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형 인터파크 CEO](2) 질풍노도의 20대를 보내다


 

'가지 않은 길’과 ‘선택한 길’이 준 삶의 지침

나의 이야기를 하려하니 내가 지금까지 한 일은 무엇이고, 지금은 무엇을 하

고 있으며, 앞으로 일을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스스로 되묻게 된다.

학창시절의 나는 이상만을 쫓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현실적인 성공이나 안

락함을 필요이상으로 매도하기도 했다. 이과라서 의대에 진학한 친구들이

많았다. 이 친구들에게 ‘네가 정말 환자의 고름을 빨겠다는 심정으로 의대

를 선택하는 것이냐? 솔직히 잘 먹고 잘 살 수 있으니 네 적성이고 뭐고 떠

나서 의대를 가려는 것이 아니냐?’고 많이도 몰아부친 적이 있었다. 나는 평

생을 연구하고 진리를 쫓는 물리학자가 되고자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의지

와 자신감이 충만했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외골수여서 숨막힐

정도였는데, 그 때에는 그런 생각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운의 꿈을 안고 내가 원하는 대학, 내가 원하는 과가 있는 계열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때부터 약 10년간 20대 내내 나의 꿈은 무참하게 박살이 났다. 지

금 나는 내 대학 전공인 천문학을 참 멋있는 공부라고 생각한다. 다만 대학

1년을 고민하느라 확실하게 공부와 담쌓고 지내다보니 창피하게도 성적에

밀려 물리천문계열로 들어갔다가 천문학과로 밀리게(?) 되었다.

학장실에 찾아가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따져 물었던 기억이 난다.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해야 한다고 너무도 굳게 믿고 있었기에 납득이 되질 않았

다. 이러려고 내가 대학에 들어왔나 라는 생각과 치욕감에 학교를 때려 칠

까도 여러 번 고민했었다. 대학생활 내내 적이냐 동지냐 하는 친구들의 물음

도 계속 나를 괴롭혔다. 학문에 대한 미련도 참 많이 남아있어 생각과 생활

이 온통 얽히고설켜 나중에는 끝간데 없는 심연으로 나를 끌고 갔다.

선택이 요구되는데 선택을 하지 않고 어정쩡하게 남아 있는 삶은 참 지랄 같

은 것이다. 무언가가 두려워서였다. 원래 내가 가야 할 길이 있는 데 그걸

못 찾고 있는 와중에 불완전한 구석이 있는 선택을 하게 되면 너무 후회하

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래서 원래 가야 할 길을 갔을 때 얻을 수 있

는 것을 송두리째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등이 그것이다.

지금은 잘 알고 있다. 나에게 운명으로 주어진 최선의 길 따위는 없다는 것

을. 사람이 사업을 하든 정치를 하든 무엇을 하던 간에 항상 두 갈래길이 나

온다. 두 길 모두 얻을 것과 잃을 것이 비슷하여 선택의 문제만 남게 된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라는 시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우리는 매번 이런 선택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지 주어진 운명의 길이 있

어 그 길을 찾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걸 깨닫는데 10년이라는 청춘을 허비

했다. 지금도 비즈니스를 하면서 계속 다짐하는 철학이다. 나에게 비즈니스

를 하게 한 운명 같은 것은 없었다. 나는 비즈니스의 길을 택했고 과학자의

길을 가지 않았다. 한 번 해 볼까 했던 소설가나 영화감독의 길도 가지 않았

다. 그리고 그 선택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라는 얘기다.

지금도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이 얘기를 해

주고 싶다. 비즈니스를 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온다. 나는

신중히 고려하여 선택할 것이고,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나 잘못된

선택을 후회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망설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적어

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만 하다 시간을 허비하는, 대부분의 사람

들이 저지르는 어리석음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은 꾸어야 한다. 꿈이 없으면 인생이나 비즈니스는 게임이 되고 만

다. 꿈은 아주 멀리 있는 희미한 불빛과도 같은 것이지만 수 없는 판단과 선

택 속에서 계속 높은 꿈, 이상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래도 그 비슷한 인생이

나 비즈니스를 이루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20대에 많은 고민과 사건들이 있었지만 역시 학생운동이

제일 큰 이슈였다. 그 때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는 것처럼 보여졌다. 운동

을 하는 친구들과 운동을 하지 않은 친구들. 그런데 다소 모호하지만 운동

에 모든 걸 다 걸고 하는 친구들과 모든 것을 걸고는 하지 않는 친구들 두 종

류의 인간이 있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운동을 다 걸고 했던

친구들이 주변에 많아서 나도 운동권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런데 참 순수

하고 좋은 품성과 자질을 가진 친구들이 너무도 많이 상처를 받았다. 심지어

는 편가름이 있었다. 대학시절 내내 멀쩡한 사람들이 제 갈 길을 가지 못하

게 하고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상황을 만들었던 독재를 그래서 지금

도 끔찍이 싫어한다.

