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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섭, 연봉 5천→1천2백 선택했던 '바보같은 초심'으로


[이성필기자] 지난 2009년 6월 20일 대전월드컵경기장, 이날 대전 시티즌은 부산 아이파크와 경기를 치렀다. 그러나 무게감은 달랐다. 당시 대전 지휘봉을 잡았던 김호 감독이 구단과 불협화음끝에 지휘봉을 놓았고 본의 아니게 고별전이 됐다.

이날 김 감독은 무명의 풀백 김한섭(31)을 출전시켰다. 김한섭은 김 감독이 시즌 시작을 앞두고 드래프트에서 1천2백만원 연봉의 번외지명으로 선발한 선수였다. 당시 경찰청에서 막 전역 한 뒤 스물여덟이라는 늦은 나이에 프로의 부름을 받았다.

막상 와본 프로는 내셔널리그와 큰 차이가 없어보였다. 가볍게 생각한 그는 내셔널리그에서 하던 데로 훈련에 나서다 김 감독에게 제대로 찍혔다. 선수의 발걸음만 봐도 심리 상태를 아는 노(老) 감독 앞에서 요령을 피우다 1군에서 밀려나 암흑의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러던 그에게 첫 출전 기회가 왔다. 하필, 김 감독의 고별전이었다. 분위기는 무거웠고 승리만이 답이었다. 그는 사력을 다해 뛰어 다녔고 3-2 승리에 공헌했다. 무한 체력과 끈끈한 수비력을 보여줬던 그 한 번의 경기는 왕선재 감독대행의 눈에 들어왔고 이후 그는 주전으로 도약했다.

풀백 기근에 시달리던 K리그에서 김한섭의 도약은 신선했다. 이청용(볼턴 원더러스)의 모교로 잘 알려진 도봉중학교 3학년 때 축구에 입문했다. 다소 늦은 나이에 시작한 축구 치고는 괜찮았고 내셔널리그 창원시청에서는 우수선수상도 받아봤다. 나름의 스토리를 갖고 늦깎이에 K리그에 데뷔해 연봉 대비 고효율을 내는 그의 인간적인 활약은 고무적이었다.

열심히 뛰는 그를 당시 대표팀 사령탑이었던 허정무 감독도 눈여겨봤다. 풀백 후보군에도 그를 넣고 조용히 지켜봤다고 한다. 결국, 당시의 인연으로 김한섭은 2011 시즌 도중 인천 유나이티드의 부름을 받았다. 우연처럼 허 감독이 부임해 그는 탄탄대로를 달렸다. 연봉도 10배 이상 올랐다. 허 감독이 적극적으로 국가대표로 손색없다며 조광래 감독에게 추천하는 등 광명이 그를 눈부시게 했다.

하지만, 행운 뒤에는 불운이 반드시 따르는 법, 2012 시즌 초 허 감독이 성적부진을 이유로 자진 사퇴하면서 김한섭의 질주도 멈췄다. 김봉길 감독대행체제에서 그의 자리는 없었다. 부상까지 겹치면서 그는 보이지 않았다. 4년 동안 두 감독의 경질을 겪는 비운도 한 몫 했다.

신기루 같은 시간을 보낸 김한섭은 다시 대전으로 돌아왔다.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지난 23일 제주도 서귀포 전지훈련지에서 만나 김한섭은 "승강제가 실시되면서 힘든 팀으로 돌아온다는 게 망설여졌다"라는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면서도 "확실하게 뛰고 싶다는 열망으로 대전에 왔다"라고 전했다.

김한섭에 대한 열망은 구단이 먼저 김인완 감독에게 추천하면서 이뤄졌다. 그만큼 구단에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다. 김 감독도 "모든 면에서 좋은 선수인 것 같다. 수비라인을 잘 이끌 것으로 믿는다"라며 신뢰를 드러냈다.

경찰청 전역 후를 다시 떠올린 그다. 당시 그에게는 울산현대미포조선, 고양국민은행 등 내셔널리그 강팀들의 영입 제의가 따랐다. 가서 잘 뛰면 최고 연봉인 5천만원은 충분히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법으로 정해진 한 달 최저 임금 수준에도 못 미치는 연봉 1천2백만원의 번외지명으로 대전을 선택했다. 동료 결혼식에서 만난 선후배들은 하나같이 "야 이 바보야, 5천만원 주는 팀에서 편하게 뛰면 되지 왜 돈도 안 되는 곳을 가느냐"라며 바보 같다고 비웃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고 시도한 도전이 현재의 김한섭을 만들었다. 그는 "내 선택이 맞다고 믿었다. 그래서 대전에 고맙다"라며 "인천에서 벤치 신세를 겪어보니 절실함을 느꼈다. 그래서 더 죽어라 뛰려고 한다"라고 선언했다.

설기현의 조언과 정인환의 국가대표 발탁도 큰 자극이었다. 설기현은 그에게 국가대표에서 충분히 풀백으로 뛸 수 있다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한섭은 "대표팀과 K리그에서 원하는 풀백은 차이가 날 수 있다. 너의 힘과 수비력이 분명 빛이 날 때가 있다. 대표팀도 그런 풀백을 원할 때가 올 것이다"라는 설기현의 조언을 소개한 뒤 "정인환이 국가대표 가는 것을 보고 팀이 잘하면 개인도 잘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라며 대전의 생존을 이끌면서 자신도 존재감 있는 선수로 다시 한 번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조이뉴스24 /서귀포=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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