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명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에 추모의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서른 두 살의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고(故) 최고은 작가의 사망 소식을 접한 네티즌과 영화 및 방송 관계자들은 슬픔과 비탄의 뜻을 전하는 한편, 영화계의 잘못된 관행과 낙후된 시스템에 공분하고 있다.
전도유망한 젊은 작가의 죽음을 마주하며 불합리한 영화계 산업 구조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하 영화노조)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한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병마와 굶주림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은 사실이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마지막으로 남긴 글이 이웃에게 음식을 부탁하는 쪽지였다니 말문이 막히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누기 어려울 지경이다"고 전했다.
최 작가의 죽음에 대한 분노가 커지자 영화 관계자들은 "일부 특정 계층의 잘못이 아닌 영화 산업의 구조적 모순과 잘못된 관행, 작은 산업 내에 몰린 인력 과잉이 빚은 결과"라고 말한다. 영화계에 종사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풍족하다는 말을 하기 힘든 게 현실이라는 것.
제작사는 제작사대로 열악한 수익구조와 투자사 입맛 맞추기에 시달린다. 투자배급사도 리스크가 큰 영화산업의 특성상 위험을 감안한 투자 수익률은 낮은 편이라고 설명한다.
안정적 매출 구조를 갖춘 극장도 할 말은 많다. 자체 운영비와 시설 투자비용 등을 고려할 때 수익률은 크지 않다는 것. 영화 홍보사 역시 현실은 열악하다. 최근 넘쳐나는 격무와 5년째 제자리 걸음인 홍보대행료 탓에 몇몇 홍보사가 잇따라 폐업의 길을 걸었다.
한 홍보사 직원은 "일주일에 5일은 야근이다. 미디어 채널이 다양해질수록 홍보의 창구는 많아지고 홍보사가 해야할 일도 많아진다. 정상적인 생활, 개인의 여가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구조다. 또 요구사항은 많아지는 반면 진행비는 5년 전과 비교해 20% 수준으로 삭감됐고 홍보비는 30%가 깎여나갔다. 기본적인 물가인상분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10년 전 수준의 대행료를 받고 있다. 직원들 역시 대학졸업자로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것이 태반"이라고 토로했다.
제작사 역시 고충을 털어놓는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영화 스태프들의 생활고가 본격화된 것은 프리프로덕션 비용을 지불하지 않기 시작하면서부터다"라며 "영화가 제작에 돌입하기 전까지는 진행비 자체가 용인되지 않는다. 영화가 촬영을 시작 안했다고 스태프들이 노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당연한 사실이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나 제작사도 열악한 수익구조로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영화에 대한 애정과 꿈을 가지고 영화계에 뛰어든 많은 고급 인력들이 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떠나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영화계에서는 2~3년 차 숙련된 인력을 찾는 것이 힘들다고 토로한다.
영화노조는 "故 최고은 작가는 실력을 인정받아 제작사와 시나리오 계약을 맺었지만 이 작품들이 영화 제작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며 "고인의 죽음 뒤에는 창작자의 재능과 노력을 착취하고 단지 이윤창출의 도구로만 쓰려는 잔인한 대중문화산업의 논리가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반복되는 실업기간 동안 실업 부조금을 지급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라는 요구를 수없이 해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만약 실업부조제가 현실화돼 고인이 수혜를 받았더라면 작금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명백한 타살이다"라고 강조했다.
최고은 작가의 안타까운 죽음을 두고 영화계의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고 자정해야 한다는 영화인들의 목소리가 높다. 이들은 시나리오의 판권 계약 시 저작권의 소유 문제, 구시대적 구두계약 관행, 대금 후불 지급 방식 등의 문제가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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