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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선의 보안이야기]소프트웨어를 안 하는 이유-1


정보보안 인력에 대해서 (2)

정보 보안 인력이 부족한 이유를 알려면 먼저 소프트웨어 인력 부족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지난 회에서 언급했다. 물론 원천적으로는 전반적인 이공계 기피현상에 기인한 것이지만 이를 여기서 논한다면 너무 큰 주제로 확대되므로 일단 소프트웨어에 국한해서 논의를 전개해 보기로 한다.

첫째, 소프트웨어는 단순한 기능의 조연 혹은 단역이 아니다.

2000년도 가트너 콘퍼런스(Gartner Conference)에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의 창업자인 스콧 맥닐리 회장이 “소프트웨어는 기능이지 산업이 아니다(Software is a feature, not an industry)”라는 말을 해서 크게 화제가 되었다. 평소 맥닐리 회장을 존경했던 나는 현장에서 그 말을 듣고서 깜짝 놀랐다.

“아니, JAVA라는 혁신적인 방향성을 제창한 회사의 CEO가 저런 말을 하다니?” 도대체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티브 발머 (Steve Balmer) 회장이 “내 생애에 그런 멍청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the most absurd thing I’ve heard in my life). 비즈니스의 모든 업무는 소프트웨어다. ERP, 데이터베이스, 워드프로세서 등 모두가 소프트웨어 아닌가? 소프트웨어는 미래다(Software is the future)!!”라며 큰 소리로 반박하던 광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결국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는 소프트웨어 기업인 오라클에 인수되는 운명이 되었다. 당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 행위를 놓고 선봉에 서서 싸우던 입장이었기에, 다소 감정적인 어조로 튀어나온 발언이라고 생각은 든다. 그래도 너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를 만들어 보던 학부 시절

전자공학을 전공하던 학부 시절에 컴퓨터를 만드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지금부터 약 25년 전이니 지금의 시대에서 바라보면 영락없는 구석기 시대다. 여러 명이 씨름해서 마이크로프로세서, 메모리, I/O를 여러 개의 보드로 구성해 봐야 겨우 286보다도 못한 성능의 컴퓨터를 만들 수 있었다. 당시 키보드를 누르면 모니터에 글자가 나오는 것을 보고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과제로 주어진 어떤 기능을 보여주려고 하니 도저히 하드웨어만으로는 안 되었다. 그래서, 조교에게 “하드웨어 스펙을 아무리 봐도 그대로는 잘 안 되는데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조교는 “소프트웨어로 처리해도 통과시켜 주겠다”라며 인정해 준 적이 있다. 구태여 오래 전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사람의 눈에는 소프트웨어가 이렇게 보조적 요소로 보인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 당시는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돌릴 만한 하드웨어가 절대적으로 함량 미달이었다. CPU 파워로 보나 메모리 용량, 각종 부품의 가격을 봐서 컴퓨터를 일반인이 만든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그러니 일단 가동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게 최우선 목표였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하드웨어만 보면 가히 자유로움(freedom)을 만끽하는 세상이다. 무어(Moore)의 법칙은 메모리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하드웨어의 성능, 용량은 급증한 반면 가격은 급속도로 떨어졌다. 하드웨어의 걱정을 덜게 되니 “소프트웨어로 무엇을 만들어야 좋을까” 하는 관점으로 중심이 이동했다. 이제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를 실현시켜주는 가능자 정도가 되었다. 한 마디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위상이 뒤바뀐 것이다.

아이폰의 꿈과 사상은 소프트웨어로 이루어져..

애플(Apple)의 아이폰(iPhone)이 좋은 예다. 아이폰은 플랫폼이다. 3G, 웹브라우징, 이메일, MP3, PDA에 이르기까지 사용자에게 필요한 기능을 총집결했다. 한편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쉽게 달성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아이디어를 결집했다. 사용자가 사용할 소프트웨어가 정의되었고 그에 맞추어 하드웨어가 준비되었다. 이를테면 사용자의 검색을 돕기 위해 이중 터치 스크린이 도입되었고, 어느 장소를 찾아가기 위한 구글 맵스(Google Maps)를 모바일 환경에서 바로 구현할 수 있도록 3G와 GPS를 결합했다. 그 외에 통신, 저장 기기 등 각종 하드웨어 구성 요소가 이를 따랐다.

무엇보다 아이폰은 아이튠스(iTunes)라는 플랫폼을 통해 풍부한 콘텐츠와 애플리케이션이 공급되는 아이팟의 고유 사상에 충실하다. 지금 우리 나라 대기업들이 흉내내는 앱스토어(AppStore)를 창시해낸 것이다. 여기에서 사용자와 하드웨어, 인터넷, 콘텐츠가 일체감 있게 운영되는 대동맥 같은 역할은 소프트웨어가 담당한다. 아이폰에서 누가 주연인지는 명약관화하다.

하드웨어를 만들고 나서 소프트웨어를 조연으로 활용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렇게 주연과 조연이 바뀐 상황에서 우리는 아직도 소프트웨어가 조연, 아니 그것도 안 되는 단역의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니, 소프트웨어가 비전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소프트웨어가 제품의 원가를 잡아먹는 비용(cost)이 아니라 제품의 사상과 개념을 결정하는 가치(value)의 실현자(enabler)로 변한 현 상황과는 동떨어진, 시대 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소프트웨어는 비용(cost)이 아니고 가치(value)다.

