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극전사' 차두리(29, 프라이부르크)의 '1막 인생'은 화려했다.
강인한 체력과 질풍같은 스피드, 그리고 축구 선진국 독일 리그에서 기량을 갈고닦은 차두리는 2001년 11월8일 전주에서 열린 세네갈과의 친선경기에서 태극전사 데뷔전을 치렀다. 2002년 4월20일에는 대구에서 열린 코스타리카와의 친선경기에서 A매치 데뷔골을 성공시켰다.
꾸준한 경쟁력을 보인 차두리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선발되는 영광을 얻었다. 주전은 아니었지만 놀라운 기량으로 한국이 4강 신화를 만들어내는데 적잖은 공을 세웠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동물적 감각으로 때린 오버헤드킥을 기억하는 팬들이 많다.
화려한 월드컵의 주역으로 우뚝 선 차두리. 2002년 월드컵 이후에도 차두리는 꾸준히 국가대표팀에 발탁되며 대표팀 1막 인생의 화려함을 이어갔다. 하지만 차두리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포지션을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바꾸며 새로운 날개를 달려 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기대했던 2006년 독일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빠지며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차두리는 그 때의 시련을 회상했다. 12일 파주 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파주NFC)에서 만난 차두리는 "실망이 컸고 너무나 아팠다. 2006년에는 축구에 대한 흥미도 잃었을 만큼 실망이 컸다"며 당시의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이어 차두리는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한 것은 실력이 없어서였다. 포지션을 수비수로 변경하고 소속팀에서 경기를 뛰지 못했고 경기력도 안 좋았다. 능력이 안 되는데 대표팀에 들어오는 건 아니다. 2002년 멤버니까, 누구 아들이니까 그런 것들은 아니다. 준비가 되지 않았던 상태였다"고 말했다.
독일 월드컵의 아픔을 뒤로 한 채 차두리는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지난 2006년 10월8일 열린 가나와의 친선경기. 공격수 차두리가 아닌 수비수 차두리가 태극마크를 달고 나선 첫 경기였다. 하지만 수비수 차두리는 신뢰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가나전 후 오랫동안 태극전사 차두리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A매치 39경기서 4골. 태극전사 차두리의 '1막 인생'은 화려하게 시작해 아쉬움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3년이 지난 2009년 10월. 태극전사 차두리의 '2막 인생'이 막 시작하려 한다.
14일 세네갈과의 평가전을 준비하기 위해 차두리가 돌아왔다. 2006년 가나전 이후 3년 만이다. 차두리는 달라진 모습으로,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국가대표팀에 돌아왔다. 수비수로서 완전히 적응했고, 자신의 포지션에 대해 만족스러울 정도로 완벽해졌다. 게다가 분데스리가 프라이부르크에서도 당당한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차두리는 인정받지 못했던 '수비수 차두리'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러 왔다. 차두리는 "포지션을 바꾸고 경기를 많이 해봤다. 초반에는 위축되거나 실점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극복했다. 지금은 위치선정과 경기력 등이 안정됐다. 자신이 없으면 오지도 않았다. 준비가 됐다고 판단해 대표팀에 들어왔다"며 수비수 차두리의 경쟁력을 피력했다.
무엇보다도 태극전사 차두리의 2막 인생의 핵심은 마지막으로 조국을 위해 뛰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의 생활 등 차두리는 축구선수로서 얻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얻었다. 하지만 차두리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 월드컵에서 조국을 위해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자신을 내던지고 싶은 것이다.
차두리는 "2010남아공월드컵이 내 나이로 봐서 마지막 월드컵이 될 것이다. 월드컵 4강에 올라가봤고 해외리그에서 몇 년째 뛰고 있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더 큰 목표가 있다. 나라를 위해, 나라를 대표해서 뛰는 것은 축구선수로서 자랑스러운 일이다"고 말했다.
태극전사 차두리의 2막 인생이 화려함으로 끝날 것인지 또 하나의 아쉬움을 남길 것인지, 이제 그 막이 올라가고 있다.
조이뉴스24 /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사진 김현철기자 fluxus19@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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