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확실히 일을 냈다. 지난 2009년, 기발하고도 패기있는 계획을 내밀며 네 명의 동생들과 유럽 여행을 떠났던 이호재 감독은 약 1년 간의 유럽 방랑기를 다큐멘터리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으로 완성했다. 개봉까지 짧지 않은 기간이 걸렸지만 달랑 카메라 한 대와 80만원을 들고 비행기에 올랐던 시작이 영화 개봉으로 이어진 것을 떠올리니 놀랍기만 하다.
영상을 만들 줄 아는 능력 하나만 믿고 '숙박업소 홍보 영상을 찍어주고 물물교환으로 무료 숙식을 제공받겠다'고 결심한 이 감독과 동생들은 어느덧 유럽 호스텔계 유명인사가 됐다. 동경하던 뮤지션 아르코의 뮤직비디오도 직접 완성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유럽행을 결심한 배짱이 눈에 보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키치적이고 때로 자유분방한 이들의 홍보 영상과 뮤직비디오는 다큐멘터리의 서사와 어울려 네 청년들의 재능을 짐작케 만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최선을 다했던 경험"이라는 감독의 말이 와닿는 맥락이었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잉여'들의 유랑이라기엔 가능성 또렷한 젊은이들의 자발적 고생기로도 보였다. 이호재 감독이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사람들'로 '잉여'를 정의했던 것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었다.
영화가 한창 관객을 만나고 있을 즈음, 서울 안국동의 한 카페에서 이호재 감독을 만났다. 극 중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통해 익숙해진 얼굴이었지만 예상보다 말수가 적고 차분한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여행을 함께 한 네 청년들 중 현재 하비(하승엽 분)와 휘(김휘 분)는 군 복무 중인 관계로, 이 감독은 현학(이현학 분)과 함께 무대인사와 GV, 인터뷰에 뛰어들며 영화 홍보에 나섰다. 바빠도 흥분되는 날들일 법했다.
이호재 감독에게 "하비, 휘도 함께 영화 개봉을 지켜봤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말을 꺼내자 그는 "전부 자기들의 복 아니겠냐"고 답했다. 진지하던 표정은 어디가고 금세 장난기어린 눈을 빛냈다.
"휘랑 하비의 경우는 이 영화가 훨씬 일찍 개봉할 줄 알고 버티며 기다렸어요. 그러다 최근에 군대에 갔죠. 현학은 영화 개봉 준비를 시작하기도 전에 다녀오겠다고 했는데, 제대하자마자 개봉을 했고요. 자기들 타고난 복대로 사는 것 같아요.(웃음)"
어느덧 여행 후 4년이 지났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이호재 감독은 "편집을 하면서도 그 시간에 머물러있다보니 잘 모르겠더라"며 "이 영화만 놓고 보니 이제야 프로젝트가 끝났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영상을 만들어주고 공짜로 여행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이호재 감독은 어떻게 실현했을까. 그는 "떠나기 전 다들 현재를 불만족스러워했다. 뭔가 훌훌 털고 일탈하고 싶다는 생각에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며 "비용도 없으니 물물교환을 해서 여행을 하자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땐 굉장히 혁신적이라고 느꼈다"고 웃으며 말했다.
"다들 혹해서 2주 만에 바로 표를 끊어서 떠났어요.(웃음) 뭔가 계획했더라면 아마 출발을 못했을 것 같아요. 그걸로 어떻게 시작하겠어요. 사실 뭔가 다른 길을 찾고 싶은 욕구도 내재돼 있었고요. 학교 생활도 힘들었고, 지적을 많이 당하면서 영화에 별다른 재능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로또가 되면 집을 사고 적금을 넣어야지'하고 상상하는 것 같은 결정이었어요."
시작은 무모했지만 끝은 그렇지 않았던 이들의 프로젝트를 곱씹다보니 이호재 감독의 두 번째 프로젝트 역시 궁금해졌다. '다른 영화를 구상하고 있다'는 판이한 답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기대보다도 특별한 계획이었다.
"밴드를 하려고요. 시작은 밴드로 하고 뮤직비디오 작업을 하면서 뮤지션들을 만나고 싶어요. 유럽에 다녀와서 음악에 대한 환상이 많이 생겼어요. 즉석에서 창작하고 연주하는 모습이 부럽다고 생각했죠. '나도 저렇게 컴퓨터 작업 없이 바로 바로 뭔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지금 음악을 하면 되지' 하는 마음까지 먹게 됐고요."
이번에도 감독의 꿈은 작지 않았다. "버스를 만들어 여행을 떠나고 싶다. 동생들이 제대하면 악기를 하나씩 맡게 될 것"이라는 계획을 쭉 듣고 있자니, 마치 하나의 대안적 종합 문화 프로젝트의 개요를 접한 기분이었다. 가공되지 않은, 패기 넘치는 창작물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하는 희망이 진지하게 다가왔다.
"저희들이 영화를 전공했으니, 영화에 대한 꿈이 있었죠. 사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작업을 시작하며 스펙트럼이 넓어졌어요. 홍보 영상부터 뮤직비디오, 다큐멘터리까지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고 있어요. 직업을 갖기 전에 누구나 꿈을 꾸지만 일을 시작하면서는 오히려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죠. 그런 것들을 보다 넓게 해방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요. 저희같은 사람들에게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지난 11월28일 개봉 후 다양성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점하는가 하면 2013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중 최단기간인 12일 만에 1만 명의 관객을 돌파하는 성과를 냈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이 영화를 다큐멘터리 부문 좋은 영상물로 선정, 네 청년들의 엉뚱한 도전기에 힘을 실었다.

