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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의 '부산행', 보편성의 승리(인터뷰)


"내 영화, 늘 직접적이고 촌스러웠다"

[권혜림기자] 영화 '부산행'(감독 연상호, 제작 ㈜영화사 레드피터)이 이룬 성과는 언급하기만도 바쁠 정도다. 최단 기간 흥행 기록을 갈아엎은 것은 물론, 천만 흥행 고지를 목전에 두고 있다. 영화가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좀비를 소재로 한 블록버스터라는 점, 누구도 끝을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도전을 상업적 성공으로 마무리하게 됐다는 사실은 그 중에도 빛나는 기록이다.

7월20일 공식 개봉한 '부산행'은 지난 4일을 기준으로 941만6천74명의 누적 관객수를 기록 중이다. 빠르면 오는 주말, 늦어도 개봉 4주차엔 천만 흥행을 달성할 것으로 관측된다.

'부산행'의 흥행이 갖는 특별한 의미에는 영화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의 독특한 이력도 포함된다. 연 감독에게 '부산행'은 첫 번째로 연출한 실사 영화다. 그는 '돼지의 왕'과 '사이비' '창' 등 애니메이션 작품들로 관객과 평단의 사랑을 받아온 인물이었다. 첫 도전한 실사 데뷔작으로 천만 축포를 쏘게 된 셈이다.

'부산행' 개봉 당시 조이뉴스24와 만난 연상호 감독은 일찍이 이 영화를 둘러싸고 있던 높은 기대치에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영화가 잘 되는 것은 좋지만, 너무 잘 되면 다음 영화를 작업할 때 그만큼의 부담이 느껴지지 않겠나"라는 이야기였다.

그간 칸국제영화제 초청 여부에 대해서도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크게 느껴졌다고도 알렸다. '돼지의 왕'이 칸 러브콜을 받았지만 '사이비'는 그렇지 못했고, 다시 '부산행'으로 칸 레드카펫을 밟았으니 그 소회가 남다를 법도 했다. 칸 초청으로 포문을 연 '부산행'은 이후 숨가쁜 흥행 릴레이를 이어갔다.

연 감독은 "'부산행'이 너무 잘 되면, 다음 작품은 그보다 더 잘 돼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비슷하게라도 잘 돼야 하나 싶은 마음도 있다"며 "칸에 한 번 초청되고 다음 영화가 안 됐을 때 이슈가 되는 것처럼, 흥행도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자신의 애니메이션에 큰 지지를 보냈던 관객들 중 일부가 '부산행'의 연출에 아쉬움을 보냈던 반응 역시 파악하고 있었다. '돼지의 왕'과 '사이비' 모두, 숨 막히게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연상호 감독은 "그에 비해 '부산행'이 직접적이고 촌스럽다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있더라"며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내 영화는 늘 직접적이고 촌스러웠다. 내가 그런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기본적으로 제 지론은 멋있는 방식으로 만드는 게 아니었어요. 일년에 영화를 백 편 보는 사람과 한 편 보는 사람이 똑같은 메시지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죠. '아는 사람만' 이해하는 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런 면에서 '부산행'은 더욱 대중 영화에 가까웠으니 더 확실히 메시지가 드러나야 한다 생각하기도 했죠. 촌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마 훨씬 더 많은 분들이 그런 면 때문에 이 영화를 볼 거라 생각해요."

영화가 천만 흥행을 눈앞에 둔 이 시점에서 연 감독의 대답을 돌이키니 놀라울 뿐이다. 그가 의도한, 보편 감정을 건드린 감동 서사는 극장가를 '부산행' 열풍으로 물들였다. 한국영화계는 날카로운 현실 인식에 더해 상업적 코드까지 기민하게 읽어내는, 연상호라는 보물을 다시 발견했다.

