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배우 강신효를 처음 본 것은 지난 2012년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였다. 영화 토크 행사 '아주담담'에서 그는 영화제 초청작이었던 '러시안 소설'로 관객들과 만났다. 낯선 얼굴의 신인 배우였지만 머뭇거림 대신 넘치는 패기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대세' 배우 이제훈을 언급하며 "'파수꾼' 속 이제훈 씨의 역할이 탐난다. '내가 저걸 했으면 저 정도 했을 텐데' 싶어 무척 탐이 났다"고 말했던 순간은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까무잡잡한 피부, 탄탄한 몸매와 달리 웃는 얼굴이 순해보인다고 생각했는데, 단 두 마디로 그의 남다른 야망이 읽혔다.
'러시안 소설'은 부산에서 첫 선을 보인 지 약 1년 만인 지난 19일 개봉했다. 이를 앞두고 만난 강신효에게 부산에서 느낀 인상을 전하자 호탕하게 웃어보였다. 그는 "그 때 욕을 많이 먹었다"면서도 "욕하는 분들이 반이었다면 '패기있다'는 반응도 절반 쯤 됐다. 진심이었으니 그 발언을 후회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영화는 27년 만에 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난 소설가 신효의 이야기다. 27년 전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신효는 긴 잠에서 깨어나 보니 전설적 작가가 돼 있다. 그러나 출판된 소설들이 자신이 쓴 원작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글을 고쳐 쓴 인물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극 중 핵심 인물들은 모두 신연식 감독이 연기 레슨을 통해 만난 제자들이 연기했다. 강신효·경성환·이재혜·이경미 등은 신인 배우들이지만 모두 탄탄한 기본기를 자랑한다. 감독은 제자들의 본명을 모두 영화의 배역명으로 사용했다.
"고등학교 때 연기를 하기로 결심한 이후 많은 곳에서 레슨을 받았지만 신연식 감독님은 달랐어요. 선생님을 그대로 따라하게 하는 대신 각 배우들에게 어울릴 만한 연기를 찾아주셨죠. 보통 학원에서 모든 학생들에게 같은 대본을 주고 연기를 시킨다면, 신 감독님은 각자에게 다른 대본을 주셨으니까요."
강신효는 주인공 신효 역을 맡아 신인답지 않은 연기를 선보였다. 신효는 소설가가 되겠다는 일념과 지식이 얄팍하다는 열등감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인물. 순수하면서도 열망에 불타는 청년 신효에게서 얼핏 실제의 강신효가 보일 법도 하다. 그는 "영화 속 신효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그가 너무 불쌍했다"며 "신효는 많이 약한 아이지만 실제 내 모습과도 닮은 점이 있다"고 말을 이어갔다.
"어머니께서 영화를 보시곤 극 중 재혜를 대하는 신효의 모습에게서 엄마에게 제 멋대로 굴던 제 모습을 보셨대요. 신효가 열등감이 강한 아이라면 저는 어릴 때부터 남에게 지는 것을 정말 싫어했어요. 운동도, 심지어 싸움도 무조건 일등을 하고 싶어했죠.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반장이나 선도부장을 꼭 했었고요. 어릴 때는 싸움 때문에 부모님 속도 많이 썩여드렸는데 고등학생 때 효도를 하고 싶다는 생각과 '뭔가 하긴 해야겠다'는 마음에 연기를 시작했어요."

미래를 생각하며 택한 처음이자 마지막 도전이 연기였던 만큼, 강신효의 가슴에는 남다른 독기가 있다. 그는 "신인들이면 누구나 한 번씩 겪는 서러운 경험들을 저 역시 겪은 적이 있다"며 "그럴 때면 '내가 잘 돼야 한다'는 마음이 더욱 깊어지더라"고 고백했다.
이런 마음의 신인 배우에게, 스승인 신연식 감독은 "살아가며 만난 귀인"이다. 강신효는 '러시안 소설'에 이어 신 감독의 영화 두 편에 연속으로 캐스팅됐다. 김기덕 감독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 진 '배우는 배우다'와 '러시안 소설' 속의 소설을 영화화하는 '조류인간'이 신연식 감독의 차기작인 동시에 강신효의 다음 필모그라피다.
"사람이 살면서 몇 명의 귀인을 만난다고 하잖아요. '러시안 소설' 마지막 촬영 때, 신연식 감독님이 제게 그런 사람이 아닐까 했어요. '배우는 배우다' 촬영을 마칠 때 쯤엔 '귀인이 맞구나' 생각했고요. 특히 인물이 커피 한 잔을, 밥 한 끼를 먹을 때에도 반드시 이유가 있을 거라는 가르침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감독님께 배우며 이런 저런 연기를 해 본 덕에 '러시안 소설' 속 연기도 가능했고요."
어린 시절부터 사람을 관찰하고 따라하길 즐겼다는 강신효는 인터뷰 중 즉석에서 영화 '신세계'의 박성웅, '숨바꼭질'의 손현주를 흉내내보였다. 중저음의 목소리와 날선 눈빛, 각 배우 특유의 말투를 살려내는 맛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원래 더 잘 하는데"라며 이내 눈을 접어 웃는 모습은 영락없이 해맑은 청년의 얼굴이었다. 수 초 만에 이렇게나 다른 사람이 되다니, 어디 가서도 끼로는 지지 않을 만하다. '배우는 배우다'에선, '조류인간'에선 또 어떤 표정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감이 일었다. 그리 멀지 않은 시일 내에, 훨씬 많은 이들이 강신효란 이름을 기억하게 될 것이란 확신도 떠올랐다.
출중한 신인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은 언제나 유쾌한 일이다. 우리가 강신효를 눈여겨봐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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