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산책 - 11] 도올 선생과 월스트리트


 

요즘 한국에서는 도올 김용옥의 KBS 논어 강의가 화제인 것으로 알고 있

다. 필자도 '인터넷'이라는 문명의 이기 덕분에 이 프로그램을 머나먼 뉴

욕 땅에서도 잘 감상하고 있다. 필자같은 386 세대들에게 '도올 김용옥' 이

라는 인물은 삶의 한 가운데에서 항상 벗어 나기 힘든 존재이다. 그것이 도

올 선생에 대한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불문하고 말이다.

대학 시절 강건너 안암골에 두루마기를 입고 강의에 나서는 기인 교수 한분

이 출몰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한문 시간에 중국의 사서

삼경을 고전 상식 수준 정도로 배웠던 우리에게 뜬금없이 노자나 장자의 사

상을 들고 나와 기발난 관점에서 가르친다고 하니 관심은 있었으나 또 한편

으로는 그저 괴짜 교수 한분이 나타나서 그러다 말겠지 하는 정도로 넘겨

버렸다.

그러다 대학 졸업 후 1-2년이 지났는데 난데없이 양심 선언을 터뜨리며 교

수직을 물러난 도올 선생. 그 후로 한의사가 되겠다고 원광대로 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참으로 '기이한 양반'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호기심은 결

국 도올 선생이 쓴 많은 책들을 접하게 만들었고 선생 특유의 달변과 독설

에 이끌려 책을 들고 날밤을 지새기가 일쑤였다.

그리고는.....

모든 책들을 다 읽었을 때 마음 속으로 많은 공감은 하였지만 늘 책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나 자신의 실제 삶과는 무관하게 지식의 유희 정도로 넘기

게 되는 경험을 했다.

뉴욕에 와서는 우선 서양 생활에 익숙해 지는 것이 급했던 탓에 자연 도올

선생같은 동양 철학을 찾게 될 기회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교포 사회에 흐

르는 전반적인 생활 패턴이 기독교인의 생활이며 나 또한 그런 공간 속에

서 돌아가고 있기에 동양 사상을 공개적으로 논한다는 것 자체가 배척받기

딱 좋은 환경이다.

그러다가 최근에 도올 선생이 논어 강의를 KBS 방송을 통해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넷 방송을 통해 열심히 보고 있다. 지금도 강의 하나를 듣고 나서

는 글을 쓰고 있다.

'월스트리트 산책 칼럼' 을 쓰다 말고 갑자기 왠 '도올 선생' 타령을 하는

가 하고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실은 도올 선생 스스로 지금까지 월스트리트에 대해 일언반구, 말씀 한자

락 없었다. '철학과 인류사'라고 하는 형이상학적인 대연구를 하시는 분이

어찌 돈 냄새 풀풀 나는 하수들의 놀이터인 형이하학적 월스트리트에 미련

이 있으시겠느냐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나 시쳇말로 한국이라는 나라의 경제적 목줄을 좌지우지 하는 곳이 바

로 월스트리트이며 또한 그 상황이 당분간 변할 것 같지도 않을 것 같기에

어쩌면 도올 선생과 같은 박식한 분이 월스트리트를 한번쯤 연구를 해 보시

고 그 특유의 과감한 언변으로 조각 조각 해부를 해 보았으면 하는 것도 필

자의 자그마한 바람이라면 바람이다.

월스트리트에 부는 중국 바람

오는 3월 25일 개최되는 제7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차우윤팻(주 윤발)과 미

셀여(양자경) 주연의 중국 무협 영화 '와호장룡'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 이 9개 부문 수상 후보에 오른 뉴스는 이미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실은 뉴욕의 중국 바람은 '와호장룡' 이 소개되기 아주 오래 전부

터 거세게 밀려 와 있었다. 이미 19세기 말부터 존재했으며 1940년대 후반

부터 중국인들이 급격하게 몰려 들어와 이제는 미국 내에서 가장 큰 중국

이민자들의 거주지로 자리잡은 뉴욕 차이나타운이 월스트리트에서 걸어서

2~3분도 채 안되는 지역에 형성되어 있다. 이 곳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은

대략 15만 정도로 추정된다.

이곳에 가면 중국에서 나오는 상품은 얼마든지 살 수 있으며 영어 한마디

못하는 중국 이민자들을 원없이 마음대로 볼 수 있다.

월스트리트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점심시간 1분, 1초가 아까와서 보통 제

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고 미국식 패스트 푸드점처럼 체인화된 중국 음식점

에서 'Take-Out'(외부 주문용)을 배달시켜 먹는다.