그 와중에 나는 인간에 대한 고민을 꽤 많이 하게 됐다. 딴에는 누구처럼

‘양 끝이 타오르는 촛불’처럼 살고자 했다. 러브스토리의 한 대목처럼, ‘한

번 뿐인 인생인데, 다시 못 올 청춘인데 죽도록 고민(?)’했다. 고민하고 체험

했던 인간과 그 관계라는 것이 지금도 내가 사업하고 살아가는 전 영역에 걸

쳐 많은 가치판단의 준거가 되고 있다. 조금은 폼나게, 고민하는 까뮈 같은

모습으로 비춰지길 바라는 치기도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고민은 고민

이다. 해결되지 않는 고민을 오래 끌어안고 지내는 것은 본인에게 못할 짓이

다. 그러나 고민과 방황을 쓸데없는 짓으로 일축하고 사고를 일정한 틀에 가

두어 버리는 사람들도 문제다. 이런 사람들이 공적인 큰일을 맡으면 더 큰

문제다. 자신의 오만과 편견을 반성할 힘도 의지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을

견뎌내야 하는 것은 온통 다른 사람들의 몫이 된다. 그건 폭력이다.

고민 끝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다가선 주제는 사랑이었다. 남녀간의 사

랑도 포함되지만 종교적 의미에서 사랑이 나름의 주제였다. 에릭프롬의 ‘사

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이 마음에 들어 몇 번을 읽었다. 그러나 나는 아

직 내 삶에 대한 신통한 답을 내지도, 얻지도 못한 채 대학을 졸업하고 있었

다.

졸업하고 장형의 강권(?)으로 삼성에 들어가고 연수원에서 멍하니 보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이 때도 나는 개조되지 못했다. 1년만에 회사를 그만두

었다. 우선 내가 누구인가부터 알아야겠고,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도 결

론을 내야겠다는 심정이었다. 고민 끝에 언론사 시험과 고시시험, 과학사대

학원 시험을 초단기로 공부하고 초단기로 때려쳤다. 어느 밤에는 무엇을 하

고 살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방에서 뒹굴면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마구 질렀

던 적도 있다. 황지우 시인의 ‘활엽수림에서’라는 시에서처럼 그냥 비인칭주

어로 살고 있었다. 내가 참 지리멸렬하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 때까지 나는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내가 결정해야 한다고 믿

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 고민에 집착하면 할수록 생각의 흐름은 꼬여만

갔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려면 무엇이 의미 있는 것인

가부터 결론지어야 했다. 그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식으로 질문이 꼬리를 물

게 되는데 ‘철학끼’까지 있는 나는 결국 실체가 무엇인지를 찾아 헤매게 됐

다. 성인들이 평생을 고민해도 결론을 얻기 힘든 주제를 모자란 내가 외골

수 기질만 가지고 덤벼들다가 오히려 고민하는 자체에 눌려 허덕이고 있는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어느덧 인생의 결론을 내지 못하면 죽어야 겠다는 비장한(?) 각오도 하고 있

었다. 그 시한인 20대 마지막 한 해를 남겨놓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를 생

각하면 내 목숨이 내 목숨이 아니다는 생각도 역시 비장하게 들어서 결론도

못 내고, 죽지도 못하고 약속시한을 넘겨버렸다.

그런데 문득 앞으로 내 인생은 잉여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있지도

않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너무 고민하고 집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문제풀이가 아니다. 의미 있는 인생이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

게 주어진 환경과 일에 내가 의미를 부여하면서 내 나름의 인생을 만들어 가

야 한다는 부분까지 생각이 미치자 앞이 환하게 밝아져 오는 느낌이었다. 마

치 얽힌 실타래를 칼로 끊어버린 것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20대의 고민을

가슴 속 깊숙이 묻어 놓았다. 언젠가는 다시 한번 열어보리라 생각하고….

그러고 나니 온통 생활이 흐트러져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기

본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심정이었다. 나는 뭐든지 열심히 하고 잘 할 수 있

다는 자신감으로 스스로를 무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처음부터 시작

해야 했다. 궁금해 지기도 했다. 남들이 오래 준비하고 노력해온 부분을 내

가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따라잡을 수 있는지. 우연히 알게 된 ‘데이콤’에,

막연하지만 정보산업이 미래를 이끈다는 생각으로 입사를 하게 되면서 나

는 말하자면 제2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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