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릴레이 인터뷰]박철우 드래곤플라이 사장


안녕하세요, 김광일의 릴레이인터뷰 코너입니다. 모빌리언스 황창엽 사장의 드라마틱한 창업이야기는 어떻게 보셨는지요.

무릇 성공한 기업가들은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천운처럼 믿고 숱한 역경을 끝까지 밀어부치는 공통적인 특성을 갖고있는 듯합니다.

황 사장 역시 격변의 세월에 '창업'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집념끝에 국내 모바일결제 1위 업체로 등극하는 성공스토리를 만들어냈습니다.

황 사장이 추천한 124번째 릴레이인터뷰 주인공은 국내 슈팅게임 1위업체인 드래곤플라이 박철우(43) 사장입니다. 그 역시 엄청난 완력의 소유자입니다.

"국내 게임산업을 이끌 차세대 주자입니다.열정과 추진력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CEO입니다."

드래곤플라이 박철우 사장이 어떤 역경을 헤치며 완력으로 성공의 반열에 올랐는지, 그의 게임사업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강남 논현동 언덕배기 고급주택가 골목. 대형 가구점들이 즐비한 대로변에서 5분여를 걸어가면 높다란 담벼락너머 넓은 정원에 멋진 자태를 뽐내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늘어선 대형 고급 단독주택들이 죽 들어서 있다.

고급 단독주택 몇채를 지나치면 세련된 디자인의 3층짜리 오피스빌딩이 한눈에 들어온다. 얼핏봐도 잘나가는 건축가가 디자인, 최근 완공한 신축 빌딩임을 알수 있다.

창업 13년만에 마련한 신축사옥 덕에 요즘 드래곤플라이 직원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른다. 조용한 고급주택가에 위치해 조용하고 쾌적하기 그지없다.

박 사장은 7년차 CEO다. 마케터출신인 그는 매우 부드럽고 유연한 스타일이다. 상대방을 배려하며 설득하는 커뮤니케이션스킬은 그의 완숙한 경영능력을 짐작케한다.

의사결정이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상황에서 항상 토론을 앞세우는 ‘설득과 협상’의 리더십을 고집한다.

훤칠한 큰키에 완소남 같은 분위기는 엔터테인먼트 CEO로서의 자유분방한 이미지과 잘 맞는듯 하다. 게임시장을 내다보는 감각은 아주 독보적이다.

어떻게 해야 게임유저들을 가장 편하게 해주면서도 돈벌며 롱런할수 있는지를 정확히 맥을 짚는다. CEO 7년차답게 국내외 시장을 아우르는 시각과 향후 경영에 대한 포석은 아주 설득력있고 자신감이 넘친다.

드래곤플라이는 RPG게임 '카르마'와 불멸의 슈팅게임 '스페셜포스'로 유명한 국내 FPG(1인칭슈팅게임)게임분야의 명실상부한 1위 회사다.

스페셜포스는 2005년말, PC방을 독식했던 넥슨의 '카트라이더'를 밀어내고 PC방 게임 1위를 차지해 일약 스타게임으로 떠올랐던 슈팅게임. 95년 설립돼 13년 역사를 가진 FPG 게임개발사다.

연 매출규모는 600억원대. 현재 미국,일본,중국 등 5개국에서 서비스중이며 내년에는 4개국에서 추가 서비스할 계획이다. 내년에 코스닥 입성한다.

◆ 난형난제, 그 놀라운 찰떡 궁합

"형, 난 게임개발에는 정말 자신이 있어.형이 경영을 맡아주면 정말 멋진 게임을 개발할수 있을 것같아."

99년말, 친동생인 박철승(현 드래곤플라이 부사장겸 CTO)은 개발과 경영 두가지를 더 이상 혼자 하기 힘들다고 판단, 형에게 동업을 제안한다.

당시 박철우는 마침 한솔PCS(KTF에 인수합병)를 그만두고 이것저것 사업구상중이었다. 본인 스스로도 스포츠게임쪽을 고민하고 있던 터였다. 개발에만 열정을 쏟고싶다는 동생의 요청에 박철우는 결국 2000년 1월, CEO로 합류한다.

직원은 총 12명. 비록 구멍가게수준이지만, 합류를 결정한 것은 친동생이자 개발자인 박철승 CTO의 기술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

박철승 부사장은 대학졸업후 게임스쿨을 다니며 게임개발기술을 배운 국내 1세대 게임개발자. 게임학원 강사로 활동할만큼 그는 뛰어난 개발자였다.