중국식 국수와 고기 덩어리 몇점, 그리고 브로컬리 야채를 살짝 데친 것을

함께 버무린 것이 즐겨 찾는 메뉴 중의 하나이다. 얼마나 영양가가 있을지

는 모르겠으나 직접 먹어 보면 느끼한 것이 그저 그렇다. 그러나 단지 시간

을 절약한다는 이유로 월스트리트의 수많은 증권 브로커들이 거치른 마천

루 숲 속에 조그맣게 자리한 중국 Take-Out 점에서 점심 배달을 시켜 먹는

다.

배달을 하러 오는 중국인들을 보면 너무나 허름하다. 며칠은 머리를 감은

것 같지도 않고, 가까이 가면 냄새도 막 난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니 의사

소통이 제대로 될리 만무하다. 그런데 컴퓨터 모니터가 웅장하게 자리한 증

권 회사 사무소에 들어 온 그들은 사뭇 당당하다. 누가 뭐라 그러든 그들

은 점심 배달을 제때 하고 음식값만 챙겨 가면 되는 것이다.

스마트한 복장의 월스트리트 증권맨과 초라한 차림의 중국 음식 배달원. 전

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은 월스트리트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다.

최근 월스트리트에는 때아닌 '풍수' 바람도 한바탕 불었다. 그리고 아직도

그 바람은 계속되는 것 같다. 영어로는 'Feng Shui' 라고 하는데 동양의 전

통적인 풍수 지리 사상이 뉴욕에도 흘러 들어, 돈많고 이색적인 멋을 추구

하는 상류층 사회, 또한 이 계층에 들어가 있는 일부 증권 브로커들이 집

안 가구 구조를 '펭슈이' 에 맞게 배치해야 돈도 벌고 건강도 유지한다는

식으로 생활한다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한편 차이나타운을 지나다 보면 쉽게 볼 수 있는 중국인들의 집단 기공체조

는 이제 뉴요커에게도 너무나 많이 알려져 요즘에는 중국인들 사이 사이에

금발의 백인 미녀들도 끼어서 기공 체조를 하고 있는 것을 가끔 볼 수 있

다. 영어로는 'Tai Chi' 라고 불리운다.

재키 챈(성룡) 이나 제트 리(이연걸)의 중국 영화가 뉴욕 시내 대형 비디

오 대여점의 한 벽면을 당당히 채우고 있으며 차우윤팻(주윤발) 의 멋진 남

성미는 이제 미국인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사실로 당당히 입증이 되

고 있다.

'매트릭스' 영화를 통해 선보였던 중국식 무협지 개념과 톰 크루즈의 '미

션 임파서블 2' 나 카메룬 디아즈 주연의 '미녀 삼총사' 에 나타난 무술 장

면은 이제 '와호장룡' 을 거치면서 미국인들의 머리 속에 단단히 자리매김

하며 하나의 새로운 문화 개념으로 확고한 영역을 차지해 버렸다.

영화나 음식, 가구 이외에도 뉴욕에 부는 중국 바람을 일일이 나열하려면

시간이 모자란다. 뉴욕 시내 곳곳에 보이는 간이 기공 안마사들은 나무로

만든 안마대를 무슨 보검처럼 쓰다듬으며 강호 검객처럼 특유의 덤덤한 미

소를 지닌채 수많은 뉴요커들의 등을 마사지해 주고 있다. 또한 그 가운데

에 미국인들의 이름을 한자로 써주며 그 뜻을 풀어 주면서 돈을 벌고 있는

중국인들도 있다.

한마디로 지금 월스트리트가 자리한 뉴욕은 차이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

다.

월스트리트에 부는 일본 바람

월스트리트에는 중국 바람만 부는 것은 아니다. 일본 바람도 거세다. 그 돌

풍의 진앙지는 바로 스시(생선 초밥) 와 포케몬이다.

날 것을 먹지 않던 미국인의 입맛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 생선 초밥 문화.

실은 월스트리트와 일본 문화가 만난 결과이다. 월스트리트의 증권 브로커

들은 참으로 어린 나이에 돈을 많이 버는 여피족 문화의 원천지이다 보니

즐기는 취향도 특별하다.

증권 브로커들이 즐기는 그러한 특별한 취향의 하나로 시작했던 것이 '스시

(sushi)' 인데 이제는 그 여파가 뉴욕 전역으로 퍼져 생선 초밥 문화가 뉴

욕에서는 당당한 음식 문화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영향력은 이제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가려 하고 있다.

최근 뉴욕에서 벌어 지는 각종 재정 관련 세미나나 파티에 가면 생선 초밥

메뉴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거의 드물다고 보면 된다. 이제 월스트리트의

입맛은 간이식 중국 'Take-Out' 음식에 이어 고급식 일본 '스시' 가 그 뒤

를 잇고 있다.

