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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종영①]김희애의 대차대조표, 과거와의 밀회


법정 최후 진술로 과거를 돌이키다

[권혜림기자] 오혜원 인생의 대차대조표는 부채 투성이였다. 화려한 궁전에 입성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것을 잃고 또 잊었다. 상상하지도 못했을 굴욕을 앞두고서야 뭔가 잘못돼 가고 있음을 알게 됐다. 다르게 살겠다는 결심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손에 쥔 호화로움이 제 것이 아님을 깨닫는 데에 꽃 같은 청춘을 모두 썼다.

지난 13일 JTBC 월화드라마 '밀회'가 16부를 끝으로 종영했다. 20세 차 남녀의 불륜을 외피로 둘렀지만 애끓는 사랑보단 통렬한 자기 반성이 와닿는 엔딩이었다. 서한그룹의 비리에 깊숙이 얽혀 있던 오혜원(김희애 분)은 법정에 섰다. "내가 행한 모든 범법 행위는 그 누구의 강요도 아니고 오직 저의 선택이었다"고 밝힌 그는 상류 사회에 편입하려 서한그룹의 '우아한 노비'로 살았던 과거를 절절히 알렸다.

오혜원은 학창 시절부터 그룹 회장 서필원(김용건 분)의 딸 서영우(김혜은 분)를 친구로 곁에 두며 그의 시녀 노릇을 했다. 사고뭉치 서영우의 뒤치다꺼리가 늘 자신의 몫이었지만 대가는 달콤했다. 영우와 함께 유학길에 올랐고, 야심과 능력으로 완벽한 커리어우먼이 됐다.

서한그룹의 삼중첩자 노릇도, 떼쟁이 남편과 쇼윈도 부부 생활도 무리 없이 견디던 그에게 20세의 가난한 천재 피아니스트 이선재가 다가왔다. 빛나는 재능과 맑은 영혼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다. 사랑은 불륜이었고 스캔들은 그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음모가 판을 치는 세계, 치욕의 중심에 선 오혜원은 기꺼이 죄를 고백했다. 서한그룹의 개로 윤택한 삶을 누리느니 창살 안 감옥을 택했다.

"저 혼자만의 능력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라 그 모든 걸 다 진짜 제 걸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제가 포기한 음악의 세계에도 맘껏 힘을 행사하고 싶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었던 것처럼, 유전자에 저금이 돼있는 것처럼, 아무도 뺏지 못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 뜻하지 않게 제 인생의 대차대조표가 눈 앞에 펼쳐졌어요. 그렇게 사느라고 잃어버린 것들, 생각하기도 두렵고 인정하기도 싫었던 것들이 제게 물었습니다.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거냐고요."

오혜원의 뇌리에 삶의 대차대조표를 스치게 한 인물은 이선재였다. 혜원은 선재를 통해 과거를 돌아봤다. 가난을 부끄러워 않고 사랑도 많은 순수한 청년.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사는 선재의 모습은 오혜원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쳤다. 껍데기 뿐인 삶은 관성이 돼버렸지만 "누구한테서도 받아보지 못한" 선재의 정성이 수레바퀴를 멈추게 했다.

'밀회'는 종종 현재 시점의 장면들을 통해 오혜원의 생애사를 돌이켰다. 선재와 혜원이 둘만의 여행을 떠나 빌리 조엘의 명곡 '피아노 맨'을 함께 듣는 신은 그 자체로 오혜원의 낭비된 젊음을 담아냈다. 청춘의 자존감을 헌납한 대가, 근사해야만 할 인생이 더없이 초라해지던 순간이었다.

13화부터 등장한 '왕따들의 5중주'는 과거를 빌리지 않고도 오혜원의 삶을 연상시켰다. 음대 비리의 희생양 장시은(김신재 분)을 비롯해, 다섯 명의 학생들은 서한음대를 자퇴하기로 결심한다. 시은과 마찬가지로 비싼 악기를 사는 것에 부담을 느끼곤 했던 평범한 학생들이다.

음대 교수 조인서(박종훈 분)는 이들에게 대학 시절 동기인 한 교수의 메일을 읽어준다. 전교에서 제일 싸구려인 악기로 대회도, 유학 오디션도 소화했다는 그의 메일에는 "마음이 실리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것도 그냥 물건이야. 마찬가지로 아무리 싸구려라도 나를 표현하고 담아낼 여지는 있어. 지금 당장 너한테 있는 걸 진심을 다해서 아끼고 사랑해주길 바래"라는 내용이 담겼다.

다섯 학생들은 비리 투성이인 학교에 작별을 고하며 굿바이 연주회를 연다. 값싼 것이라 아쉬웠던 악기들로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고, 다른 학생들의 박수도 받는다. 이들에겐 최고급 악기를 사거나 로비를 할 능력은 없다. 하지만 멋들어진 연주 이후 이 더러운 세계의 암투와 비리를 등질 용기는 있다. 이는 곧 오혜원이 살아야 했을 청춘이기도 했다.

마지막화 오혜원의 최후 진술은 그래서 더욱 통렬하다. "심지어 나란 인간은 나 자신까지도 성공의 도구로만 여겼다"는 그는 "저를 학대하고 불쌍하게 만든 건 바로 저 자신이었다"며 "그러고 살면서 저도 기억할 수 없을만큼 많은 사람들한테 상처와 절망을 줬을 것"이라고 말한다. 학생들의 굿바이 연주회, '왕따들의 5중주'는 혜원의 자기 변론과 자연스럽게 병치된다.

"저는 지금 오직 저 자신한테만 집중하려고 합니다." 오혜원의 진술 첫 마디다. 남녀의 비밀스런 만남만을 연상시켰던 이 드라마의 제목에 다른 의미를 둘 수도 있을 법하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과거와의 밀회. 오혜원과 이선재의 사랑은 그 은밀한 만남을 위한 완벽한 장치였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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