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기자] 홍명보가 감독으로 첫 선을 보인 지난 2009 이집트 U-20 월드컵. 홍명보 감독은 등장부터 확실한 '정체성'을 보여줬다.
한국 최고의 수비수 출신 홍명보 감독이기에 그가 택한 정체성도 '수비'였다. 청소년대표팀 홍명보호는 선수비를 중점에 뒀다. 수비를 확실히 한 후 역습에 나서는 것이다. 단단한 수비를 바탕으로 한 방의 역습을 통해 골을 노리는, 홍명보호의 정체성은 이른바 수비 축구였다. 골을 많이 넣어 대승을 거두는 축구가 아닌, 골을 먹지 않는, '지지 않는' 축구였다.
이런 홍명보호의 정체성은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냈다. 지지 않는 축구는 힘을 냈다. U-20 월드컵에서 한국은 18년 만에 8강에 올랐다. 상급 대표팀으로 가도 정체성은 변하지 않았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 2012 런던 올림픽 사상 첫 동메달 역시 홍명보호의 지지 않는 축구에서 나온 힘이었다.
국가대표팀 홍명보호 역시 정체성을 이어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비 조직력이었다. 홍 감독은 당연히 수비 조직력에 가장 신경을 쓰며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이런 정체성을 품고 홍명보호는 브라질로 갔다.
2014 브라질월드컵 1차전 러시아전에서는 결실을 얻었다. 러시아 역시 한국과 비슷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 수비를 단단히 하며, 또 서로 한 방의 역습을 노렸다. 한국은 이근호의 골로 1-1 무승부를 거뒀다. 희망을 봤고 16강 가능성을 봤다.
2차전 알제리전에서는 판단 미스였다. 알제리는 공격적인 정체성을 가진 팀이었다. 그런데 1차전 벨기에전에서는 수비 전술을 들고 나왔다. H조 최강 벨기에를 상대하기 때문에 알제리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지만, 한국은 알제리의 수비 위주 전술을 보고 현혹되고 말았다.
그래서 홍명보호는 러시아전과 같은 선수, 같은 전술로 나섰다. 수비에 집중하며 역습으로 골을 노리려 했다. 그런데 알제리는 주전 5명을 바꾸며 공격적인 팀으로 변모했다. 러시아전과 비슷한 분위기를 예상했는데 그러지 않자, 한국은 당황했다. 한국은 흔들렸고 순식간에 무너졌다. 한국은 전반에만 3골을 허용했다. 결국 2-4 대패를 당했다.
홍명보호는 오는 27일(한국시간) 열리는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 벨기에전을 기다리고 있다. 벨기에 상대 전략은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다. 공격적인 팀이기 때문이다. H조 최강의 공격진을 자랑하고 있는 벨기에다. 이미 16강을 확정지은 벨기에가 주전 몇 명을 내보내지 않겠다고 하지만 그래도 벨기에는 강하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홍명보호는 당연히 수비 전술을 들고 나와야 한다. 그동안 품어온 정체성을 이어가야 한다. 약팀이 강팀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단단한 수비로 상대 공격을 막은 후 한 방의 역습으로 골을 넣는 것이다. 벨기에를 상대하는 한국은 당연이 그런 전술을 써야 한다. 홍명보호가 지금까지 해온 대로 말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다. 한국은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것도 다득점이 절실한 상황이다. 벨기에전에서 많은 골을 넣고 이겨야만 16강 진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홍명보호는 벨기에전에서는 정체성을 바꿔야 한다. 선수비-후역습이 아닌, 처음부터 적극적인 공격을 시도해야 한다. 적극적인 공격만이 기적을 가져올 수 있다. 많은 골만이 16강 가능성을 살릴 수 있다.
물론 위험한 일이다. 한국이 역으로 더 많은 골을 허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위험한 일을 홍명보호는 해야 한다. 승부를 걸어야 한다. 과감하게 공격해야 한다. 골을 허용하면 더 적극적으로 공격해 더 많은 골을 넣어야 한다. 안정적인 기적은 없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승부수를 띄우는 것이 기적에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다.
따라서 홍명보호는 벨기에전에 보다 공격적인 스쿼드를 꾸려야 한다. 공격수는 물론이거니와 중원도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선수들, 수비도 공격 능력이 있는 수비수들을 포진시켜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공격을 해야 한다. '닥공(닥치고 공격)'이 필요한 시점이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홍명보호의 정체성. 16강 진출 기적을 위해서라면 이번만큼은 한 번 바꿔야 한다. 홍명보호가 출범한 후 가장 공격적인 대표팀의 모습을 기다린다.
조이뉴스24 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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