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겨울연가'와 '대장금'으로 시작된 한류 열풍은 식을 줄 몰랐다. '제2의 '욘사마'와 '장금이'를 이을 스타는 끊임없이 탄생하고 한국 드라마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 깃발을 꽂을거라는 기대감도 팽배했다.
그러나 한류 축제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오히려 한류에 대한 집착과 고집으로 국내 드라마는 지금 심각한 부작용을 앓고 있다.
드라마 제작사는 국내 시청자가 아닌 한류를 위한 드라마를 만드는데 집중했다. 그 결과 무리한 캐스팅과 과다한 제작비로 제작사들이 휘청거리고 있고 드라마는 아류작으로 넘쳐나고 있다.
최근에는 막장드라마의 범람으로 과연 한류가 재기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마저 팽배하다. 돈, 불륜, 그리고 출생의 비밀 등 틀에 박힌 소재와 비상식 적인 전개로 국내 시청자들마저 등을 돌린 한국 드라마로 '한국 드라마의 세계화'를 꿈꾸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한류 드라마에 대한 집착과 몰락

한류의 성공에 대한 자만 때문일까. 또다른 신화를 위한 욕심 때문일까. 국내 드라마는 '한류드라마' 만들기에 혈안이 됐다.
새로운 킬러 콘텐츠에 대한 고민보다는 기존 한류 드라마의 성공 방정식을 고스란히 다시 밟았다. 새롭고 신선한 소재 개발보다는 인기 있는 장르와 엇비슷한 스토리를 무수히 쏟아냈다.
배우 캐스팅도 마찬가지다. 캐릭터 맞춤형 캐스팅보다는 무조건적인 한류스타 캐스팅을 고집했다. 그러다보니 제2, 3의 새로운 스타 탄생없이, 기존 한류스타들의 몸값만 천정부지로 솟아오르는 사태를 만들었다.
이유는 하나다. 해외팬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 좋아하는 스타를 조합해 외국에 파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내실을 갖추지 못한 드라마는 한국의 안방극장에서도 외면 당했다. '제2의 겨울연가'를 꿈꾸었던 최지우의 '스타의 연인'이나 권상우가 출연한 '신데렐라맨'이 단적인 예다. 한류스타를 앞세운 '태양을 삼켜라' '카인과 아벨' 등도 기대 이상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아예 작심하고 만든 이들 드라마들이 의도한대로 해외에서 성공이라도 거두었으면 위안이라도 되겠지만 되려 한류드라마 위기의 선봉장이 됐다. 한국 드라마에 열광했던 해외팬들은 이제 고만고만한 한국드라마에 천편일률적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해외에서 인기거품이 꺼지자 국내 드라마 산업까지 침체되는 결과를 낳았다. 막대한 제작비로 제작사들이 휘청거리며 빛더미에 앉았다. 예고된 재앙이었다. 새롭고 신선한 콘텐츠 없이 포장만 그럴듯한 드라마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기엔 너무도 큰 값을 치뤘다.
◆막장 드라마 '홍수'…배우도, 제작진도 '이해불가'

2009년 안방극장의 화두는 단연 막장드라마다. 자극적인 소재와 비상식적 캐릭터로 버무려진 드라마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안방극장을 장악했다.
소재의 범위는 돈과 사랑, 불륜, 복수, 출생의 비밀, 불치병, 재벌 2세 정도로 좁혀진다. 한정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이야기의 실타래를 복잡하게 또는 더 자극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웬만한 이야기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시청자들을 끌어오기 위해 드라마는 더 독해진다.
막장드라마의 물꼬를 튼 것은 '아내의 유혹'이다. 상상 이상의 행동범주를 보여주는 캐릭터와 복수에 복수가 빠르게 전개되며 '아유' 신드롬을 일으켰다. 극 후반부에 개연성이 떨어지고 억지스러운 전개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드라마는 대박을 터트렸다. 해외 수출 성과도 좋았다.
'아내의 유혹' 하나로만 끝났다면 제법 신선한 획을 그었을수도 있었지만 성공에 목마른 제작사와 방송사가 너도 나도 비슷한 기획안을 들고 뛰어들었다. 한류드라마에 비해 제작비는 제작비대로 적게 들고 수익은 제법 쏠쏠하니, 혹할 수 밖에 없는 카드였다.
그리고 안방극장은 지금의 '막장 천국'이 됐다.
최근 종영한 MBC 일일극 '밥줘'는 이른 저녁시간대에 방송됨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성폭행 미수 등 가족이 함께 보기 힘든 불편한 장면들을 마구 쏟아냈다. 남편의 불륜녀는 귀신으로 재등장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이 펼쳐졌다. 드라마 종영 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밥줘' 제작진조차 "말도 안 되는 상황의 대본 때문에 힘들었다"고 말하며 사과했을 정도다.
일부 제작진과 배우는 "드라마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달라" "현실 속에서 없을 법한 이야기로 쾌감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들어 많은 제작진과 배우들 스스로 막장드라마의 폐해와 그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분위기다.
최근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관심이 집중되는 질문 중 하나가 막장 드라마에 관련된 것들이다. 배우들과 제작진은 드라마 시작도 전에 '막장'이라고 규정 지어지는 것을 불편해하고 "우리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스스로 이러한 풍토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방송계에서도 시청률로 말미암아 자극적인 소재에만 매달리는 제작 풍토를 자정할 수 있는 방송사들의 내부적인 규제장치가 먼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막장 드라마로 도배된 안방극장, 앞으로는 좀 달라질 수 있을까.
◆'선덕여왕' '아이리스'...그래도 희망은 있다

그래도 한국드라마는 아직 희망이 있다.
막장 드라마의 범람 속에서도 꾸준히 영향력있는 콘텐츠가 생산되고 있다.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토대로 안방극장에서 인기를 얻고, 나아가 해외에서 인정받은 작품도 상당수다.
올 상반기 폭발적 인기를 모은 '꽃보다 남자'는 원작의 인기와 우수성도 인기에 한 몫했지만 적절한 캐릭터 캐스팅이 주효했다. 원작과 흡사한 비주얼의 신인 연기자들을 대폭 기용하는 모험을 했고 새로운 스타를 만들었다. 한류스타의 캐스팅없이 작품 자체의 힘만으로 아시아 각국에 수출하는 쾌거도 달성했다.
'내조의 여왕'은 불황 코드를 담아낸 공감 스토리, 색깔있는 캐릭터, 맛깔스럽게 더해진 로맨스로 인기를 얻었다. 국내 인기를 기반으로 중국, 일본 등지에 팔리며 자연스레 한류 열풍에 동참했다.
현재 방영중인 사극 '선덕여왕'도 탄탄한 스토리와 짜임새 있는 구성 등으로 해외 방송사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어 제2의 대장금으로 '한류' 활성화의 새로운 선봉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첩보물 '아이리스'는 철저하게 한류를 노리고 만든 작품. 이병헌, 김태희, 정준호, 김승우, 김소연 등 한류스타들의 초호화 캐스팅과 일본, 헝가리, 상해 등 해외 여러나라의 로케이션, 200억의 대규모 제작비로 일찌감치 해외 수출을 염두에 뒀다. 실패한 한류용 드라마의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오랜 준비한만큼 모처럼 한류 열풍을 다시 일으켜 줄만한 킬러 콘텐츠라는 평도 듣고 있다.
경쟁력 있는 고품질의 콘텐츠만이 한국 드라마 시장을 살리고, 세계 시장을 겨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적잖은 본보기들이다.
조이뉴스24 /이미영기자 mycuzmy@joynews24.com 사진 조이뉴스24 포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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