할아버지가 러시아 여자를 강간했는데, 어머니가 그 창피한 사건의 산물이었다. 어머니가 유태계고 나는 라틴 사람이다. 칠레는 멕시코처럼 라틴색을 많이 띠는 나라는 아니어서 멕시코는 인디오가 많은 나라인데, 칠레는 거의 유럽인같다. 당시 나는 칠레에서 초현실주의자여서 시가 굉장히 중요했다, 사회적 문제는 '홀리 마운틴'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당시 비판했던 것들이 나중에는 현실이 됐다. 남성들을 위한 성형수술같은 것이 당시에는 없었는데, 지금은 생겨났다.

3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외적인 면은 늙었지만 마음은 더 젊어졌다. 그때는 죽지 않을 사람처럼 살았는데, 지금은 죽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보석같다. 모든 사람을 바라볼 때마다 여행할 때마다 만나는 한사람이라는 것을 느낀다. 인간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개인적인 고통을 겼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알게 됐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의지가 있다. 세상을 바꿀수는 없지만 세상을 바꾸려 시작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발걸음에 불과하지만 의식을 갖게끔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 동물들이 인간의 큰 스승인데 먹고 있다, 인간이 모두 로봇으로 변하고, 도시가 시멘트 무덤으로 변하고, 정치하는 사람들이 인형이라는 의식들, 인생이 오로지 돈만 벌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들, 예술은 자신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치유를 위한 것이라는 것들, 의식을 깨우는 도구가 바로 영화다. 영화가 나에게는 권총이나 폭력이 아니다.

'듄' 프로젝트가 좌초된 것이 아쉽지는 않나

이미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는 않는다. '듄'에 대한 아쉬움은 만화로 해소했다. 아마 한국에도 출판됐을 것이다. 좌절이라는 것은 그저 길을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 '듄' 프로젝트에서 같이 일했던 스태프들이 나중에는 공상과학 영화에서 함께 일했다. 지금은 힘들지 않다.

다른 원작을 영화로 만들고 싶은지

만들고 싶다. 내가 쓴 작품을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데 관심이 있다. 영화를 지휘하는 것 뿐 아니라 쓸 줄도 알아야 한다. '엘 토포'를 가지고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앞으로는 보통 영화가 아닌 치유를 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방한 일정 동안 무엇을 할 계획인지

잘 모르겠다(웃음). 5일 동안 체류할 계획이다. 최근 미국영화는 열세살 먹은 애들 영화에 불구하다. 늘 똑같은 기법과 방법으로 그려내는 것에 지쳐있다.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영화에 있어 뭔가 새로운 것은 한국에 있다. 한국의 영화기법이나 테크닉, 배우들의 연기에 매우 관심이 간다. 기존 영화들과는 매우 다른 영화들이다. 한국영화들은 홍콩과 일본 영화를 초월한 수준이다. 한국의 몇몇 영화 감독을 알고 싶다. 그래서 한국에 왔다. 물론 내 영화도홍보할 생각이고.

좋아하는 한국영화는

특정 작품을 꼽기에 너무 많다. DVD로 보기 때문에 영화제목을 말하기는 힘들지만, 주제는 말할 수 있다. 영화감독 이름을 외우기도 너무 힘들다. '왕의 남자', '괴물', '음란서생', '올드보이',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씨', '공동경비구역 JSA', '한반도', '섬' 등 많은 영화들을 봤다. 다양한 테마가 굉장히 놀라웠다. 정치적인 문제들을 상업화해서 만드는 것도 굉장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밤 동양영화들을 본다. 이준익 감독과 약속이 있다. 모든 분들을 다 알고 싶다. 한국인들이 한국영화가 중요하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촬영기법의 발전이 굉장히 흥미롭다. 나중에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한국작가와 작업을 하고 싶다. 그런 기술들에 관심이 많다.

'엘 토포'에 실제 아들이 출연했는데 현재는 속편을 만든다면 역시 출연시킬 계획인지

내 아들은 현재 사십대고 연극을 하고 있다. 딸 둘이 있는데, 집안이 모두 예술가다. 함께 온 연인은 화가다. 베트남과 프랑스 혼혈인이다. '엘 토포' 후속작을 만든다면 아들 셋이 모두 나올 것이다. 작년에 연극을 한편 했는데, 온 가족이 모두 출연했다. 가족의 전통인데, 이건 재앙이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할아버지는 구두를 제작했는데, 내가 신발을 만든다면 떠다니는 것으로 만들고 싶다. 7년 전부터 신발을 하나만 가지고 있다. 그 신발은 친구들이 직접 만들어줬다. 첼레에서 떠나와 30년 동안 내게 남은 칠레 물건은 신발 밖에 없었다.

영화에 장애인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스페인의 미술에는 오랜 전통이 있는데, 괴물을 그리는 것이다. 그림 속 괴물들은 혐오감을 주지는 않는다. 감독을 짜증나게 하는 것은 지극지 정상적인 것들이다. 나는 희한한 것이 좋다. 8살 때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를 봤는데, 그런 괴물들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하나의 조각상처럼 보여지는 것이다. 피카소 이후 미의 개념이 바꼈다. 예술에 대해 미에 대해 특별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엘 포토'가 키가 작은 여자와 사랑에 빠졌듯 나의 연인은 150cm가 조금 넘는다.

관객이 어떻게 봐주길 바라는지

관객이 어떻게 보기를 절대 의도하지 않는다. 작품을 생각하지 작품의 산물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젊은이들이 와서 영화를 본다면 좋지만 연로한 사람이 와서 봐도 좋을 것 같아. 고양이, 새같은 짐승도 와서 봐도 좋을 것 같다.

조이뉴스24 정명화기자 some@joynews24.com 사진 김일권객원기자 ilkownk@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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