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나의 부천, 영원히 함께 해!"
응원가의 가사대로 오랜만에 모두가 함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매서운 추위에 아랑곳없이 8백여 팬들의 함성 속에 흐뭇한 미소로 자선 경기가 시작됐고 나중에는 기쁨의 눈물까지 흘렸다.
영원히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이들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세상과 작별한 뒤 새롭게 태어나 새 생명을 얻은 것과 같다"는 배기선(58) 단장의 말처럼 K3리그 부천FC 1995-부천 SK OB의 경기는 수원 삼성-FC서울의 '드림 매치'와도 견줄 만했다.
지난 26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부천체육관 인조잔디구장. 체감온도 영하 15도 이하의 맹추위 속에 윤정환, 남기일, 이성재, 이용발 등 부천 SK(현 제주 유나이티드)의 전성기를 함께한 왕년의 스타들이 부천FC 1995와 자선경기를 가졌다.
이들은 현역 때 유니폼을 다시 입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유니폼을 가져오지 못한 이들은 사무국에서 직접 제작해준 티를 입었다.
부천지역 불우 청소년을 돕는 목적으로 열린 자선경기에서 배가 나오고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들은 젊은 선수들을 상대로 왕년의 실력을 마음껏 보여줬다. '제리' 윤정환의 칼날 패스에 부천 팬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미국에서 날아온 골키퍼 이용발의 화려한 선방에는 박수가 절로 나왔다.
하프타임, 팬들 앞에 인사를 하러 나온 윤정환은 "과거 유공에서 부천 SK까지 모든 경기가 기억에 남는다"라며 회상한 뒤 "1997년 4월 26일 울산 현대와의 경기에서 (김)병지 형에게 공을 넘긴다는 것이 키를 넘어 골이 됐다. 가장 슬픈 장면이었다"라고 추억의 한 페이지를 들추며 웃었다.
올 시즌을 끝으로 성남 일화와 계약이 종료되는 남기일은 "어제(25일)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앞으로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라고 설레는 마음을 표현했다.
경기 결과는 부천FC 선수들이 반성(?)해야 할 1-2 패. K3리그 양주시민구단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2000년 K리그 신인왕 이성재의 화려한 돌파에 현 제주 유나이티드 유소년팀 감독인 이원식의 동점골이 터졌을 때는 "완전 실전이나 다름없는데"라고 한 팬의 탄성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경기가 끝나고 서로 마주한 자리에서 한 여성팬의 시가 낭독됐다. 시가 낭독되면서 숙연한 분위기가 이어졌고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일부 OB들도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며 애써 차오르는 눈물을 감추기도 했다.
2006년 제주 유나이티드가 부천에서 제주도로 전격적인 연고지 이전을 하면서 팬들의 기약없는 투쟁이 일어났다. 부천 선수들과 팬들은 생이별을 해야 했다. 좌절하지 않은 부천 팬들은 시민구단 창단준비위원회를 조직해 부활을 준비했고 마침내 지난해 12월 1일 부천FC 1995가 창단, 올해 K3리그에 참가하게 됐다.
경기장에는 부천SK에 대한 추억을 가진 이들도 대거 찾았다. 수원 삼성, 성남 일화, 포항 스틸러스 등 타 구단 팬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한 수원 팬은 "지금의 FC서울과의 경기보다 안양(서울의 전신), 부천과의 경기가 더 혈전이었다. 하루빨리 K리그에서 만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배기선(전 국회의원) 부천 단장은 "추위 가운데서도 친정을 찾아준 선수들이 고맙다. 앞으로 자주 이런 경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날 경기는 부천SK 공격수로 활약했던 곽경근 현 여의도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이 직접 구단 사무국에 전화를 해 친선경기를 제의하면서 이뤄졌다. 곽 감독은 "여기(부천)는 내 고향이다. 팬들의 응원을 들으니 예전 기억이 난다"라며 남다른 감회를 표현하기도 했다.
조이뉴스24 /부천=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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