이하 이호재 감독과 일문일답
-영화에선 영상 작업을 도와줄 다른 인물들도 함께 유럽으로 출발했다가 한계를 느끼고 돌아오는 장면이 담겼다. 감독의 무모한 계획이 많은 사람들을 '낚은' 셈이다.
"많이 낚였다.(웃음) 처음 이 일을 구상했을 땐 정말 될 것 같았다. 돈을 받고 영상을 만들겠다거나 사업을 한다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민박집들이 분명 모여 있고 영상으로 만들어주면 좋아할 것도 같고 소문도 날 것 같더라. 그럼 온 유럽을 다 돌아다니자고 생각했다. 인지도도 생길테고 우리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비틀즈가 될성싶은 뮤지션을 발굴할 수도 있고, 걔가 뜨면 우리는 성공하는 거라고, 계속 생각이 퍼졌다."
-호스텔 영상을 보니 패기가 느껴졌다. 엉뚱하기도 하고.
"만들어놓고도 망했다고 생각했다. '남의 집에 무슨 짓을 한거지?' 싶었던 거지. 불을 지르고 폭파하고.(웃음) 만들고도 주인이 보면 싫어할 것 같아서 짐 싸서 나갈 준비를 하고 모니터했다. 보고 나서 담당자가 '괜찮다'고 좋아했는데 동정하는 것 같다고, 우리가 불쌍해서 좋아해줬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사실 막 만들었지만 절실하게 만들었다. 실패하면 끝나니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내레이션을 감독 본인이 직접 했다. 랩을 하듯 리듬이 있는 억양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말은 처음 들었다.(웃음) 제가 편집을 하니까 내레이션을 하게 됐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화자가 있어야 한다고, 제3자가 내레이션을 하는 건 아니라고 봤다. 그렇다고 동생들이 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시작한 사람이 끝맺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은 '잉여'지만 영상을 만드는 기술이 있으니 그다지 '잉여'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아무 기술도 없는 청년들이 영화를 본다면 허탈해 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영상을 조금이라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보면 충분히 더 잘하실 수 있을 거다. 영상 분야 뿐 아니라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우린 (대학) 시작 단계부터 별다른 기회가 없었다. 학기 앞두고 작업을 시작한 것도 앞날이 불안해 공부를 지속하기엔 재능이 부족한 것 같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래서 좀 더 쉽게 학교에 등을 돌릴 수 있었다. 하비는 (영상에서도 등장하는 특이한) 선글라스를 평소에도 쓰고 다녀 욕을 많이 먹었다. 어느 그룹에 끼지도 못하고. 그래서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하비를 그렇게 만들었던 선글라스가 호스텔 홍보 영상에선 하비를 트레이드 마크로 만들었으니, 흥미로웠다."
-학교를 그만두고 보다 넓은 세계로 뛰어들게 된 계기가 있었나?
"계기가 있긴 했다. 영사실에서 일년 반 동안 일을 했는데, 아직 국제통상학을 전공하던 중 휴학 상태였다. 근처 헌책방 골목에서 책을 사서 보고, 나오는 영화를 봤다. 오타쿠처럼 시끄러운 영사실에 짱박혀 나가질 않았다.(웃음) 영사실은 쉬는 날이 없으니까, 365일 그러고 있다 보니 바깥 세상이랑 단절됐었다. 당시 대학 동기들도 '거기서 뭐 하냐'며 비난하곤 했다. 다들 취업준비 할 때였으니. 그 때 흔히들 이야기하는 '잉여'로 살았다. 가장 '잉여로웠던' 시절이었다. 당시 일했던 극장에서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첫 GV를 했다."
-다큐멘터리에서 멤버들은 다소 무리한 계획에도 크게 불만을 표하지 않더라. 다들 착하고 평온한 성격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제가 형이기도 하지만, 그 친구들에게 나는 영사실 같은 느낌이 아닐까. 편안하게 무언가를 같이 공유하는 마음이 있는 듯 싶다. 내가 세운 계획에 무조건 다 동의하는 것 같더라. 위계질서가 전혀 없으니 복종도 아니고, 신봉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같이 있는 게 즐겁고 뭘 해도 행복하기 때문에 같이 갈 수 있는 것 같다. 그게 제일 재밌다. 지금 영화가 개봉하고 이 프로젝트가 마침내 마무리됐지만, 우린 사실 그 이전부터 계속 한 단계씩 나아가 왔던 거다. 그 자체를 우리는 다 값진 경험이라 생각한다. 단지 영화가 개봉해서 가치있다고 느낀 것이 아니다. 개봉을 못했을지언정, 우리에겐 과정이 중요했다. 모든 단계들이 하나의 시도였고 성공의 과정이었다. 큰 결과만 놓고 성공했다고 하는 건 아쉬운 일이다."
-과정을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와닿는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청년상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지만, 대안적 가치로 주목받을 만한 이야기다.
"이번 프로젝트로 그런 가치를 알아가게 된 것 같다. 시작할 때는 아무 생각 없었다. 사실 엄청난 경쟁을 이기고 엘리트 코스를 밟고 멋지게 데뷔하는 것, 그런 게 정말 멋진 일이긴 하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고,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 모두 그 길을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모두 그런 길을 가길 바라고, 우리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에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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