지난 3년간 월스트리트에서 인터넷 산업이 아니면서도 가장 관심을 끌었던

주식으로 '포 키드 엔터테인먼트 사 (4 Kid Entertainment)'를 들 수 있

다. 이 회사는 1998년 가을 주당 가격이 단 5달러에 불과했으나 1년도 채

안되는 기간에 90달러대를 육박하며 엄청난 상승을 한 회사로 일본이 배출

한 최대의 히트 상품 '포케몬' 에 대한 아시아권 이외 지역의 특허권을 가

지고 있는 회사이다. '포케몬' 이라는 단어가 주는 위력을 한마디로 대변

해 주는 사건이다.

포케몬이 미국 사회에서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는 초등학교 아이들의 문방

구 용품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포케몬 만화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피카

추 하나가 미국 전 아이들의 사고를 지배해 버렸다. 2차대전 당시 진주만

폭격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포케몬의 열광적인 초기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은 지금에도 TV만 켜면 포케

몬이고, 영화관에 올리면 무조건 대박인 것이 포케몬 영화다. 이제는 한술

더떠 '디지몬 (디지털 몬스터)' 이라는 만화를 통해서는 아예 대 놓고 미

국 아이들에게 일본말을 하나둘씩 따라 가르치고 있는 판이다.

월스트리트에 무섭게 불고 있는 이런 중국, 일본 현상을 우리 도올 선생은

과연 어떻게 해석하실지 필자는 그것이 궁금하다.

이 정도 이야기를 하면 독자들은 월스트리트에 한국 바람은 없느냐고 물을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 바람은 없다고 보면 된다. 월스트리트 주변에 많은 델리 가

게(한국으로 치면 세븐일레븐과 같은 편의점 스타일의 식료품 가게)를 한

국 교포들이 많이 운영하는데 그 가게에서 월스트리트 브로커들이 음료수

나 스낵을 사 먹고 있는 정도이다.

미국 여성이나 남성들의 손톱 손질을 해 주는 뉴욕의 네일 케어 가게는 한

국 교포 여성들이 완전 독식하고 있지만 한국적인 문화와는 전혀 관계없는

업종이다.

이제는 세계 경제를 쥐고 흔드는 월스트리트에 한국적인 특색을 가진 문화

나 음식을 가지고 치고 들어갈 아이템이 없을까를 우리 국민 전체가 한번

쯤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월스트리트로 공격 감행: 중국 투기꾼들

월스트리트에 최근 '데이 트레이딩' 바람이 불면서 중국계 이민자들의 미

국 증권 투자 열풍이 강하게 불고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우리 한국인들에게

도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도박을 즐기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민족적

기질이 월스트리트의 초단타 거래 경향과 접목되면서 중국인들이 월스트리

트를 향해 '돌격 앞으로' 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21세기의 가장 강력한 경쟁 국가로 중국을 제1순위에 올려 놓

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에는 중국인들이 한마디로 겁이 없다는 것을 들고 싶다. 그것

도 국민 전체가 그런 기질을 강하게 가진 것으로 이해된다.

영어 한마디 못해도 지금 미국내 중국인 중의 많은 투기꾼들은 월스트리트

라는 전쟁터 속에서 처절한 생존의 경쟁, 욕망 추구의 경쟁을 벌이고 있

다. 일부는 크게 번 사람도 있고 또 일부는 엄청난 돈을 날린 사람들도 있

다.

중국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뉴욕 차이나 타운 내의 '데이 트레이딩 센

터'에 가본 적이 있다. 70도 넘어 보이는 중국인 할아버지부터 임신 7개월

은 된듯한 중국인 아주머니까지 모니터를 열심히 지켜 보면 알아 듣지도 못

할 소리를 해대며 떠들어 대고 있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자신들이 거래하

는 미국 회사 주식에 대해 꿰어 차고 앉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뉴욕에서

발간되는 중국어 일간 신문에도 미국 증권 소식이 한면 가득히 차지하고 있

다.

'월스트리트에 대해 나만큼 잘 알고 있는 동양인이 있을까' 하던 생각이

이 곳에 가니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을 느낀다. 필자가 알고 있는 월스트리

트를 이미 많은 중국인들은 엄청난 돈을 투기적 거래에 베팅하면서 처절하

게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들 중에서 월스트리트의 실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부를 획

득하는 원리를 배우며 다시 이를 중국 대륙의 수많은 후배 투자가들에게 퍼

뜨리는 사람들이 나오기만 한다면 그건 과히 미국 입장에서는 위협적인 일

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차이나 타운내 '데이 트레이딩 센터' 에 가면 그렇게 시끄러운 가운데에서

도 전율감을 느낀다. 월스트리트와는 또 다른 중국식 무림 강호의 분위기

를 느끼는 것이다.

이제 과연 이곳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앞으로 '월스트리트 산책 칼럼' 을 통

해 우리 한국인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도올 김 용옥 선생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까?

오늘 월스트리트를 산책하면 도올 선생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리고 또

어디선가 장 사익 선생의 '찔레꽃' 노래도 크게 들릴 것만 같다.

/뉴욕=티케이 김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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