박철승은 95년 2월, 게임스쿨 동료 4명과 함께 창업의 길로 나서, '운명의 길', RPG게임인 '카르마', '호빵맨' 등을 개발, 6년째 회사를 이끌고 있었다.

당시 패키지게임으로 1카피당 1만원 정도.불법복제가 판을 치던때라 1만장 정도 팔리는 히트 게임의 매출은 대략 1억원 정도로 미미했다. 박철우는 직접투자를 통해 1대주주로서 경영전면에 나선다.

재미있는 것은 박 사장과 동생인 CTO의 관계다. 둘은 처음부터 서로의 업무영역을 확고하게 구분했다. 기술개발은 부사장이, 마케팅-조직관리는 박 사장이 전담하는 체제였다.

놀라운 것은 형제지간이지만, 두 사람은 지금까지 7년간 서로의 영역에 대한 월권이나 이견으로 갈등을 빚은 적이 한번도 없다는 사실이다.

"저는 새로운 게임의 개발방향이나 기본 컨셉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CTO의 의견을 존중합니다.물론 마케팅등 경영전반에 관해서는 저의 결정을 따릅니다."

박철승 부사장은 박 사장이 회사에 합류한 이후 지금까지 한번도 반말을 써본적이 없다. 회사내에서는 물론 심지어 부모님댁에 친지들이 다모인 사적인 자리에서도 지금까지 늘 ‘사장님’이란 호칭으로 부른다.

두 사람은 매우 바람직한 리더와 스텝의 관계를 보여준다.무려 7년간 싸우거나 갈등 자체가 애당초 없다보니, 직원들조차 신기해한다.

사무실은 강변 테크노마트 벤처센터. 박 사장이 합류하면서 드래곤플라이는 이때부터 서서히 규모의 경제를 위해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 밑바닥 인생과 눈물젖은 빵

2002년 9월말, 테크노마트 사무실을 나와 인근 한강고수부지로 나선 박철우는 연거푸 담배를 피워물며 벌써 한시간째 한강을 응시하고 있었다.

내일 모레가 직원 월급날인데, 몇십만원밖에 남지 않은 통장잔고를 확인한 그는 무작정 한강으로 나섰다. 한달째 백방으로 뛰었건만 이날도 빈손으로 들아온 터였다.

"당장 낼 모레 급여날 지출해야할 4천만원을 어디서 구할까?" 한참 한강을 응시하던 박철우는 불현듯 떠오르는 가족들의 얼굴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뜨겁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돈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져내리는 처절한 순간, 가족은 박철우에게 유일한 마음의 안식처였다. '무력감'과 밀려드는 '서러움,' 그 것은 살아오면서 난생 처음 겪어보는 처절한 ‘바닥인생’그 자체였다.

‘자금과의 전쟁’은 이미 그가 2000년 CEO로 합류하면서부터 사실상 잉태하기 시작했다.

박 사장은 기존 ‘카르마’게임을 FPS 온라인게임으로 만들자는 파격적인 개발계획을 받아들인다. 당시만해도 국내는 거의 RPG게임만 성공하는 추세다.그러다보니 FPS게임을 개발한다고 하면 업계에서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해외의 경우 FPS게임비중이 더 큰 점을 감안, 향후 해외진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FPS게임에 승부수를 던지는 다소 무모한 도전에 나선 것. "FPS게임으로 해외시장에서 제대로 인정받고 싶더라구요. 그 길을 가기로 작심했죠."

2001년 11월,개발에 착수했다. 그 것이 시련의 전주곡이었을 줄, 박철우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원대한 목표뒤엔 늘 돈이 문제였다. 개발기간은 무려 2년.

CEO 박철우는 이때부터 2년간 운영자금과의 전쟁을 시작한다. 창투사로부터 투자받은 5억원은 2001년 가을쯤 바닥이 났다. 2001년말부터 서서히 자금압박이 시작됐고, 2002년 새해벽두부터 통장잔고는 늘 바닥이었다.

그의 일상은 이제 늘 '돈 구하는 일'이었다. 개발에 착수한 2001년말부터 서비스를 오픈한 2003년 2월까지 2년여간 매출은 전무했으니, 자금난은 당연한 결과.

그날, 직원 월급줄 돈을 구하지 못해 한강으로 나섰던 박철우. 신용카드란 신용카드는 모두 대출을 빼썼고,주위 융통할수 있는 돈이란 돈은 모두 융통한 상태였다.

벌써 6개월째 임원들 급여는 한푼도 못준 상태고,부장급은 50%만 지급해오고 있었다. 물론 직원들 급여는 한번도 밀리지 않았다. 막고, 돌려막고 돌아서면 또 월급날이었다.

