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풍미했던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50)의 사망 소식이 날아든 25일(미 현지 시각) 전 세계 팬들은 그야말로 형언할 수 없는 '충격'에 빠져 버렸다.
80년대 '팝의 황제'로 군림했던 잭슨의 사망 소식은 그와 함께 모순의 20세기를 헤쳐 온 전 세계 수많은 팬들에게 '혼돈', '비극'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팬들이 기억하는 마이클 잭슨은 전쟁과 기아, 탈냉전, 그리고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대를 살아온 마지막 남아있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엔터테이너'인 동시에 '플라스틱 보조물로 만든 인조인간', '백인을 동경한 흑인', '아동 성추문' 등 기이한 행동의 유명인으로 조롱의 대상이기도 했다.
어찌 보면 '위대한 연예인'과 '비웃음거리'라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그의 삶에 대한 평가는 모순이자 우리 시대의 비극이다. 그래서 마이클 잭슨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남아 있는 자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고 용서하게 만든다.
그는 전쟁과 혼돈의 시대에 평화를 노래하고, 풍요의 시대에 굶어죽는 아프리카 난민들을 노래했으며 신의 시대에 삶에 지친 지구 인종들의 영혼을 달래 준 '팝의 황제'였다.
58년 잭슨가의 아홉째 중 일곱 번째로 태어난 마이클 잭슨. 그는 6살이 되기도 전에 형제들과 함께 '잭슨 파이브'로 음악을 시작한다. 78년 프로듀서 퀸시 존슨과 '오프 더 월(Off the Wall)' 솔로 앨범을 내고, 22살때에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인 반열에 올랐다. 81년 발매한 '스릴러(Thriller)'는 그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앨범 수록곡 9곡 중 7곡이 빌보드 차트 톱 10에 들었다. 보기만 해도 환호성이 절로 터져 나오는 '문 워크' 춤도 이때 등장한다.
하지만, 이런 화려함 뒤 그의 사생활은 굴곡으로 점철됐다. 그의 사생활은 늘 호사가들의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백인을 동경하며 공식행사에 늘 백인들이 좋아하는 유명 연예인들과 함께 다녔다. 여배우 브룩 실즈,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그는 보란 듯이 1994년 백인들의 우상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한다. 그러나 2년 만에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당시만 해도 두 사람의 결혼을 바라보는 백인들의 정서는 불편했다. 그리고 이후 언론의 조롱은 더욱 거칠어졌고 잭슨은 그의 네버랜드 저택에서 아동 성추문에 휘말리며 쇠락의 길을 걷는다.
최근 재기를 위해 영국 런던의 O2 아레나에서 컴백 공연을 준비하던 마이클 잭슨은 결국 25일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은 이제 영원한 전설로 남게 됐다.
조이뉴스24 /정진호기자 jhju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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