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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의 릴레이인터뷰] 류장수 아태위성산업 사장


안녕하세요,김광일의 릴레이인터뷰 코너입니다.아구스 조덕상 사장의 역동적인 창업이야기는 많은 기업가들이 벤치마킹할만한 좋은 성공사례로 평가됩니다.

조덕상 사장이 추천한 121번째 릴레이인터뷰 주인공 역시 벤처기업가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세계 1위 위성휴대폰 업체인 아태위성산업의 류장수(55 ) 사장입니다.

"기술력 하나로 창업 6년여만에 세계 위성휴대폰시장 1위에 오른 기업입니다.나이를 잊은 열정의 모험 기업가입니다. 정말 젊은 CEO들이 본받을만한 경영자입니다." 두 회사의 공통점은 현대전자출신 엔지니어들이 나와 만든 ‘현대맨 주축’ 벤처기업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알게된 사이라고 합니다.

아태위성산업 류장수 사장이 어떤 면에서 나이를 잊는 벤처기업가인지, 어떻게 세계 1위기업으로 뛰어오를수 있었는지, 그의 성공비결을 소개합니다.


지난 5월 10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시 소재 주메이라 호텔 컨벤션센터. 전세계 105개국 모바일위성통신 공급사 대표들은 행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류장수 사장을 애워싸고 온갖 질문을 쏟아낸다.

세계 1위 위성통신서비스회사인 UAE 뚜라야 社 유서프 사장이 동남아지역 대상 모바일위성통신서비스를 담당할 D3위성을 10월 1일 발사한다고 공식 발표한 직후였다. 뚜라야의 공급사로 선정된 세계 위성휴대폰 1위업체 아태위성산업에 대한 각국 사업자들의 관심은 지대했다.

기술력 하나로 창업 7년만에 세계 위성휴대폰 1위 업체로 등극한 화제의 기업, 아태위성산업. 아태위성산업은 2000년 설립된 위성휴대폰 및 위성통신설비(VSAT)개발업체. 류 사장은 국내 최초 장거리유도탄, 아리랑 1호 위성개발주역인 국내 손꼽히는 위성전문가다.

류장수는 48세에 창업한 늦깎이 CEO다. 은퇴를 떠올릴 나이지만, 그는 아직도 열정과 에너지가 넘쳐나는 '열정가'다. 3시간이 넘는 인터뷰 내내 쉼없이 사업이야기를 쏟아낼만큼, 격정적이고 진지하다. 혈기왕성한 젋은 기업가 못지않게 눈빛은 생기가 넘친다.

류 사장은 국책연구원 출신답지 않게 소신이 매우 강한 스타일. 호불호가 뚜렷하다. 특유의 고집과 반골기질은 그의 트레이드마크. 좀체 타협하지 않는다. 50대 중반의 나이지만, 불같은 성격과 강인한 추진력으로 지금도 글로벌 영업현장을 누비는 강철체력을 자랑한다.

17년간 국책연구소에서 잔뼈가 굵은 국내 손꼽히는 로켓, 위성전문가답게 세계 위성산업을 바라보는 그의 감각은 독보적이다. 창업 7년차, 류장수는 CEO로서 안정감과 풍부한 경륜을 느끼게 한다.

그의 마케팅은 늘 전투다. 항상 세계시장의 중심부만을 겨냥한다. 조직, 자금, 미래비전 등 분야별로 쏟아내는 경영노하우는 빈틈없이 탄탄하다.

아태위성산업은 지난해 385억원, 올핸 550억원의 매출을 바라보는 유망 기술벤처기업. 조만간 기업공개에 나설 계획. 세계적 핵심기술 보유기업답게 이미 장외시장에선 높은 거래가를 형성하고 있는 블루칩이다.

