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영화 '소수의견'(감독 김성제/제작 하리마오픽쳐스)은 빛을 보기 전부터 숱한 논란과 이슈의 중심에 선 작품이었다. 강제철거 현장에서 일어난 두 청년의 죽음을 둘러싸고 100원짜리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변호인단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무려 2년이나 개봉을 기다려야 했다.
정치적 해석이 분분한 비극 용산 참사를 소재로 해서인지, 애초 배급을 맡기로 했던 CJ E&M에선 기약 없이 개봉길이 막혔다. 영화가 빛을 보지 못하는 이유엔 정치색 외에 완성도나 재미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는 풍문도 돌았다.
영화는 새 배급처 시네마서비스를 통해 지난 6월24일부터 관객을 만나고 있다. 개봉 지연을 둘러싼 무수한 '썰'들을 뚫고 스크린에 걸려 있다. 언론 시사를 통해 베일을 벗은 직후부터, 영화를 둘러싼 소문의 진위는 어느 정도 가려졌다. 오랜만에 등장한 잘 만든 법정 영화라는 평이 뒤따랐다. 영화의 완성도가 개봉 지연의 이유였다는 소문은 간단하게 부정됐다.

정치색이 짙을까 우려한 사람들에게도 영화는 안도감을 안겼을 법했다. 영화를 가로지르는 정서는 차분했고, 때로 차가웠다. 실화의 비극을 적극적으로 환기시키는 대신 한 변호사의 갈등과 성장을 가만히 따라갔다. 법조 시스템의 구태의연한 병폐를 지적하는 것을 넘어 한국 사회의 갈등 구조를 복기하게 만들었다. 제목인 '소수의견'은 전복적 의미로 사용되며 메시지를 강조했다.
영화를 연출한 김성제 감독은 원작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소수의견'을 영화의 제목으로 쓰겠다고 처음부터 결심했다. 이견도 있었다. 법률 용어로서의 소수의견과 통상 사용되는 의미 사이의 격차가 오해나 혼선을 부를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극 중 강제 철거에 맞선 철거민 박재호(이경영 분)는 시위 현장에서 아들을 잃고, 그는 현장을 진압하던 경찰을 사망에 이르게 만든다. 아들을 죽인 자가 경찰이 아닌 용역 직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에 맞서, 박재호와 그의 변호인단은 박재호의 정당방위를 입증하기 위해 애쓴다. 우여곡절 끝에 변호사 진원(윤계상 분)과 대석(유해진 분)의 뜻대로 국민참여재판이 진행되지만, 배심원들과 판사의 뜻은 대척점을 가리킨다. '소수의견'의 중의적 의미는 그렇게 관객들을 고민에 빠뜨린다.
감독은 "영화에서도 소설에서도 '소수의견'은 박재호(이경영 분)에서 판사(권해효 분)으로 끝나는, 양면적이고 중의적인 제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배심원단 9명의 평결을 뒤집는 판사의 판결을 통해서 다수의 감정에 반하는 소수의 결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소수의견'의 도입에는 영화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며, 등장 인물 역시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자막이 삽입됐다. 영화가 용산 참사에서 모티프를 얻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관객들의 사전 지식으로 자리했고 영화를 둘러싼 논란들 역시 영화계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터. 감독은 "처음 개봉을 준비할 땐 자막을 넣을 계획이 없었지만 구설에 휘말린 뒤엔 자막을 삽입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자막으로 시작하면 '감독이 외압에 시달렸나?'하는 생각을 하는 관객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어요. 자막을 넣은 이유는 허구라고 알린 뒤 리얼하게 찍으면 영화가 관객의 뇌리에 더 구음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여겼기 때문이에요. 아무 정보 없이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이 영화를 본다면 그냥 보는 거고, 구설을 알고 온 관객이라면 의자에서 몸을 떼고 영화에 집중할 수 있겠다 싶었죠."
2년 간 개봉이 밀리면서, 감독의 마음에도 여러 고민이 날아들었다.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 감독으로선 유쾌하지 않았을 소문이 돌았다는 것도 김 감독은 알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도 '혹시 영화가 극장에 걸리기 너무 '후져서' 그런가'하는 생각에 휩싸이기도 해 괴로웠다"고 털어놨다.