CEO 박철우의 사장이야기를 이렇게 치열한 ‘자금과의 전쟁’으로 시작됐다.

◆ 처절한 실패의 쓴잔

한강변에 서서 뜨거운 눈물을 뿌렸던 박철우는 그 다음날 자신의 변화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업이 망하면 모든게 '제로'가 된다는 사실. 6개월간 생활비조차 갖다주지 못할 정도로 천길 낭떠러지 '벼랑끝'에 몰린 무기력한 상황.

"그 다음날 가족들에게 돈 얘기 하는데 그렇게 편할 수가 없더라구요." 아내를 설득해 자신의 집담보대출은 물론 본가 부모님 집, 처가댁 집을 차례로 담보로 집어넣고 대출을 받았다.

박 사장은 2년간 쏟아부은 총 개발비 15억원의 절반이상을 대충 이런식으로 자신의 친인척 집담보로 해결했다.

늘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다. 우연히 최고경영자(CEO)로 벤처무대에 뛰어든 박철우는 사업입문한지 1년만에 그렇게 죽음을 넘나드는 자금과의 전쟁을 무려 2년간이나 치열하게 펼치게 된다.

드디어 2002년 12월 중순, 오픈베타서비스 개시. 첫날 몇천명이 몰리더니,3일후 동시접속자수가 1만명, 한달만에 3만명, 두달만에 5만명을 돌파했다. 대박이었다.

2개월만에 곧바로 월 9,900원 정액제 유료화에 들어갔다. 하지만 동접이 9만명까지 오르는데도 월 매출은 3억원대로 제자리 걸음이었다.

통상 동접 5만명을 넘으면 월매출 10억~20억원대가 돼야 정상. 비슷한 동접의 리니지,뮤의 매출은 10배나 많을 정도로 폭발적이었다.하지만 카르마의 월매출이 3억원대에 그쳤다. 뭐가 문제인가? 분석을 거듭했다.

실패의 원인은 바로 게임의 수익모델이 없었던 것. "유료아이템 등 게임 수익모델은 기획단계부터 준비해야하는 데,사전에 기획하지 못하고 게임개발이 거의 끝난후 하다보니,몸에 맞지 않는 옷이 돼버린 셈이 됐죠."

너무나 값비싼 교훈이었다. "전 그때 게임만 잘 만든다고 되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정말 뼈져리게 느꼈습니다." 2003년 4월, 임원회의. 박철우는 '카르마'의 포기와 차기작개발을 선언한다.

2년간 '자금과의 전쟁'을 치르며 개발한 카르마의 상용서비스를 포기한 것은 없는 살림에 15억원대의 개발비를 쏟아부은 소규모 개발사입장에서는 상상조차하기 힘든 결정이었다. 단돈 몇억원이라도 뽑아야하는 상황이기 때문. 그 충격은 엄청났다.

◆ 박철우의 승부수

"카르마 온라인이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임입니까? 카르마가 과연 우리 회사의 성장을 담보해낼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카르마 온라인으로 월 10억원의 매출을 만들 방법이 있습니까?"

카르마 유료화를 단행한지 2달도 채안돼 사장이 카르마의 실패와 포기를 선언하자,핵심임원들조차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한다.

"온라인게임수명이 보통 3~5년인데,이제 두달해보고 접는 건 너무 성급한 판단이아닐까 합니다.월매출이 3억원에 불과하지만, 모두 전력투구해 이거라도 조금씩 매출을 올리는게 최선이지 않을까요?"

임원들의 반발은 당연했다. 박철우의 CEO로써,리더로써의 잠재력은 이때부터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그는 냉혹한 승부사였다.그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도 월 3억원을 포기하는 극단의 결정을 선택했다.

거듭된 공방과 갑론을박. 1주일후,결국 CTO가 나섰다. 임원들은 CTO의 기획제안에 다시한번 술렁인다. "사장님, 차기작 개발을 시작하겠습니다. 컨셉은 수익모델 업그레이드,완벽한 완성도 등입니다."

CTO는 마치 준비라도 한 듯 일사천리로 쏟아냈다.거의 완벽한 기획안이었다. CTO의 감각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떤 게임을 준비하겠다"가 아니고, 기능, 내용, 개발비와 인력, 소요개발기간 등등을 담은 개발기획안을 내놓았던 것.

전담인력은 10명의 소수정예로 배정, 2003년 5월,또다시 개발에 착수했다.박 사장은 두가지 원칙을 정했다. 게임으로서의 완성도와 함께 유저들에게 강요하는 매출은 절대 안된다고 못박았다.