◆ 장거리 유도탄, '백곰'을 아세요

"국방부장관님, ADD 연구원으로 있는 ‘류장수’란 사람을 국회에 파견해줄 있습니까?" 1985년 7월, 이상희 의원은 정치적 이유로 개발이 중단된 장거리유도탄 개발재개를 탄원하기 위해 찾아온 ADD 연구원의 얘기를 듣던중 갑짜기 국방부장관에 전화를 건다.

류장수는 1976년, 대학졸업후 최고 연구기관인 ADD에 입사, 로켓설계 연구원으로 일한다. 당시 ADD는 박정희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장거리로켓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미국의 눈을 피해 극비리에 개발중이던 일명 '백곰' 프로젝트.

'세계 7번째 지대지 유도탄 시험발사 성공.' 1978년 9월 26일, ADD는 당당히 로켓발사에 성공, 미국을 놀라게 한다. 하지만 1979년, 박정희 서거후 찾아온 1980년, '서울의 봄'은 그에겐 절망의세월이었다. 전두환 정권은 미국의 압력에 굴복, 로켓개발을 중도포기한다.

26세 열혈청년, 류장수는 울분을 삭히지 못한다. 탈출구는 공부밖에 없었다. 1982년 KAIST 박사과정을 시작했지만 불과 3년만에 마친다. 얇고 튼튼한 로켓용 강화링 개발이 박사논문의 핵심. ASME 등 해외 유력 저널지에 2편의 논문을 낼 정도로 그의 연구실적은 탁월했다.

1985년 다시 ADD로 복귀했지만, 여전히 로켓을 개발할 방도는 없었다. 백방으로 뛰어다니다 이상희 의원을 만났고, 결국 “법을 만들어 로켓개발을 지원할테니, 도와달라”는 이상희 의원의 요청에 1년 6개월간 입법보좌관 생활을 한다. 일, 프랑스 등 선진사례를 심층 조사했다.

"그래, 군사목적이 아닌 비(非)군사용으로 로켓을 개발하는 거야." 그는 무릎을 쳤다. 일본, 프랑스가 1960년대 후반부터 미 견제없이 로켓개발에 전력투구할수 있었던 게 바로 비군사용으로 개발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법을 만들고, 1989년, 드디어 항공우주연구소가 출범한다.

◆ 거역할수 없는 CEO의 길

항공우주연구소에 합류한 류 박사의 직책은 우주사업단장. 불과 37세의 나이에 단장을 맡을만큼 그의 입지는 탄탄대로였다. 그는 이때부터 로켓탑재위성 개발에 나선다.93년 인공위성사업에 본격 착수, 1999년 12월 역사적인 아리랑위성 1호 발사에 성공한다.

2호발사까지 10년간 인공위성사업에 매달린다. 거칠것 없었다. 하지만 99년말,그는 또다시 좌절을 맛본다. 입법활동을 하며 백방으로 뛰어 연구소를 만들고, 17년간 매달렸지만, 기대했던 원장자리는 늘 항공분야 전문가에게 돌아갔다.

심한 무력감을 느꼈다. 퇴사를 결심한다. 한평생 몸담은 출연연구소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새로운 출발을 결심한다. 그 때 그의 나이 48세. “박사님,저희들을 거둬주십시요. 회사 설립하면 13명 모두 합류하겠습니다.” 이보다 앞선 1999년 12월중순, 류 사장은 다짜고짜 찾아온 현대전자 위성개발자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창업은 어쩔수 없는 수순이었다. 2000년초 사표를 던진다. “그런 양질의 엔지니어를 무더기로 구할수 있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죠.” SOS를 친 주역이 바로 현 아태위성산업 조영행 부사장. 2000년 6월, 양재동에 100평규모의 사무실을 마련했다.문제는 자금.

위성사업특성상 최소 100억원대의 자금이 필요했다. 놀라운 것은 그의 창업초기 자금동원능력. 이미 한번 사업해본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여기서 잠깐 류장수가 1983년 시작했다는 첫사업얘기를 살펴보자. 그는 KAIST박사과정 1년차이던 1983년, 전자저울업체로 유명한 카스의 전신, 부국엔지니어링을 창업, 사업에 나선다.

