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신연식 감독은 영화 '배우는 배우다'를 통해 아이돌 가수 이준에게서 배우 이준의 면모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지난 10월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배우는 배우다'가 첫 공개된 뒤 언론과 평단, 관객들은 입을 모아 오영 역을 연기한 이준의 가능성을 칭찬했다. 애써 '가능성'이라 포장할 것도 없다. 영화 속 이준의 연기는 여타 아이돌 출신 배우들과 동일선상에 놓기엔 아까울 정도로 패기 있었다.
영화의 개봉을 맞아 조이뉴스24와 만난 신연식 감독으로부터 이준과 함께 작업한 소감은 물론, '배우는 배우다'의 촬영 뒷이야기를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지난 9월 선보인 '러시안소설' 이후 다소 밭게 다음 영화를 소개하게 된 신 감독은 특유의 서글서글한 에너지로 입담을 자랑했다.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화제로 떠올랐던 이준의 베드신부터 그를 비롯해 많은 배우들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어린 조언까지, 진솔한 수다가 시작됐다.

아이돌 출신 배우를 데리고 세 번의 정사 신과 한 건의 강제 추행 장면을 연출하게 된 것에 대해 먼저 물었다. 이는 이준이라는 배우에게도 파격적인 도전이었겠지만 그간 '19금' 장면을 선보인 적 없는 감독에게도 새로운 시도였다. 신 감독은 "배우들과 저도 익숙해져 야한 건지조차 헷갈리는 상황이 됐다"며 "내가 보기엔 그냥 그랬다. 야한지 잘 모르겠더라"고 입을 열었다.
"우리끼리도 처음엔 너무 긴장했는데, 고민을 하다 어느 순간 그런 게 없어졌어요. 편해졌다는 거죠. 저도 베드신 연출은 처음이었는데, 해보길 잘한 것 같아요. 처음엔 너무 힘들었어요. 촬영 전 배우들과 돈독한 관계를 만드는 편인데, 이제 정말 동생같은 존재가 된 여배우들을 두고 베드신을 연출하려니 불편했죠. 그래도 찍다 보니 아무 생각이 없어졌어요."
최종 편집 과정에서 덜어냈지만, 애초 영화엔 이준이 소화한 또 하나의 베드신이 있었다. 극 중 매니지먼트업계 실력자로 등장한 배우 이화시와 찍은 장면이었다. 전성기에 김기영 감독의 페르소나로 활약했던 그는 신연식 감독을 만나 오랜만에 스크린에 돌아왔다. 그런 만큼 베드신을 편집하게 된 감독의 마음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사모님 역을 한 이화시 선생님이 오랜만에 복귀를 하셨는데, 그 장면이 편집돼 아쉽죠. 차 안에서 오영이 사모님에게 갑자기 키스를 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나중에 이화시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아들보다 어린 아이라 우습게 생각했는데, 준이가 갑자기 키스를 해 오니 나비 한 마리가 왔다 간 것처럼 멍하더라'고요. 그 장면 등이 편집된 뒤 상심하셨길래 '제가 반드시 선생님 모시고 멜로 영화 찍겠습니다' 했어요. 농담으로 그런 이야길 하지 않으니 언젠가 만들게 될 거예요."
매 신 열과 성을 다해 연기한 이준은 무수한 신인 연기자들을 만나 온 신연식 감독에게도 남다른 재목이었다. 신 감독은 "이준은 큰 열정을 가진 친구였다"며 "열심히 하지 않으려는 생각 자체를 못 하는 사람이었다"고 돌이켰다.
이어 그는 "정말 열심히 하는 이준의 모습, 정말 절실해하는 모습을 영화에 써먹을 생각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독단적이라는 비난을 들을지언정 연기에 혼을 불태운 극 중 오영의 모습은 그래서 이준과 더 닮아보였는지 모른다.

"준이는 어느 순간 이름 없는 연예인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어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지만 사실 그건 인기든 경력이든 많은 경험을 해 본 아이들만 아는 느낌이예요. 완전히 신인이거나 무명이면, 인기를 맛본 적조차 없으니 그 불안감을 잘 모르죠."
신 감독은 '배우는 배우다' 이후 이준의 행보에 대해 더욱 마음을 쓰고 있는 눈치였다. 그는 "한 두편의 영화에서 칭찬을 받거나 욕을 먹는것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며 "이준은 궁극적으로 좋은 배우가 될 친구"라고 장담했다.
"저는 이준이 좋은 감독과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경험이 많지 않은 친구기 때문에 무조건 많이 배우는 게 좋죠. 배우들에게 저는 단순히 시나리오만 가지고 판단하기보다, 별로인 것처럼 보여도 감독이 좋으면 그걸 하라고 이야기해요. 시나리오가 참 좋은데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고 머릿속에 물음표가 생긴다면, 차라리 감독이 확실한 작품을 선택하라고 하죠."
스크린 주연으로 첫 발을 내딛은 이준을 향해 그는 "많은 칭찬을 받았지만 만족해선 안된다"며 "훌륭한 감독들과 일하며 많이 배우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작품에서 연기로 욕을 먹는다 해도 그것이 중요한게 아니다"며 "인생이 작품 하나에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 시점에서 이준이란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더 내공을 쌓는 거겠죠. 다른 더 많은 훌륭한 배우들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남자 배우는 최소 35세 이상은 돼야 피어난다고 생각해요. 준이도 좋은 배우가 될 친구니, 아직 어린 나이에 작은 칭찬과 비난을 너무 신경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가능성 있는 배우가 나왔다는 영화계의 자원이고 자산이니까요."
'배우는 배우다'는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 걷잡을 수 없이 바닥으로 추락하게 된 톱스타 오영의 이야기를 그린다. 김기덕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을 맡았다. 이준 외에도 배우 서영희·강신효·서범석 등이 출연한다. 지난 10월24일 개봉해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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