이하 연상호 감독과 일문일답(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음)

-전작 애니메이션 작품들과 첫 실사작인 '부산행' 간 색깔의 차이가 연 감독을 지지하는 관객들 사이에선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애초 실사 영화를 한다고 했을 때 많은 분들이 '돼지의 왕' '사이비' 같은 것을 실사로 해주지 않을까 싶어한 것 같다. 그런데 내 관심이 거기에 있지 않았다. 이미 했는데, 동어반복을 하고 싶지 않았던 셈이다. 그렇게 긴 시간을 들여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의미있지 않다고 느껴졌다. 오히려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이전 영화들이 내러티브가 강조된 형식의 이야기였다면, '서울역'과 '부산행'은 액션 중심이다. 그것이 내러티브를 대신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영화 형식으로도 다른 것들을 해보고 싶었다."

-대중화하기엔 소재가 낯설고, 연상호가 실사에선 신인 감독인 셈이니 배급, 투자 측으로부터 간섭이 많지는 않았는지도 궁금하다.

"외압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건 없었다. 이 작품에선 '이렇게 하고 싶다'라는 면이 내게 명확했다. 오히려 배급사에선 '너무 직접적이지 않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 부분에 감동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부산행'이라는 영화를 볼 많은 분들이 감동할 포인트가 있다면, 그건 사실 보편적 정서다."

-열차에 좀비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인물도 여성이고, 최후의 생존자들도 여성이다. 의도한 바가 있나?

"처음엔 아버지와 아들로 구상했었다. '더 로드'처럼 한 세대가 끝나고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우화로서의 역할이 있다 생각해 그렇게 설정했었다. 배우를 찾는 과정에서 (김)수안이를 보고 극 중 인물을 딸로 바꿔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조금 더 의미가 명확해진 것도 있지 않나 싶다. 여러 인터뷰에서 물질 문명 등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어쨌든 남성중심의 세계이지 않나. 그 세계에서, 예를 들어 김의성이 연기한 용석과 공유가 연기한 석우는 하나의 캐릭터로도 볼 수 있다. 그들이 공멸하는 과정에서 살아 남는 인물들이 여성이 된 셈인데, 일각에선 여성을 약자로 표현한 것 아니냐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다른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전 세대의 멸망으로 보이지만, 남성 중심의 세상이 멸망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처음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소녀(심은경 분) 역은 처음부터 소년이 아닌 소녀로 설정됐었나?

"그 이야기는 '서울역'과도 연관이 있을 것 같다. 좀비 영화에서 늘상 보이는, 공포의 대상으로서의 좀비와 마치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좀비의 관계가 역전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측면에서 만들어진 캐릭터다. 나중에 '서울역'을 보신다면 조금 더 약자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노숙자도 나오고 주인공인 가출 소녀, 여자이면서 약자인 인물도 나온다. 그리고 거기서는 공권력에 부딪히는 일반 시민들 등 약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점층적으로 커진다. 주종관계가 부서지는 순간을 보여주고 싶었다."

-극 중 용석은 너무 나쁘기만 한 인물로 그려지지 않았나 싶다. 최근 영화들에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이 많이 등장해서 낯설었는지도 모르겠다.

"용석의 나쁨을 완성시키는 건 주변 사람들이다. 평면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평면적인 용석이 문제가 아니다. 용석을 둘러싼 사람들은 입체적이다. 남자 승무원도 그렇고 어찌보면 이해가 되는 입체적 사람들이 용석의 악함을 완성시켜 준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용석은 자신이 가진 공포를 뻔뻔히 드러내는 사람이다. 나머지 사람들이 내보이기 힘든 공포를 용석을 이용해 보여주고 대변한 것이다. 용석을 괴물이라 말한다면 그 괴물을 만들어주는 것은 열차 안의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지지 아닐까. 그런 게 중요했다."

-전작들에 이어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았다. 석우의 주식 거래 행위와 바이러스 창궐 사이의 관계라든지, 만연해있지만 사실은 비윤리적인 행위들에 대한 문제의식이 보였다.

"석우가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조금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 이 일의 원인을 보여준다기보다, 그러니까 대부분 우리같은 사람들이 이 사회에 죄를 짓고 살지 않나.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된 것에 보통 사람들의 책임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예를 들면 '괴물' 역시 괴물의 탄생 원인을 많이 보여주지 않았는데, '부산행'은 그것보다 더 조금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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