나는 국내 대기업에 근무할 시절에 컴퓨터 사업에 관여했다. 컴퓨터 제품이다 보니 R&D 부서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하드웨어 인력보다 더 많았다. 그런데, 그 곳에서 오래 근무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바람은 매우 단순했다. “아! Main 프로그램 한번 만들어 보고, 직접 설계해 봤으면…” Main 모듈은 전체 소프트웨어의 중심이 되는 프로그램이다. 건물에 비유하면 기초 공사를 정의하고 중심 기둥을 놓는 것과 같다. 그러면, 왜 Main 프로그램을 만들 기회가 없는 것일까?

하드웨어 사업의 초점은 하드웨어 박스 자체이다. 제품 기획은 하드웨어 스펙을 정하는 게 대부분이다. CPU 채택, 메모리 용량, 목표 성능, I/O 포트 숫자, 외장 기구 형태, MPBF 등등. 물론 그 자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사용자가 진정 원하는 것이 이 박스일까?

새로운 하드웨어가 정의되면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업무는 라이센스된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활용해서 개발된 하드웨어를 구동할 소프트웨어, 즉 Device Driver를 만들고 튜닝(tuning)하는 게 대부분의 일이었다. 그래서 소프트웨어는 개발이 아니라 포팅(porting)이라고 불렀다. 한 마디로 하드웨어 스펙이 먼저 정해진 다음, 그 하드웨어에서 어떤 소프트웨어가 동작할지 찾는 게 일이었다.

일반 컴퓨터 제품은 commodity이니 그렇다 칠 수 있다. 컴퓨터를 구매할 때 중요한 요인은 얼마나 많은 소프트웨어가 돌아가느냐이다. 아무리 좋은 OS를 만든다 하더라도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누가 사용하겠는가? 당연히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ISV(Independent Software Vendor)들은 잘 알려진 OS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OS와 소프트웨어를 미국 기업들이 장악했으니, 우리나라에서 PC나 서버의 소프트웨어는 호환 기종의 하드웨어를 만드는 데만 활용된다.

각종 기기에서 커지는 소프트웨어의 역할

그러나, 소프트웨어는 범용 컴퓨터뿐 아니라 정보 기기, 통신 시스템, 가전 제품에도 들어간다. 이런 장비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는 일반 컴퓨터용 소프트웨어와 완전히 다를까? 최근 이런 제품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는 웬만한 컴퓨터에서 사용되는 수준과 맞먹는다. 임베디드 시스템이라고 불리는 소프트웨어의 구조는 UNIX나 리눅스 같은 운영 체제와 사상이 같다.

결국 얼마나 이 소프트웨어를 잘 설계해서 사용하느냐가 소프트웨어 원가를 줄이고 전체 제품의 이익률을 높이는 관건이다. 그런데, 하드웨어 사업만 영위해 온 이들은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드웨어 원가에 들어가는 비용 정도로 산정한다. 비용의 항목은 들어간 인건비와 개발 장비다. 결국 창의력과 고급 전문성이 필요한 지식 산업을 시간당 계산하는 노동 집약적 산업으로 격하시킨 것이다.

소프트웨어의 장점은 재사용(reuse)에 있다. 여러 장비에 걸쳐서 비슷한 기술을 사용하면, 필요한 부분을 패키지화해서 적절히 재사용함으로써 원가를 몇 분의 일로 절감할 수 있다. 더욱이 검증된 코드를 재사용할 경우 품질 수준도 크게 높일 수 있다.

더 나아가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 제품의 품격을 높인다. 사용자가 결국 사용하는 것은 콘텐츠와 소프트웨어다. 제품의 디자인이 예쁘고 가격이 싼 것도 중요하지만, 컨버전스 시대에는 개인 위주로 서비스가 특화되기 마련이다. 이 모두가 혁신적인 소프트웨어에 의해 결정된다.

몇 년 전 대기업에서 같이 근무했던 후배를 만난 적이 있다. 그 기업에서 여전히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하던 그는 “이제는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은 좀 달라졌지?”라는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소프트웨어 로드맵은 하드웨어의 로드맵 이후에 고려된다는 것이다. 그는 “경영진은 소프트웨어의 특성을 모르고, 결국 매출은 하드웨어 제품을 얼마나 팔았느냐로 결정된다.”라고 푸념했다. 그러고 보니, 대기업 고위층에서 소프트웨어에 대한 통찰력을 가진 임원을 찾기가 힘들다. 여전히 하드웨어 박스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생각이 바뀌는 데는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몇 십 년을 고수해온 사업 방식을 바꾼다는 게 쉬운 일인가? 아무리 애플, 구글의 스토리를 책이나 강의로 접해도 직접 체험하지 않는 한 사용자에게 미묘한 변화를 일으키는 소프트웨어의 특성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세상은 급변하고, 이런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차별화라는 기업의 영원한 숙제를 해결할 수 없다. 차별화를 해야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 하드웨어 원가 절감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당연히 수익을 높이는 소프트웨어와 창의적 서비스로 중심축을 옮겨야 한다.

/김홍선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 column_phil_kim@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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