"영화의 제작보고회 때는 '일단 불쌍한 척은 하지 말자'고 생각했었어요. 2년 간 영화 개봉도 못 시킨 감독이라고 불쌍하게 볼 텐데, 곧 영화를 보여드릴테니 그런 척 말자는 생각을 했죠. 언론 배급 시사 후에는 강력하게 제 이야길 하고 싶었어요. 시사 때 가장 기뻤던 것은 '이 영화 개봉 못할 만큼은 아닌데'라고 봐 준 분들이 많았다는 사실이죠."
'소수의견'의 미덕을 느끼게 하는 또 하나의 지점은 완성된지 2년이 흘렀음에도 '촌스럽다'는 감상이나 '묵은 영화'의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이에 대한 김성제 감독의 답이 인상깊다. "한국 사회가 촌스러워서 그렇다"는 것이 그의 망설임 없는 답변이다.

"'소수의견'은 비극이 아닌, 비극이 해결되는 방식을 들여다 본 영화잖아요. 사람들은 영화를 둘러싸고 용산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데, 사실 용산을 빼고 스토리가 달라졌대도 같은 문제의식을 마주칠 수 있었다고 봐요. 비극이 처리되는 한국 사회의 프로세스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세월호도, 메르스 사태도 마찬가지겠죠. 이 정권에만, 혹은 전 정권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도 아니예요. 특별한 일이 아닌 게 돼버렸다는 거죠. '왜 이렇게밖에 해결을 못하지?'가 영화적인 소재였던 것이고요. 어떤 사람들은 영화가 우렁찬 목소리로 뭔가를 이야기하길 기대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한 번의 비극이 아니잖아요. 그랬다면 큰 목소리로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할 수도 있었겠죠. 차분히 들여다보면 늘 이래왔어요. 그러니 차분한 목소리 안에서도 할 말을 하려 했죠."
'소수의견'이 높은 완성도로 호평을 얻었던 배경으로 튀지 않고 어우러진 배우진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변호사로 분한 윤계상과 유해진, 열혈 기자 공수경 역을 맡은 김옥빈, 박재호 역의 이경영, 검사 역의 김의성, 판사 역 권해효, 경찰 아들을 잃은 아버지 역의 장광, 판사로 깜짝 등장한 박철민, 짧은 분량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긴 신예 조복래와 엄태구 등 다 꼽기에 손가락이 부족할만큼 많은 배우들이 영화의 곳곳을 메웠다.
감독은 "주연을 맡을 배우에겐 연기력 뿐 아니라 매력도 필요하지 않나"라며 "우리 배우들이 매력적으로 보이길 원했다"고 말했다. 진원 역의 윤계상을 가리켜서는 "좋은 배우들, 좋은 선배들과 함께 있을 때 연기를 잘 하는 배우이니 연기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돌이켰다.
"극 중 진원은 많은 인물들을 만나요. 연기력 좋은 배우들을 그 곳에 모두 데려다놨죠. 그 신에 대해 윤계상이 자신감을 갖게 해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서로 영향을 받으며 끌리는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여겼고요. 이준익, 김지운 등 영화를 본 감독님들이 모두 '윤계상이 좋았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업계 관계자들에게 '윤계상이 좋은 영화에서 좋은 역을 맡을 수 있다'는 확신을 준 것 같아 너무 좋아요."
영화에 뒤따르는 호평 속에, 감독은 '배우가 칭찬받는게 이래서 좋은 것이구나'라며 몰랐던 기쁨을 느끼게 됐다. 감독은 "관객들은 배우를 통해 영화를 기억한다"며 "배우의 연기가 좋았다는 것은 그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가 관객에게 통했다는 뜻 아닌가"라고 웃으며 말했다.
'소수의견'이 개봉을 기다리는 동안 수 편의 영화를 흥행으로 이끌고 tvN '삼시세끼'로 스타덤에 오른 유해진에 대해서도 감독은 농담 섞인 호평을 내놨다. 그는 "유해진 형이 너무 떠 버려 약간 억울하다"며 "유해진이 3년 전에 이 영화에 캐스팅됐다는 것을 잘 기억해달라"고 말하며 크게 웃어보였다.
"유해진이 진지한듯 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멋지기도 한 캐릭터를 얻은 건 영화도 드라마도 아닌 '삼시세끼', 그리고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다'는 유행어를 남긴 광고였잖아요.(웃음) 정극 안에서 희극적 이미지와 광인같은 얼굴을 오가며 자유자재로 리듬을 탈 줄 아는 배우는 송강호 뿐이라고 여겼는데, 유해진은 이미 이 영화에서 그런 연기를 펼쳤다고 생각해요."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