즉 유료아이템을 무작정 밀어내는 식의 매출모델은 처음부터 ‘No’를 천명한 것. "카르마 실패를 통해 유저들이 피부로 못느끼는 수익모델을 개발한다는 점을 뼈져리게 깨달았죠."

그들은 그렇게 또다시 1년간 개발에 매달린다. 개발자들이 한달에 퇴근하는 횟수는 1, 2회정도. 사무실 바닥 매트릭스위에 웅크린 십여개의 슬리핑백은 매일 새벽 벌어지는 사무실 풍경이었다.

전 직원들의 꿈은 제대로된 FPS(1인칭슈팅게임) 온라인게임을 만들어보자는 일념뿐이었다. 유료화 정책은 종이에 물스며들 듯 자연스레 퍼지는 ‘스펀지’방식.

"철저히 무료입니다. 무료로 이용해도 게임을 즐기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죠.단 게임을 조금더 재미있게 즐길 때 돈주고 아이템을 구매할수 있도록 했습니다."

여느 유료 게임아이템과는 차원이 다른 이런 컨셉은 카르마의 실패를 경험한 드래곤플라이 개발팀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유료화 방식.

1년후인 2004년 3월,드디어 클로즈베타서비스로 모습을 드러낸 게임은 바로 그 유명한 살아있는 슈팅게임의 전설, '스페셜포스'였다.

박철우,그는 누구인가
64년 경기 김포생.서울대 심리학과(84학번).미국 USC MBA(경영학석사).광고기획사 오리콤,한솔PCS 출신의 마케팅전문가. 온화한 성품에 조정능력이 뛰어난 전형적인 리더형 CEO. 강한 추진력과 지칠줄 모르는 열정의 소유자.
취미골프(핸디 12)
존경하는 CEO 고 정주영 현대 회장(진취적인 도전정신은 벤처기업가가 볻받아야하는 자세다). 천양현 NHN저팬회장(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업가다)
10년후 모습 드래곤플라이 글로벌사업에 힘쓰고 있을 것이다

◆ 스페셜포스의 대폭발,카트라이더를 밀어내다

"팀장님, 정말 고생 많이 했습니다.너무 고생했으니 반드시 좋은 결과있을 겁니다.우리 두달안에 동접 1만명을 돌파해봅시다."

스페셜포스 오픈베타서비스 바로 전날, 박 사장은 스페셜포스 퍼블리셔인 네오위즈의 팀장과 실무자 셋이서 술한잔 했다. 아침해가 중천에 떴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포장마차를 나섰다.

"사장님, 첫날인데 벌써 4,000명을 찍었습니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오후 늦게 사무실에 출근한 박 사장은 직원의 보고에 술이 확깨면서 등골이 오싹해졌다.

당시 온라인게임은 2~3개월만에 동접 1만명을 돌파하면 대성공인 상황이었다.수없이 쏟아지는 온라인게임의 대부분은 동접 5천명미만에서 끝난채 시들어버린다.

그런데 스페셜포스가 오픈베타개시 보름만에 동접자수 1만명을 돌파하는게 아닌가? 믿기 어려운 대박이었다. 스페셜포스는 특수부대의 전용장비와 무기를 활용해 게임을 즐기는 밀리터리 FPS온라인게임.

퍼블리셔인 네오위즈에선 난리가 났다.그동안 10개정도 퍼블리싱한 FPS게임이 모두 실패했는데,스페셜포스가 완벽하게 대박을 터트리기 시작했기 때문.

매달 기록경신이었다. 해를 넘긴 2005년 12월, 스페셜포스는 이때부터 13개월동안 79주 내리 전국 PC방 순위 연속 1위라는 전대미문의 대기록을 세운다. PC방 점유율 20%를 넘는 유일한 게임으로 기록될만큼 스페셜포스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부동의 1위 스타크래프트를 끌어내린 카트라이더는 이때 스페셜포스에게 1위 자리를 내주고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스페셜포스의 또다른 성공은 절묘한 유료화전략. 2004년 11월말,게임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ID를 코드명으로 바꿀 때 돈을 내는 희한한 유료화를 단행한다.

"가입시 ID로 게임을 즐기다가,코드명을 멋있는 걸로 바꾸려는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유저들이 게시판에서 코드명 바꿔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피크에 다다랐을 때 이를 유료화했죠. 게임아이템과는 전혀 무관한 ID변경이죠."