당시 KAIST는 박사과정 인재들에게 창업을 적극 권유할 때였다. 전자저울의 핵심기술인 로드셀은 그의 주특기 분야였다. KAIST 석,박사과정의 후배들을 동원,어렵지 않게 전자저울을 개발했다. 박사과정이 끝날무렵인 84년말,그는 고민에 빠졌다. ADD에 복귀할 것인가, 아님 ‘카스’사업을 계속 갈 것인가?

복귀를 결심하고,회사는 김동진(현 카스사장)에게 넘긴다. 김동진은 지대지유도탄 생산업체였던 대동공업의 생산담당 대리출신. 유도탄생산 업무로 만나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당시 박 정권은 미국의 눈을 피해 지방의 한적한 경남 진주소재 농기구생산회사인 대동공업을 통해 지대지유도탄을 극비리에 생산했다.

이후 김동진은 창업과 실패를 거듭하다 D중공업 서울사무소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수차례 설득끝에 겨우 회사를 넘겼다.이미 개발완료된 전자저울을 넘겨받은 김동진은 1985년, 양산에 착수한다.

제품은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카스는 일약 국내 최대 전자저울회사로 발돋음한다. 그가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위성사업에 과감히 뛰어들수 있었던 것도 첫 사업에서의 경험이 가장 큰 밑거름이 됐다.

“법정관리기업을 인수해준다면 90억원을 투자하겠습니다.” 2001년 류장수는 구조조정전문회사인 H사로부터 90억원의 투자를 유치한다. 하지만 그게 화근이었다.결정적 실착이었다.

물불가리지 않고 투자받은 게 결국 화를 불렀다. 하지만 사업초창기 수백억원대의 ‘자금문제’를 풀어가는 그의 수순은 그가 얼마나 뛰어난 비즈니스감각을 갖고있는지 잘 보여준다.

초기 2년은 ‘돈과의 전쟁’이었다.개인투자자로부터 30억원을 투자받았지만, 금새 바닥이 났다. 2001년,산자부로부터 180억원규모의 국책과제를 따낸다. 이어 그해 90억원의 투자를 추가 유치, 막대한 개발자금을 해결한다.

하지만 구조조정펀드의 투자옵션이 문제였다. 2001년 법정관리기업인 셋업박스업체인 S사를 인수하면서부터 그는 꼬박 1년간 ‘잠 못 이루는’ 힘든 세월을 보낸다. 500억원대의 부채를 청산하는 등 S사를 회생시키는데 전력투구했지만,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특히 모럴헤저드의 극치를 보여주는 금융‘작전’기법과 온갖 추악한 자본주의의 검은 얼굴들을 접하면서 류장수는 험한 비즈니스세계를 온몸으로 체험한다.

“1년간 법정관리회사를 인수,경영하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습니다.결국 정도경영을 해서 회사를 키워야지,금융기법을 동원한 편법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절감했죠.”

혹독한 수험료를 치렀지만, 총 270억원대의 자금을 확보하는 수완을 발휘했다.개발에 승부를 걸었다. 기술수준은 세계정상을 향해 빠르게 내달리고 있었다. 3년내리 적자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 운명의 저녁만찬,그 위대한 시간

“시간이 되시면 오늘 저녁을 대접할까 합니다.” 2003년 1월 어느 겨울밤, 삼성동소재 프랑스식당에서 류장수는 중동에서 온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저녁만찬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거란 사실을 그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명함엔 직책도 없이 이름만 적혀있었고, 위험부담이 너무 큰 구매제안을 한터였다. 류 사장은 그날 저녁 선약이 있어 식사대접도 못하고 그를 돌려보낸 상태였다. 하지만 행운의 미소는 류장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마침 그날 오후 저녁약속이 취소됐어요. 헌데 갑짜기 그 중동 사람 생각이 나더라구요.회사까지 찾아왔는데, 식사한끼 대접 못하고 돌려보낸게 마음에 걸리기도하고…." 혹시나 싶어 저녁무렵 호텔로 전화를 걸었다. 그 때부터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나중에 보니, 그가 세계 위성통신서비스 1위 기업, 자본금 규모만 1조원대가 넘는 UAE 뚜라야(Thuraya)사의 유서프 사장이 아닌가? 그가 한국을 방문한 것은 주거래처인 미국 휴즈사를 대체할 공급선으로 삼성전자가 가능한지를 타진하기 위해 온 것.

