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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민 "'또 하나의 약속', 딸이 절절히 원했던 영화"(인터뷰)


"김창훈, 영화에 쓰인 산울림 '회상' 저작권료 안 받아"

[권혜림기자] "영화의 힘은 작죠. 작지만 한 번씩 마음을 건드려 줄 수는 있어요. 내 행복과 사랑을 위해 살아가다가도 '내가 사회의 구성원이었지. 나도 저렇게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지'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들어 주는 거죠. 우리 영화처럼 사회성이 짙은 작품들은 그런 경험을 줄 수 있어요."

애드리브의 제왕,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통통 튀는 감초 연기로 시선을 사로잡았던 박철민이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선 조금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딸 윤미를 잃고 세상에 맞서게 된 속초의 택시 기사 상구로 분했다. 등장만으로도 보는 이들의 웃음보를 자극했던 그 박철민은 온데간데 없다. 처절한 비극을 온 몸으로 딛고 딸과의 약속을 지키려 나선 아버지의 민낯이 그를 통해 스크린에 담겼다.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박철민은 조이뉴스24와 만나 "코믹했던 원래 캐릭터가 강했으니 엄청난 걱정이 있었다"면서도 "의욕이 생겼고 설렜다. 아직 거의 해보지 않은 눈물 연기도, 소중한 딸을 잃은 깊은 아픔도 그려내야 했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약속'은 반도체 회사에서 일하던 스무 살 딸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속초의 택시 기사가 딸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재판에 뛰어드는 이야기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라인에서 일하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뒤 지난 2007년 세상을 떠난 故 황유미 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영화의 바탕이 된 사건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지만, '또 하나의 약속'은 딸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에 골몰하지 않는다. 관객의 가슴을 두드리는 것은 비극보다 희망이다. 세상에 또 없을 만큼 순진하고 무지했던 아버지는 이 지난한 싸움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얻는다. 같은 고통을 느낀 피해자들을 만나며 연대의 힘을 체득하기도 한다. '또 하나의 약속'을 사회 고발 영화로만 규정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또 하나의 약속'은 가족의 성장기이기도 해요. 작은 가족의 성장기요. 그런 아픔으로 망설이거나 힘들어했던 사람들이 다시 서로를 '호' 하고 불어주고 백허그도 해 주게 만드는, 그런 영화라고 자부해요. 영화를 통해서 그런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고요.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숨기고 싶을 정도의, 몸서리쳐질 정도의 고통과 아픔이 있잖아요. 그런 아픔들을 다는 치유하지 못해도 예쁘게, 따뜻하게, 웃음과 힘을 주고 응원해주고 싶어요."

박철민에겐 극 중 윤미 또래의 딸이 있다. '또 하나의 약속'의 시나리오를 받아왔을 무렵, 딸은 아버지보다도 먼저 이를 읽고 출연을 강력히 추천했다. 박철민은 "어느 술 취한 날 시나리오를 들고 갔는데 딸이 '아빠, 이거 꼭 해야 해' 하더라"고 돌이켰다.

"제 딸이 '아빠에게 너무 좋을 것 같아. 뜻도 좋지만 영화적으로도 그래. 꼭 해 줘' 하더라고요. 그 때 받았던 느낌이 선명해요. 물론 딸의 의견은 출연을 도운 작은 이유죠. 무엇보다 캐릭터가 너무 좋았지만, 딸의 절절한 이야기가 마음을 건드리기도 했어요."

'또 하나의 약속'에 박철민이 바라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는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보다 내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었다.

박철민은 "자극적인 내용으로 선동을 하려는 영화는 아닌 것 같다"며 "자신만을 보고 살던 사람들이 우리 영화를 계기로 내 옆을, 이웃을, 친구를 보며 관심을 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성이 있는 영화는 우리 주변을 다시 보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예쁜 영화가 될 수 있다"며 "물론 반론이 있을 수도 있는 부분"이라고 신중하게 덧붙였다.

지금이야 영화가 개봉만을 앞두고 있지만, '또 하나의 약속'의 제작 단계에는 난관도 우려도 많았다. 실화 속 주인공들은 한국 사회 권력 구도의 꼭대기에 있는 삼성과 싸웠다. 영화화 자체에 대한 불안한 시선과 난항을 거듭한 투자 과정은 실체 없는 외압이었다.

제작비가 부족해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예비 관객들의 모금, 일반인 투자자들의 힘이 모여 100% 크라우드 펀딩으로 영화가 완성됐다. 모금을 지원한 이들의 사연도 가지각색이었다.

산울림의 멤버였던 김창훈은 '회상'이 영화의 주요 장면에 쓰인 것에 대해 저작권료를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박철민은 "김창훈 씨께 말했더니 한 번에 '네, 갖다 쓰세요. 돈은 필요 없어요' 라는 답이 왔다"고 고마워했다. 충무로를 내달려 온 유명 스태프들도 억대 수당을 보장받을 대작들을 뒤로 하고 노개런티로 이 영화에 뛰어들었다.

"이민을 가는데 대한민국에 마지막 선물을 주고 싶다고 2천만 원을, 세계일주가 꿈인데 1/3만 돌겠다고 여행 자금을 후원한 분들이 있었어요. 갓김치 같은 먹을 거리를 후원해주신 분들도 있었죠. 자연도 도와줬어요. 3월 말, 정말 눈이 왔으면 싶은 신이 있었는데 제설기는 상상도 못할 상황이었죠. 그런데 십수 년 만에 3월의 속초에 폭설이 왔다니까요. 극 중 윤미를 보내는 장면에선 회오리바람이 치고 검은 구름이 끼고 말예요. 운명적으로 행운이 따랐는데, 다르게 생각하면 기적이기도 해요. 만여 명의 엄청난 투자자들, 하늘의 구름과 눈, 비바람, 그리고 스태프들까지요."

그래서 '또 하나의 약속'은 엔딩 크레딧까지 특별한 영화다. 투자와 모금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이 어두운 화면을 지나 천천히 올라가는 장면은 별다른 장치 없이 그 자체로도 감격스럽다.

"그건 왜 그렇게 눈물이 날까요. 우리를 지지하고 박수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저렇게나 많았다는 감동과 감격의 눈물이겠죠. 배우로서 한 작품을 만나서 연기했을 뿐인데 이렇게 응원을 받다니 벅차요. 지난 2013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됐을 때 정말 많이 울었어요. '힘내세요' '힘내십시오' 라는 닉네임만 너댓 명이 돼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같은 이름들도요. 우리 영화는 엔딩크레딧이 너무 매력적이니 꼭 보라고 이야기하곤 하죠. 역대 한국 영화 중 가장 긴 시간 이어지는 엔딩크레딧일 겁니다."

'또 하나의 약속'에는 박철민 외에도 윤유선·김규리·박희정·유세형·이경영·정영기·김영재 등이 출연한다. 김태윤 감독이 연출했으며 오는 6일 개봉한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박세완기자 park9090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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