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진의 개인정보 톺아보기]‘제어가능한 유비쿼터스 사회’를 준비하자


‘개미’로 일약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오른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천재적인 상상력을 가진 작가다. 지난 2006년 출간한 ‘나무’라는 그의 단편집에는 모든 사물이 컴퓨터 네트워킹으로 이어진 이른바 유비쿼터스적 일상을 사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곳에서는 커피포트, 넥타이 같은 사물이 말을 하고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기 때문에 도무지 인간이 신경쓸 일이 없다. 유비쿼터스 컴퓨팅과 더불어 디지털에 아날로그 감성을 입히자는 ‘디지로그(digilog)’가 극단적으로 실현된 결과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주인공은 알아서 제공되는 서비스에 진저리를 치며 그 옛날, 말이 없고 수동적이던 물건을 그리워한다.

인간은 편리를 추구하는 존재다. 역사는 꾸준히 그렇게 진화해가고 있는 중이며 그 끝 어디쯤 유비쿼터스 사회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왜, 편리를 위해 고안된 현실이 내 목을 죌 것이라는 빗나간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일까. 이는 기술에 대한 인간의 통제가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개인 맞춤형 서비스는 편리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로 수많은 제3자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이용하도록 허락해야 한다. 개인정보 이용행위는 점점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이뤄지고, 보이지 않는 행위를 통제하기란 당연히 어렵다. 유비쿼터스 사회에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이 더욱 중요한 가치로 부각될 것이라는 예측에는 이런 근심이 깔려있다.

아직까지 우리는 현실과 컴퓨터가 분리된 공간을 살고 있다. 하지만 컴퓨터가 꾸준히 현실과 교감하며 네트워킹을 확장해가고 있어 어느 순간 이 둘의 명확한 구분이 어려워지는 때가 올 지 모른다. 개인정보 이슈도 이름이나 주민번호와 같은 정태적 개인정보에서 실시간 추적이 가능한 위치, 성향, 영상 등 동태적 개인정보로 옮겨갈 전망이다. 온라인상의 개인정보 문제가 실물공간에서의 ‘사생활 침해’, ‘감시’ 우려 등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얘기다. 내가 맘대로 켜고 끌 수 없을 뿐더러 어디에 컴퓨터가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인간은 한낱 공포에 찬 무기력한 존재에 불과하게 된다.

이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는 어쩌면, 아주 먼 미래에나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충분히 역기능을 예측하고, 이에 대처할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한다면 ‘제어가능한 유비쿼터스 사회(controllable ubiquitous society)’를 건설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타인의 눈이 존재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환경에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은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다. 먼저 이를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기술적 수단을 생각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는 서비스 제공자인 사업자의 일괄적인 대응에 초점을 뒀다. 그러나 유비쿼터스 컴퓨팅 환경에서는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사업자 수가 급격히 증가해 통제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그들이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정보주체 스스로 자신의 개인정보보호 수준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수단의 확보다.

이 수단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려면 정보주체의 개인정보보호 의식이 성장해야 하므로, 다양한 인식제고 활동이 더욱 중요해진다. 한편 정부는 이런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발굴하고, 법이나 제도로 표현되는 보호의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기술의 발전을 법제도가 앞서나가기는 참 어렵지만, 최대한 시장의 자정기능을 살리고 보호의 방향을 제시하는 쪽으로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정부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을 이루는 개별 요소에 대한 개인정보보호 틀거리는 갖고 있다. 위치정보보호는 법률로써, RFID와 연관된 개인정보와 CCTV 개인영상정보, 바이오인식시스템을 활용한 바이오정보 등은 개별 지침을 통해 보호기준을 마련해놓은 것이다. 하지만 실제 유비쿼터스 컴퓨팅은 여러 요소가 결합해 유기적으로 돌아간다. 향후 이들 개별 지침을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하려면 어느 정도 융합·변형하는 작업을 거쳐야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유비쿼터스 사회를 구성하는 매개체로서의 새로운 IT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IT 제조부터 활용에 이르기까지 ‘임베디드 프라이버시(embeded privacy)'를 구현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분위기 조성도 필요하다.

옛날에는 공상영화나 만화는 그야말로 인간의 터무니없는 공상을 그려내는 것으로만 알았었다. 그러나 급속한 기술의 발전으로 그 공상이 하나하나 현실화되는 것을 보면 아직 이뤄지지 않은 일들이라도 언젠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긴장감을 갖게 된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 다름 아닌 인간의 의지요 힘이다. 어떤 꿈을 꿀까. 기왕이면 장밋빛 꿈을 꾸자. 어느 순간에도 기술에 지배당하지 않는 싱싱한 인간의 모습이 담긴.

/박광진 KISA 개인정보보호지원센터 단장 column_kjpar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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