명실상부한 세계 1위 우주항공기업 휴즈의 일방통행식 관행에 더 이상 끌려다닐수 없다고 판단, 새로운 경쟁공급사를 찾던 중이었다. 하지만 위성휴대폰 20만대 양산을 제안했던 유서프 사장은 삼성전자로부터 물량이 너무 적다는 이유로 납품요청을 거절당했다.

귀국하려던 차에 주위 소개로 아태위성산업을 수소문,그날 방문했던 참이었다.중동 손님은 류 사장의 식사대접에 큰 감동을 받는다. 한국에 와, 누구하나 거들떠보지 않는 상태에서 손을 내민 류장수의 호의에 각별한 감동을 받은 것이다.

그날 저녁만찬을 계기로 유서프 사장의 태도는 일순간 호의적으로 급변했다. 류 사장은 너무 리스크가 커 당장 제안서를 낼수는 없고, 다만 2개월간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납품약속을 할수 없는 것은 우리 입장에서 위험요소가 너무 커 나중에 약속을 못 지킬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유서프 사장은 흔쾌히 수락했다.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위성통신 자료를 검토해야 하는데,우리가 아부다비로 가겠습니다. 단 비행기삯을 뚜라야가 제공해주기 바랍니다.”

유서프 사장은 6명 비행기표는 물론 호텔비까지 보내왔다. 2003년 4월, 핵심개발자 5명과 함께 UAE행 비행기에 올랐다.현지에서 꼬박 2개월간 기술자료검토에 들어갔다. 이 시스템에 맞는 위성휴대폰을 과연 만들수 있을 것인가,정녕 불가능한 것인가?

6명의 이방인들이 2개월간 밤낮없이 틀여박혀 꼼꼼하게 검토하는 모습에 유서프 사장은 또한번 큰 감동을 받는다. “나중에 그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처음부터 납품할수 있다면서 덜렁 오더를 달라고 했으면 아마 아태위성산업을 믿지 않았을 거라고 하더라구요.”

신중하게 접근한게 오히려 신뢰감을 쌓는 계기가 됐다. 2개월후인 7월, 제안서제출. 휴즈사 단독입찰에서 경쟁입찰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850억원규모 위성휴대폰 공급계약. 류장수는 누구도 넘볼수 없는 거대기업 휴즈와의 화끈한 한판승부로 첫 사업을 시작한다.

◆ 기적 같은 미 휴즈사와의 한판승부

2003년 10월 1일, 류장수 사장은 아부다비 뚜라야 본사에서 가진 유서프 사장과의 ‘계약조인식’에 사인을 한후 벅차오르는 가슴을 주체할수 없었다. 당당히 휴즈사를 제치고 19만대 위성휴대폰 납품권을 따내는 대이변을 만들어내기까지 6개월여간의 피말리는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전세계 위성통신산업계의 빅뉴스였다. 휴즈사는 충격에 휩싸였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사만이 만들수 있다고 확신했던 위성휴대폰 입찰에서 한국의 자그만 벤처기업에 패한 휴즈사는 믿을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이에 앞선 4월말, 뚜라야는 아태위성산업에 위성전화기 샘플을 요청했다. 불과 2개월만에 제품을 개발, 2만대를 납품했다.그야말로 ‘번갯불에 콩볶아먹기식” 개발이었다.

