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의 시대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이름만으로도 찬란했던 홍콩 배우들은 명멸하고 이제 그 아스라한 흔적만 남았다.

이 영화는 거대한 멜로다. 응당 유혹에 빠져 만두 속이 되어야 하는 남자가 자기를 쳐다보지조차 않는다. 결국 용문객잔의 풍파 많은 주모는 사랑에 가슴이 미어지고 그를 위해 죽음도 불사하게 된다.
멜로는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끝없는 갈망에서 출발한다. 홍상수의 '오! 수정'이 '처녀 팬티 벗기기'였다면 '신용문객잔'은 '영웅 팬티 벗기기'다.
용문객잔의 주모 연옥(장만옥)은 남자들을 유혹해 죽이고 그 살을 만두소로 만드는 마녀다. 객잔엔 사막의 뜨내기들이 모여 들고 미모의 여인으로 인해 이상한 성적 에너지가 감돈다.
이런 사막의 주모는 뻔하게 닳고 닳았다. 국경수비대 대장을 정부로 삼아 적당히 이용해 먹을 줄도 알고 드센 남자들이 들이닥쳤을 때 어떻게 자신을 보호하는 지도 안다.
그러나 어느 날,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한 남자 주유민(양가휘)을 만나 예상치 않은 사랑에 빠지고 만다. 황궁의 교관이자 왕실의 두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주유민에게 욕정이란 참 사치스러운 것이다. 게다가 그에겐 미래를 약속한 남장 여인 모언(임청하)까지 있다.
그러니 일개 주모가 주유민에게 다가가는 데는 장애가 많고 갖지 못한 마음은 주체할 수없이 커진다.
이 영화는 온전히 장만옥의 영화다. 발레를 연상시키는 유연하고 교태스런 몸짓은 가히 홍콩 무협에서 독보적이라 할 만큼 에로틱하다.
장만옥은 1992년, 스물여덟에 이 영화를 찍었다. 이듬해 1993년 '청사'와 '동사서독'에 출연했고, 이후 '첨밀밀'과 '화양연화' 등에 출연하며 명색이 홍콩을 대표하는 여배우, 최고의 아시아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후 이렇게 생기와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역할은 찾아보기 어렵다. '신용문객잔'의 주모 연옥은 장만옥 자신과 아주 다르다. 어떤 자의식도 없이 자신을 내던져 건강한 에너지와 숲의 풀잎처럼 싱싱한 기운을 내뿜는다.
'신용문객잔'은 호금전의 '용문객잔'의 리메이크 버전이다. 걸작의 리메이크가 갖는 숙명이란 평가절하뿐이다. 호금전이 표현한 인물들은 내적 고민이 가득하고 철학적인 인물이었던데 반해 '신용문객잔'의 인물들은 표피적 인물들이다.
모노 타입의 인물 표현에 머문 양가휘와 임청하는 시종일관 맹맹한 연기를 보여준다. 때문에 개봉 당시 이 영화는 호금전 마니아들로부터 격한 질타를 받았다. 그러나 사막의 무정부주의자며, 마녀이며, 야생성과 로맨티시즘, 가공할 무협 에너지를 보여주는 캐릭터 장만옥의 카리스마만은 압도적이다.
무협에서 객잔은 살수들의 쉼터이며 비극적이고 애잔한 사랑이 모여 드는 곳이다. 공교롭게도 또 다른 객잔 무협 '동사서독'에도 장만옥, 임청하, 양가휘가 함께 출연했다.
다시는 이런 드림팀이 무협 안에서 활개를 펴는 것을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무엇보다 살아서 펄떡이는 장만옥 같은 캐릭터를 또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유혹의 기술

용문 객잔엔 비밀이 있다. 쥐도 새도 모르게 국경을 빠져나갈 수 있는 비밀 통로가 지하 어딘가에 있다. 목에 현상금이 걸린 범인들은 주모를 꾀어 통로를 찾고자 하지만 유혹에 홀려 오히려 만두소가 되는 처참한 신세가 되고 만다.
장만옥은 뒷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땀에 젖은 적삼과 긴 목덜미로 천박하면서도 우아한, 아이러니한 눈빛으로 돌아본다. 사내들은 "진짜 원하는 게 나에요, 비밀 통로에요?" 하는 물음에 백이면 백 연옥을 안는 것을 택하고 만다.
객잔 주모는 욕망에 젖은 남자를 인육만두로 뒤바꾸는 마녀 중의 마녀, 팜므파탈이다. 그리고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던 유일한 두 협객이 바로 남장여인과 주유민이다.
남장여인의 목욕

"내 눈을 쳐다보지 않는 건 사내가 아니야."
남장여인 모언과 주모 연옥은 첫 만남부터 묘한 스파크가 튄다. 이는 후에 양가휘를 사이에 두고 벌어질 두 여인의 대립으로 이어진다. 연옥은 모언의 실체를 알기 위해 목욕 장소를 급습하지만 외려 입고 있던 옷을 모조리 빼앗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두 여자가 벌이는 액션 신은 아슬아슬하고 에로틱하다. 얇은 광목 천 하나를 뺏고 빼앗는 나신의 활극은 교묘한 미장센으로 가려지고 두 여인의 심리 신경전은 본격화된다.
모언의 정체가 노출됨으로써 객잔에는 두 명의 여자가 존재하게 됐고 이제 그들은 곧 연적이 될 위기에 처한다.
영웅과의 만남

모언에 의해 알몸으로 지붕 위로 내쫓긴 주모는 분해하거나 자기 한탄을 하는 대신 시원하게 목청 뽑아 노래를 부른다. 이런 유쾌함이야말로 험한 객잔에서 주모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때 껄껄거리며 눈 앞에 나타난 협객이 주유민이다. 주모는 용문객잔의 휘장을 몸에 두르고 지붕에서 뛰어내려와 교태를 떨어보지만 남자는 첫눈에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연옥은 현상범 몽타주에서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있지만 이미 동한 마음을 추스르기엔 늦었다. 영웅의 바지를 벗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주유민의 모언에 대한 애틋한 마음에 질투가 커지고 그의 인품에 매혹된다.
조이뉴스24 /mu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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