반응은 엄청났다. 안티는 커녕, 고맙다는 글들이 게시판을 가득 메웠다. 1년이 지난 2005년 5월, 역시 게임하곤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유료아이템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박 사장은 노골적인 유료아이템을 밀어내는 것은 게임수명을 단축시키는 자살행위임을 누구보다도 잘알고 있었다. "드래곤플라이도 먹고 살아야지"라는 동정론 글들이 게시판을 도배하면서 아이템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순식간에 자리잡았다.

매출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매달 매출이 두배씩 늘어났다. 2005년 6월, 월 10억원을 돌파했고,12월에는 월매출이 50억원으로 폭증했다.

2006년 들어서도 월평균 40억원규모의 매출이 꾸준히 이어졌다. 드래곤플라이는 스페셜포스 하나만으로 2005년 1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린데 이어, 2006년 270억원, 올해는 수출을 포함 600억원대의 매출을 무난할 것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다.

'쩐과의 전쟁'을 치르던 박철우의 얼굴엔 근 3년여만에 환한 웃음이 번지기 시작한것도 그 무렵이었다. 죽다가 살아난 그의 얼굴엔 안도의 한숨이 짙게 퍼졌다.

◆ 박철우의 꿈

스페셜포스가 국내 FPS온라인게임의 살아있는 전설로 평가받는 이유는 피크타임이 무려 2년간이나 지속될만큼 경쟁 게임에 비해 엄청 길다는 점.즉 게임수명이 무지 길다는 얘기다.

해외 유명 퍼블리셔들은 어떤 수익모델구조이길래 한달에 50억원씩 매출을 올리는지,그 노하우가 뭔지에 깊은 관심을 쏟는다.해외에서의 공동사업 러브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스페셜포스의 위력은 해외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2006년 여름 서비스를 시작한 태국에서는 4만명의 동접자수를 기록, 태국 온라인게임 시장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스페셜포스는 태국에서 국내의 ‘스타크래프트’수준으로 대접을 받는다.

대만, 일본, 중국, 미국 5개국에 이어 내년에 4개국에서 추가 서비스를 개시한다.박 사장은 요즘 e스포츠 활성화에 승부를 걸고있다. 스페셜포스 국가대항전을 1년에 2회씩 개최하고 있다.지난 10월에는 태국서 대회를 열었다.

그가 e스포츠 국제대회를 여는 것도 스페셜포스를 있게 한 유저들을 위해 것. 박 사장은 요즘 슈팅게임외에 스포츠장르를 선택했다.

스카이다이빙게임인 ‘라카산’을 비롯해 테니스게임인 '골드슬램'도 최근 서비스를 개시했다.스포츠게임을 통해 해외시장에 본격 진출한다는 전략이다. 지난해부터 판타그램, 블루사이드와 함께 콘솔게임 '킹덤언더파이어(KUF)' 온라인을 공동개발중이다.

유망 게임사에 투자하고 직접 퍼블리셔사업에 뛰어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그는 직원들이 재미있고,즐겁게 일할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게 CEO의 미션이라고 설명한다.

매년 전직원에게 해외연수를 보내주고,경영진의 전체지분 가운데 20%가까운 물량을 떼내 직원들에게 나눠준 것도 그간 고생한 식구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라고 설명한다.

"인력이 경쟁요소의 핵심입니다. 이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열심히 할때만 성공할수 있죠. 소속원 전원이 우리사주를 갖고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3가지 형태의 인센티브제도를 시행하는 것은 직접적인 동기부여를 위해서다.

그의 꿈은 세계 넘버원이 되는 것이다. "저는 세계 FPS게임 1위 업체인 미 ID사를 이기는게 꿈입니다."

박철우 사장은 세계 게임시장을 주름잡을 글로벌 게임개발사를 꿈꾸는 열정의 벤처기업가였다. 그가 어떻게 글로벌 게임사업을 폭발적으로 펼쳐나갈지 관심이 모아진다.

[인터뷰를 마치며]

박 사장은 직원들에게 인사를 매우 중요하게 주문합니다.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열정과 자세,다른 동료에 대한 배려의 마음 등을 읽을수 있다고 합니다.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으로 인사를 해야한다고 설명합니다.

/김광일 칼럼니스트(GCM대표이사) goldpar@gcm.co.kr








포토뉴스









드래곤플라이,어떤 회사인가
설립일1995년 2월,98년 7월 법인전환
자본금31억원
종업원수140명
사업영역PC온라인게임개발 및 퍼블리싱
경영목표글로벌 게임개발사로 발돋음
매출목표600억원(200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