“기술력을 시험하기 위해 요청했던 것같습니다. 두달 꼬박 밤샘 작업했죠. 시제품 보더니 껌벅죽더라구요. 이런 성능은 처음이라며 무지 놀라워했습니다.” 우연한 저녁만찬, 그리고 2개월간의 자료검토. 우연한 만남 이후 7개월만에 850억원어치 물량을 따냈다. 뚜라야와의 인연은 아태위성산업의 숙원사업인 세계시장진출을 한방에 해결했다. 순식간에105개국 영업채널을 구축하게 된 것.

실제 아태위성산업은 뚜라야를 통해 전세계 105개국,200여개 회사에 위성휴대폰단말기를 공급하는 등 매머드급 글로벌 유통망을 구축하고 있다. 두 회사의 끈끈한 신뢰는 5년째 이어지고 있고,사업아이템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순풍에 돛단 쾌속항진이 시작됐다. 2003년부터 흑진행진.2003년 55억원에 이르던 매출규모는 2004년 100억원, 2005년 180억원,2006년에는 385억원으로 수직상승했다. 올해도 매출 550억원, 5년 내리 흑자행진이 확실하다.

아태위성산업의 세계 1위 등극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세계 최고수준의 위성휴대폰 원천기술을 갖고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 항상 개발비를 먼저받고 개발을 해주는 베짱영업을 고집하는 것도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적 자신감때문이다.

완벽한 준비끝에 우연히 찾아든 기회,류장수는 그 기회를 움켜쥐며 단박에 ‘세계 1’로 등극하는 성공신화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철저히 준비하면 기회가 반드시 옵니다.기회가 왔는데도 모르면 안됩니다.기회가 오면 반드시 잡아야합니다.”

류장수,그는 누구인가
52년 경북 안동생.서울대 기계공학과(72학번)졸.KAIST 석박사출신.국방과학연구소(ADD) 연구원출신.항공우주연구소 우주사업단장.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1호 총괄 책임자. 국내 손꼽히는 로켓위성전문가.저돌적인 추진력의 소유자.국가우주위원회 위원
취 미박물관 관람.그림보는 것(후기 인상파 그림을 특히 좋아한다)
운동조깅(25년넘게 거의 매일 5km씩 달린다). 골프(별로 재미가 없다)
존경하는 CEO기회되면 나중에 말하겠다
친한 IT맨항공우주연구원 박홍열 원장.삼성전자 신창섭 전무
10년후 모습건강하게 사회에 기여하며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컨설턴트일수도 있다.

◆ 왜 위성휴대폰인가

“여기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허영호 대장입니다.” 지난 5월초, 산악인 허영호 대장은 모방송사와의 생중계 인터뷰를 통해 현지 등반상황을 소개했다. 아태위성산업이 만든 위성휴대폰이었다. 아태위성산업은 뚜라야사를 통해 전세계 위성휴대폰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뚜라야의 세계 위성휴대폰서비스시장 점유율은 60% 수준. 위성휴대폰서비스 시장은 이제 막 시작이다. “10년전 이리듐, 글로벌스타 등 저궤도위성휴대폰이 모두 실패한 건, GSM, CDMA 등 휴대폰서비스가 빠르게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지상무선망이 도달할수 없는 오지와 망망대해에서의 유일한 통신망은 위성휴대폰.아태위성산업의 위성휴대폰은 휴대폰만한 작은 크기에 정확히 전파를 잡는 최고의 성능을 자랑한다.

“전세계의 70%가 바다 아닙니까?” 류장수의 꿈은 원대하다. 현재 전세계 휴대폰보급대수는 10억대규모.세계 위성휴대폰 보급대수는 50만대로, 고작 0.05% 수준. 향후 5년간 5%대인 5천만대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

“위성휴대폰시장은 이제 시작입니다.이제 전세계 휴대폰시장의 0.05% 수준입니다” 5년후 0.1%의 시장을 차지, 매출 5천억원대, 8년후에는 시장점유율 1%를 달성, 연매출 1조원대의 글로벌 대기업으로 발돋음한다는 게 그의 꿈이다.

