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국민 시인' 윤동주의 생애를 스크린에 옮긴다는 기획은 발상의 단계부터 신연식 감독의 가슴을 두근대게 만든 프로젝트였다. 시나리오가 채 완성되기 전, '동주'(감독 이준익, 제작 루스이소니도스)의 가제가 '시인'이었을 때부터 그는 이 유례 없는 영화를 어떤 색채로 완성시켜야 할지 깊이 골몰했다.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전작 영화들에서도 짙은 문학적 서사를 녹여내 온 신 감독에게 윤동주 시인의 이야기를 영화화하는 일은 충분히 유의미한 작업이었다. 직접 시나리오를 쓴 이 영화의 메가폰을 걸출한 선배인 이준익 감독에게 맡기고, 그는 제작 부문을 총괄하며 영화의 전체 그림을 그려나갔다.
신연식 감독은 '좋은 배우'(2005), '러시안소설'(2012), '조류인간'(2014) 등 저예산 수작들을 통해 탁월한 연출력과 현장 감각을 자랑해왔다. 5억여 원의 예산이 투입된 영화 '동주'가 흥행에도 성공하면서 신연식은 감독이자 제작자, 각본가로서 다시 한 번 한국영화계가 주목해야 할 멀티플레이어가 됐다.

조이뉴스24가 신연식 감독을 만난 시기는 '동주'가 8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던 즈음이었다. 현재 '동주'는 100만 명 이상의 누적 관객수를 기록 중이지만, 당시의 총 관객은 70만여 명이었다. 100만 고지가 눈앞이었지만 신 감독은 영화의 100만 돌파를 확신하지도, 더 높은 흥행 스코어를 욕심내지도 않았다.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면 안 되니 손익분기점만 넘기길 원했다. 그러고 나니 나머지 숫자는 전혀 중요하지 않더라"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흥행 스코어를 예상하진 않았어요. 배급사는 어땠을지 모르겠고, 또 각자의 예상치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동주'가 일반 상업영화는 아니잖아요. 이준익 감독님은 농담처럼 '이 영화로 네 빚이나 갚으면 좋겠다. 못 갚으면 한 편 또 하자'고도 하셨죠.(웃음) 애초에 스코어를 예상하지 않았던 건 '동주'와 비슷한 조건의 영화, 즉 참고할 수 있는 데이터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어요. 저예산이지만 사실 진짜 독립영화들과 비교하면 저예산도 아니고, 메이저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배우들도 마이너한 배우들이라 하기 어렵잖아요. 게다가 흑백영화였으니 기준을 세우기가 더 어렵고요."
더 많은 누적관객수를 욕심내기 앞서, 신연식 감독은 '동주' 작업을 통해 "개인적 성취"를 모두 이뤘다고 말한다. 그는 "좋아하는 선배 감독과 의미있게, 즐겁게 작업했고 이준익 감독의 커리어에 이 영화가 '마이너스'는 아닌 것 같다는 점에서 이미 만족감이 생겼다"고 웃으며 말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동주'의 두 주인공 청년을 연기한 강하늘과 박정민의 연기에도 찬사를 쏟아냈다. 강하늘은 윤동주 역을, 박정민은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외사촌형제인 송몽규 역을 연기했다. 영화를 통해 보다 인간적인 이미지를 입은 윤동주 역은 물론이고, 역사 속에 묻혔던 실존 인물 송몽규 역 역시 이 영화의 발견이었다. 신연식 감독은 두 배우의 재능과 노력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두 배우는 스타일이 서로 전혀 달라요. 그런 두 친구가 출연해 더 좋았고요. 주인공이 두 명이다보니 비교를 하는 시선도 많은데, 누가 더 잘한다고, 혹은 못한다고 말할 수가 없어요. 서로 다른 타입의 연기를 하기 때문이죠. 강하늘과 박정민 모두 제 역할을 너무 잘해줬어요. 우리 작품 속 배우들에게선 누가 밀리는지, 혹은 밀리지 않는지와 같은 관점을 찾아볼 수 없었어요."

강하늘이 '동주'에 캐스팅된 것은 지난 2014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였다. 당시 '사도' 작업으로 한창이었던 이준익 감독을 신 감독 역시 오랜만에 만났다고 했다. 이미 신 감독과 '동주' 작업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던 이준익 감독은 여러 영화인들과 함께였던 술자리에서 강하늘을 만났다. 이 감독의 작품 '평양성'은 강하늘의 영화 데뷔작이기도 하다. '동주' 프로젝트에서 연출과 캐스팅을 모두 맡기로 했던 이준익 감독은 마주한 강하늘에게서 시인의 모습을 읽어냈다. 송몽규 역에 박정민을 구두 합의로 캐스팅한 것 역시 그 즈음이었다.
"(강)하늘이와의 그 만남 이후 이준익 감독님은 하늘이가 가진 매력과 섹시함을 제게 2시간 동안은 이야기하셨어요. 하늘이가 지닌 이미지와 관련해 대화가 뻗어나가며 댄디즘부터 오스카와일드까지 여러 이야기를 나눴죠.(웃음) (박)정민이에 대해선 '신촌좀비만화'와 '전설의 주먹' 때 이야기를 하셨어요. 역시 굉장히 오랫동안요. '동주'를 기획하며 캐스팅은 감독님이, 스태프 구성은 제가 하기로 합의했었어요. 하지만 강하늘, 박정민이 캐스팅된 뒤 다른 배역들에 대해선 제 추천을 모두 받아들이셨어요. 결국 두 배우들 외엔 모두 제가 캐스팅을 한 것처럼 됐죠.(웃음)"
독립영화계에서는 물론이고 메이저 영화계에서도 발이 넓은 신연식 감독은 배우를 캐스팅하는 남다른 안목을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 '배우는 배우다'를 통해선 아이돌 가수 출신 이준을 출중한 신예 배우의 반열에 올려놨다. '조류인간'의 김정석은 몽규의 아버지 역으로 출연했고 고등형사 역 김인우는 신 감독의 인권영화 '과대망상자들'에도 등장한다.
(2편에서 계속)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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