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형 인터파크 CEO](3) 데이콤 입사후-이상과 현실의 융합, 사업을 구상하다


 

데이콤 입사 즈음에 시작한 제2의 인생은 이상주의자를 현실주의자로 개종하는 과정이었다. 처음부터 잘 될 리 없었다. 마음의 색깔을 바꾸고 새로운 바위에 착 달라붙어 아무도 눈치 못 채겠지 하고 있는데, 몸은 아직도 막 떠나온 숲과 같은 녹색이었다. 색을 미처 다 못 바꾼 어설픈 카멜레온 형상이었다. 그 때의 많은 상사나 동료들은 좌충우돌하는 나를 기억하고 있으리라.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창피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 생겨도 좀처럼 개의치 않게 되었다. 바닥 다지기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손으로 휘갈긴 문서를 밤새 타이핑하는 건 물론, 상사 잔심부름까지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정보통신기술과 사업에 대한 원서를 읽고 또 읽었다.

20대를 워낙 구름 위(?)에서 놀다 보니 지상(?)의 일은 신기하고 새로운 점이 많았다. 그러나 비교적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었고, 완전히 다른 나의 적극적인 모습에 가끔 스스로도 놀라곤 했다.

한번은 내 상사 분이 고인이 되신 당시 데이콤 부사장께 '이 친구는 이것 저것 재주가 많은 친구'라고 소개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김영철 부사장께서 '사업을 잘 하려면 그런 끼가 많아야 한다'고 얘기해 주었는데, 그 얘기가 그 당시 나에겐 많은 독려가 되었다. 나는 비교적 상사의 신임을 얻는 편이었는데, 이는 뒤에 내 의사를 관철시키는 데 많은 힘이 되었다.

간혹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란 생각이 들면 옆부서 동료들을 찾아가 농담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치밀어 오르는 잡생각들을 억누르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가 주어진 운명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찌어찌해서 주어진 길이라도 마치 나의 운명의 길인 양 의미를 부여하고 최선을 다하자는 '혁명적 생각'(?)을 시험하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나에게는 묘한 믿음이 있었다. 나는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는 단순한 믿음이다. 고등학교 때까지도 학년 학년을 거듭할수록 성적이 계속 좋아졌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동료들이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겠지만, 직장생활을 3년 정도 보내고 나니 전혀 내 것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회사 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제법 일도 손에 붙어 자심감도 생기기 시작했다.

결혼도 했다. 씀씀이가 큰 편이어서 가진 것 없이 대출로 시작한 결혼생활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님까지 세 식구가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생활비를 쥐어 주고도 아내가 보기에 '가진 것 없이 너무도 똥배짱'인 나였지만 우리의 미래를 걱정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나아질 것이고, 잘 될 것이다'라는 그 야릇한 자신감이 그렇게 만들었으리라. 사실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20대 생각의 극단도 통과해 왔는데 이깟 세상 사는 일 쯤이야 하는 오만도 있었다.

94년 쯤인가부터 후회없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소망과 최고로 성장하고 성공해야겠다는 욕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만나 사업모의(?)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또 다시 나는 새로운 길을 선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부터 시작한 모험과 마음속의 열정은 다시 반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 때 나는 지금과 달리 실패해도 잃을 것도 없었고 젊었기에 무모하리 만큼의 열정도 있었다. 그래도 한가지만은 항상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다. '지금 내가 실패하면 끝장이다. 나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라는 주문이었다. 단순해 보이지만 사업 초창기 많은 장애물이 등장할 때 나는 이 주문과도 같은 믿음보다 더 사람을 집요하게 만드는 기술을 발견하지 못했다.

꿈을 꿀 때는 크게 꿔야 한다. 그래야 비슷하게라도 될 것이었다. 어쨌든 데이콤에는 정보화 사회라는 미래산업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데이콤에 몸을 담았다는 것은 나에게는 축복이다. 월급을 받으면서 미래를 꿈꿔 볼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지금 나는 인터파크를 그 때 데이콤에서 내가 느꼈던 것처럼 미래를 꿈꿔 볼 수 있는 회사로 만들고 싶다. 임직원들에게도 그렇게 생각하면 주인이 될 것이고 현실만을 생각하면 객이 될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사실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모두 그 어느 하나만으로는 큰 일을 이루지 못한다. 기업, 사회, 국가도 그리고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잘 살고 돈을 많이 벌고 있어도 미래의 환경을 제대로 꿈꾸고 그려내지 못하면 시들어 버리고 만다. 참 실천하기 어려운 얘긴데, 알고보면 마하트마 간디가 이미 얘기했다. 비슷하게 기억하기로는 '하늘과 세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창문을 활짝 열고 받아들여라. 그러나 두 발은 땅을 굳게 딛고 있어야 한다.'라는 대목이다.

그 당시 내가 그렸던 꿈은 멀티미디어 세상이었다. 지금 보면 인터넷이 모든 것을 포괄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인터넷은 아직 대권을 잡고 있지 못했다. 멀티미디어 세상은 지역, 국가 나아가 세계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온라인을 통해 홈쇼핑, 홈뱅킹, VOD(주문형비디오)와 같은 서비스가 제공되는 세상이었다.

이 세 가지 사업부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부터도 세상 사람들 모두 이 세 분야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부문으로 생각해 왔고 지금도 이 부분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인터파크가 영위하고 있는 전자상거래 분야는 홈쇼핑에 기업간 상거래를 더한 모습이다. 온라인 금융은 홈뱅킹에 증권거래 등을 더하면 되고, 콘텐츠 산업으로 분류되는, 냅스터와 같이 MP3 음악파일 전송서비스와 인터넷방송 등은 VOD가 되면 다 포괄된다.

일식집에 가면 소위 '찌끼다시'라는 일본어로 표현되는 야채, 튀김, 잡어회 등이 나온다. 그게 맛있어서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음식값은 회가 차지하고 일식집 주인도 회에서 돈을 번다.

관련 사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들으면 화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도 포털, 메일서비스, 검색엔진 등을 부가적인 서비스 정도로 본다. 손님을 많이 끌어 모았으면 메인디쉬를 팔아야 한다. 홈뱅킹은 많은 사업자들에게 진입 가능한 분야가 아니다. 인터넷 관련 사업은 지금이라도 빨리 홈쇼핑류와 VOD류로 전환하고 이미 시작했으면 보강해야 한다. 그래야 수익을 얻을 것이다. 나만 하는 얘기가 아니라 인터넷의 원조라고 하는 미국과 뒤따르는 유럽, 일본 등지의 많은 미래산업을 연구하는 종사자들이 한결같이 해온 얘기이니 한 번 고려해 봄직하지 않은가?

각설하고, 사업을 하기로 한 이상 그 사업은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어야 하고, 기왕이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도록 시장이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분야여야 했다. 나는 유통을 주목했다.(계속)

/이기형 인터파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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