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못 해도 화제, 잘 해도 화제였다. 삼성 유격수 박진만의 수비 얘기다.
삼성-두산의 이번 플레이오프 1차전(16일, 잠실)에서 박진만은 결정적인 수비 실책을 범했다. 엄청난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명품수비'를 자랑하는 그가 해서는 안되는 실책이라는 게 화제거리였다.
3차전(19일, 대구)에서 박진만은 수 차례 환상적인 수비를 펼쳤다. 그의 눈부신 수비로 실점 위기를 넘기는 장면이 여러 번 목격됐다. 엄청난 칭찬이 쏟아졌다. 잘 해도 너무 잘 한다는 것이 화제거리였다.
박진만은 1차전 실책을 상쇄하고도 남는 좋은 수비를 계속해오고 있다. '국민 유격수'라는 수식어가 괜히 따라붙는 것이 아니었다.
이 같은 호수비의 원인을 박진만은 자신의 능력보다는 수비 시프트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수비 시프트란 경기의 상황과 타자의 성향 및 버릇, 각종 데이터 등에 따라 일반적인 수비 위치에서 벗어나 특정 타자의 타구에 대비하는 맞춤형 위치 선정을 말한다.
박진만이 되돌아본 장면은 3차전, 0-0으로 맞서던 3회초 두산 공격 2사 만루서 김현수가 친 타구였다. 투수 윤성환의 글러브를 스치며 2루 베이스를 타고넘는 완연한 안타성이었지만 어느새 2루 베이스 뒤쪽으로 달려든 박진만에게 여유있게(?) 걸려들었다.
웬만해서는 잡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코스의 안타성 타구를 쉽게 처리할 수 있었던 데 대해 박진만은 "정상적인 수비위치에서 2루쪽으로 치우쳐 수비하고 있었다. 미리 예측해낸 결과다. '김현수 시프트'를 펼친 셈"이라고 설명했다.
"상대 선수 데이터를 미리 머리에 넣고 수비 시프트를 펼치라고 류중일 코치가 지시를 내린다. 김현수는 구질을 가리지 않고 치는데, 잘 맞은 타구는 2루베이스 쪽으로 날아가는 경우가 많다. 땅볼일 경우 거의 그 위치가 맞는 것 같다"며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수비 위치를 정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류중일 코치가 직접 '김현수 시프트'를 가동하라고 했나'라는 질문에는 "그럴 때가 많지만, 자신의 판단에 따라 결정할 때도 많다"고 대답했다.
수비 시프트는 일종의 '확률 싸움'이다. 매번 예상된 결과를 가져올 수는 없는 일. 정상적인 수비 위치에 변화를 줬다가 역으로 허를 찔리면 낭패를 보기 일쑤다.
'그럴 때는 어떻게 대처하는가'라는 질문에 박진만은 "뇌속에 데이터가 박혀 있다"며 "대구구장은 불규칙 바운드가 적고 연습을 많이 한 곳이어서 잠실구장보다 익숙한 편"이라며 해맑은 미소를 보였다.
3차전서는 박진만이 또 한 차례 더 김현수를 허탈하게 만드는 수비를 펼쳤다. 삼성이 앞서가고 두산이 추격하던 8회초, 역시 2사 만루였고 공교롭게도 타석에는 또 김현수가 등장했다. 김현수의 타구는 워낙 잘 맞아 총알같이 뻗어나가며 안타를 직감케 했다. 그러나 박진만이 머리 위로 지나갈 것 같던 타구를 번쩍 점프하더니, 글러브에 쏙 주워담았다.
볼카운트와 투수가 던질 공의 구질, 예상되는 타구 방향 등이 이미 박진만의 '뇌'에 저장된 데이터 분석을 통해 나와 있었던 결과라고밖에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계속되는 박진만-김현수의 악연, 그리고 수싸움
이렇듯 거의 매 경기 박진만과 김현수의 본의 아닌 악연이 계속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자 김현수도 "이상하게 타구가 자꾸 그 쪽으로만 간다. 타자 입장에서는 강하게 때리는 수밖에 없다"며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형성된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2일 4차전에서도 김현수는 5회까지 4차례 타석에 들어설 때까지 하나의 안타도 때려내지 못했다. 이날 경기서 두산은 총21안타로 삼성 마운드를 맹폭했는데, 김현수는 대세가 기울어 박진만이 교체되고 나간 다음에서야 7회와 9회 두 개의 안타를 쳐냈다. 박진만이 유격수 수비를 보는 동안 4번의 타석에서는 볼넷 하나를 제외하고 3번 범타로 물러났는데 그 가운데 두 개가 또 박진만에게 걸려들었다. 직선타 하나, 땅볼 하나.
급기야 21일 5차전에서 김현수는 약간 달라진 타격을 했다. 이날 김현수는 3개의 안타(홈런 1개 포함)로 호조를 보였는데, 그 가운데 2개가 박진만을 피해 잡아당겨 만든 오른쪽 방면 안타와 홈런이었다.
김현수가 굳이 박진만을 의식해 이런 타격을 했는지는 확인할 길 없지만 구질에 상관없이 결대로 받아쳐 좋은 안타를 곧잘 만들어내는 김현수의 평소 타법을 감안하면 '의식적인' 당겨치기의 흔적을 감지할 수 있다.
박진만으로서도 김현수가 변화를 추구했으니 6차전은 또 다른 대응 방법을 강구할 만하다. '명품수비' 박진만과 '명품타격' 김현수의 자존심 맞대결은 두산-삼성의 플레이오프 주요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조이뉴스24 /손민석기자 ksonms@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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