아태위성산업,어떤 회사인가
설립일2000년 6월
자본금50억700만원
직원수 130명(개발자 115명)
사업내역VSAT 솔루션,위성전화기,위성휴대폰,위성중계기,위성안테나,PMP
사업계획매출 1조원대의 세계 초일류 위성통신기기 전문업체로 부상
매출목표550억원(2007년기준)
◆ 류장수의 성공론

“학교를 그만두다니, 정신이 있는 놈이냐,없는 놈이냐?” 1968년초, 경기고에 낙방, D고에 입학한 류장수. 자존심이 상한 류장수는 입학 두달여만에 부모 몰래 학교를 그만둔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15세 청소년은 남몰래 집과 독서실을 오가는 독학생활을 시작한다.

류장수는 같은해 8월, 검정고시에 합격한다. 류장수는 학창시절부터 황소고집이었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검정고시를 선택한 그는 결국 서울대 기계공학과에 당당히 합격한다.

류장수는 어릴때부터 목표를 세우면 뭐든지 끝장을 보는 집념의 소유자였다. “제 스스로 생각해도 좀 지독한 성격이었던 것같아요.하고싶은 거는 꼭해야 했거든요.” 48세 창업도 그의 저돌적 성격 때문에 가능한 일.

그의 성공론이 궁금하다. 첫번째 꼽는 덕목은 즉각 행동에 옮기는 ‘도전론’. “사실 겉으로 드러난 사람들의 피상적인 것들은 거의 엇비슷합니다.조금 부족하고 조금 뛰어난 정도죠.”

문제는 일이 닥칠 때 곧바로 행동하는 ‘행동지향적’가치관이 중요하단다. “일이 발생하면 도망가는 사람이 있지만,달라붙어 끝장보는 사람이 있죠.” 두번째는 두려움에 맞서는 ‘자신감’을 꼽는다. “열정은 그냥 나오는게 아닙니다. 확신과 자신감을 가질 때 발산됩니다.”

“실패는 그리 처참한 게 아닙니다.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죠.누구나 두렵죠.두렵다고 덮어두면 두려움은 계속 남아있습니다.어차피 닥칠건데 맞서 극복해야 합니다.” 세번째 꼽는 성공론은 욕심을 조직화하는 ‘동기부여론’이다.

“욕심은 아주 좋은 겁니다. 돈 많이 벌고싶은 건 좋은거죠.동기부여의 핵심입니다. 욕심을 조직화할줄 알아야 합니다.” 조직화하면 혼자할수 없는 걸 할수 있고, 회사를 가장 효과적으로 키울수 있다는게 그의 지론. 정직, 근면, 인내력, 그리고 기회포착 능력도 빼놓을수 없는 덕목이란다.

“기회를 잡지 못했다고 억울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준비가 덜돼 잡지 못했을 뿐이죠. 열심히 하면 누구나 기회는 오고, 잡을수 있습니다.” 그의 조직관리론의 핵심은 ‘사람관리’다. “사람은 누구나 해준만큼 합니다.적당히 대하면 적당히 하죠.먼저 베풀어야 합니다.”

그는 구조조정은 절대 하지 않는다. “사람을 짜르면 남아있는 사람에게 너무나 나쁜 악영향을 미칩니다. 나도 짤릴수 있구나 생각하는 순간,동기부여는 사라집니다.” 직원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이 중요하단다. “직원들은 믿어주는 만큼 일합니다.100% 믿어야 합니다.”

사업초기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한 아태위성산업. 50대 중반의 나이가 무색할만큼 역동적인 벤처기업가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류장수 사장, 그는 세계 위성산업계의 글로벌 리더로 우뚝서 있었다.

/김광일 칼럼니스트(GCM 대표이사) goldpar@gc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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