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예견된 사건이었다.'
23일 울산현대미포조선과 수원시청의 경기에서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실격패 사건은 내셔널리그 1팀을 반드시 내년에 K리그로 올려보내려는 한국실업축구연맹(회장 이계호)의 무리한 행정이 빚어낸 자충수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 11월 8일 실업연맹은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07년 리그 종료 후에 K리그로 승격 가능한 팀은 현재 울산현대미포조선 뿐이다"고 발표했다.
이어 실업연맹은 "후기리그 우승이 확정돼 울산현대미포조선과의 챔피언결정전이 이미 예정된 수원시청은 2010년에나 K리그 승격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울산에게는 챔피언결정전에서 승리하면 K리그 승격 자격이라는 큰 당근이 주어지지만 수원은 우승해도 내셔널리그에 남아야하는 상황이 온 것. 결국 챔피언결정전은 확고한 목표가 있는 팀과 그렇지 못한 팀의 맥 빠지는 대결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내셔널리그 축구 관계자들 사이에서 "수원이 울산을 이기면 지난해 고양 국민은행에 이어 내셔널리그 우승팀이 K리그로 가지 못하는 사태가 또 발생될 수 있다"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관계자는 "심판진이 울산에 유리한 판정을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수원은 두 경기 모두 어웨이로 치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이런 우려는 일부 현실로 나타났다.
이날 실격패의 도화선으로 작용한 페널티킥 판정에 앞서 전반 31분 1-0으로 수원이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다소 애매한 판정이 나왔다.
수원 수비가 후방에서 전방으로 한 번에 패스를 길게 넘겨줬고 수원 공격수 오정석이 오프사이드를 피해 수비수에 한 발 앞서 볼을 따냈다. 골키퍼와 완벽한 일대일 찬스로 추가골을 터뜨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주심은 이 과정에서 오정석이 수비수를 가슴으로 밀쳤다며 파울을 선언했고 찬스는 무산됐다. 이에 수원 응원단 쪽에서 일제히 욕설과 야유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경기장에는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결국 3분 뒤인 후반 34분 페널티킥 판정에 이어 수원 선수들이 줄줄이 퇴장, 결국 실격패가 선언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경기가 수원의 실격패로 끝난 후 만난 수원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심판의 판정에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날 경기에 직접 뛴 수원의 한 선수는 "(페널티킥 상황에서) 주심은 처음에는 그냥 그대로 골 아웃을 선언했다. 그러나 3초 정도 시간이 흐른 후 갑자기 주심이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아마도 헤드셋을 통해 부심으로부터 무언가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하지만 가까이서 봤는데 이 상황은 절대 페널티킥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이 선수는 이어 "페널티킥이 20% 정도만 나를 납득할 만한 판정이었다고 해도 나는 항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창겸) 감독님 역시 심판 판정이 불리할 것은 당연하니 절대 항의하지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100% 페널티킥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수원 구단 관계자 역시 "이런 식으로 할 거면 뭐하러 챔피언결정전을 치르느냐. 2차전을 치를 필요가 있는 거냐"고 분개했다.
김창겸 수원 감독 역시 비슷한 입장이었다. 김창겸 감독은 경기 후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당연히 판정이 우리에게 불리할 것이라 예상은 했다. 선수들에게 절대 심판에 복종하라고 강조했다. 이 내용은 내 일기장에도 씌여있고 코치들에게 전달한 메모에도 있다"고 밝혔다.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수원 감독을 비롯해 구단 프런트, 선수들 모두가 이미 자신들이 불리한 판정을 받을 것을 감수하고 경기에 나선 꼴이다. 심판의 판정에 대한 불신이 이미 경기 전부터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애초부터 정상적인 경기가 불가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올 시즌 내셔널리그 최강자를 가리는 챔피언결정전이 시작부터 이미 시한폭탄을 안고 있었던 셈이다.
김창겸 수원 감독은 이어 "상당히 불쾌하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생각해봐야 한다. 1년 간 열심히 땀을 흘린 선수들은 뭐가 되나. 힘 없는 축구 선수들은 더 불쌍해지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결과적으로 3-0 승리를 거둔 최순호 울산 감독 역시 찝찝한 표정이었다. 최순호 감독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선수와 지도자는 경기장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행정적인 일은 연맹에서 하면되는데 그러지 못해 이런 사건이 벌어졌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패배한 수원 선수들에게나 승리한 울산 선수들에게나 또한 심판들에게나 모두 이날 사건은 큰 상처로 남게 됐다.
조이뉴스24 /울산=윤태석기자 sportic@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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