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기자] 지금부터 '파격적인 상상'을 해보려 한다.
현실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상상하는 것, 비록 손에 잡히는 실체는 없을지라도 그 어떤 현실보다 더 짜릿할 수 있다. 그래서 역사에서 '가정'은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 가정하고 상상해보는 일들을 서로 공유하곤 한다.

이번에 해볼 상상의 주제는 홍명보다. 한국 축구의 '전설' 홍명보에 대한 가정이다. 한국 최고의 선수였고, 한국 최고의 명장으로 향해 가는 감독이다. 홍명보에 대한 가정. 최고의 '선수' 홍명보와 최고의 '감독' 홍명보의 만남. 두 전설이 맞대결을 펼치는 것이다. 한국 축구 역사에서 이토록 짜릿한 상상이 또 있을까.
일단 최고의 선수 홍명보를 꼽아봐야 한다. 최고의 선수 홍명보는 언제였을까. K리그 포항을 비롯, 일본 J리그, 미국 LA 갤럭시까지 많은 클럽 팀에서 업적을 남긴 홍명보다.
그렇지만 홍명보 최고의 순간은 역시나 월드컵이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단 홍명보가 가장 찬란한 빛을 냈다. 홍명보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시작으로 1994년 미국, 1998년 프랑스,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한 번도 출전하기 어렵다는 월드컵을 무려 4번이나 출전했다.
4번의 월드컵 중 최고를 꼽으라면. 단연 2002 한일 월드컵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지휘하고 '주장' 홍명보가 이끌었던 한국 대표팀은 역대 최고의 성적, 기적같은 4강 신화를 일궈냈다. 주장 홍명보가 보여준 카리스마와 리더십, 한국 역대 최고의 선수이자 최고의 주장으로 꼽히는 이유다.
다음으로 최고의 감독 홍명보를 찾을 차례다. 최고의 감독 홍명보는 언제일까.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 감독이 된 홍명보는 2009년 이집트 U-20 월드컵 8강,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까지, 수많은 업적들을 일궈냈다. 한국 최초 올림픽 동메달 신화가 지금까지 홍 감독 최고의 순간이다.
하지만 올림픽 동메달에서 멈출 수 없다. 감독 홍명보는 현재진행형이다. 선수 홍명보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감독 홍명보는 새로운 역사 앞에 놓여 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 감독 홍명보. 아마도 감독 홍명보의 최고의 순간이 이번 월드컵이 아닐까 한다. 감독 홍명보는 사상 첫 월드컵 원정 8강을 노리고 있다. 기적의 아이콘, 감독 홍명보의 업적과 영광들이 이어진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최고의 선수 홍명보와 최고의 감독 홍명보를 찾았다. 이제 파격적인 상상이 시작된다. 2002 주장 홍명보와 2014 감독 홍명보가 맞대결을 펼친다면? 2002 한일 월드컵 대표팀과 2014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이 맞서 승부를 가린다면?
주장 홍명보가 이끄는 대표팀은 역대 최강이라 평가 받고 있다. 그리고 감독 홍명보가 지휘하는 대표팀은 역대 최고의 가능성을 품었다. 홍명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두 팀의 대결, 상상이지만 짜릿할 수밖에 없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대등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쉽게 우열을 가릴 수 없다. 2002 대표팀 대부분이 국내파였던 반면 2014 대표팀 핵심은 유럽파다. 축구가 태어난 유럽에서 많은 경험을 한 선수들이 대표팀에 즐비하다. 따라서 선수 개인의 능력적인 측면에서는 2014 대표팀이 앞선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젊음과 잠재성을 담았다.
하지만 조직력에서는 2002 대표팀이 단연 우세를 점하고 있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세계 최강의 팀들도 무너뜨리지 못했던 막강한 조직력이었다. 그리고 베테랑의 경험과 신예들의 폭발력, 두 세대 간의 완벽한 조화, 이렇게 하모니가 좋은 대표팀은 한국 축구 역사상 없었다.
홍명보 감독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홍 감독은 역대 최강팀과 비교해달라는 질문에 "우리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이 역대 최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역대 대표팀과 비교해 평균 연령은 젊어졌지만 나이에 비해 경험이나 탤런트는 나쁘지 않다. 앞으로 최고의 팀이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다.

이제 각자의 장점을 가지고 단점을 숨긴 채 붙어봐야 한다. 여러 가지 장면이 상상된다. 그 중 가장 짜릿한 장면은 역시나 2002 주장 홍명보가 2014 홍명보호 최고의 공격수 박주영을 막아내는 일이다. 히딩크 감독의 애제자였던 홍명보가 감독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은 만큼, 홍명보 감독의 애제자 박주영도 무한 신뢰를 받고 있다. 이 특별한 두 사제지간의 대결이 가상 대결의 하이라이트다.
주장 홍명보는 애제자 박주영을 막을 수 있을까. 한국 최고의 수비수라 불리는 홍명보와 한국 최고의 공격수라 평가받는 박주영. 아마도 팽팽한 접전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홍명보가 박주영을 놓친다면 주변의 김태영, 최진철이 커버를 해줬을 것이고, 박주영이 홍명보를 뚫지 못한다면 구자철, 김신욱 등이 함께 노력했을 것이다.
'주장 대 감독' 홍명보, 또는 '수비수 홍명보 대 공격수 박주영'이 맞서는 장면 외에도 황선홍, 안정환 등 2002 공격진들과 김영권, 홍정호 등 2014 수비진들의 맞대결도 볼 만한 장면이다. 박지성-이천수와 이청용-손흥민의 전쟁, 김남일과 기성용의 매치, 이영표와 윤석영의 비교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 거리가 넘친다.
슈퍼스타들의 향연, 과연 승리는 어떤 팀이 가져갈 것인가. 주장 홍명보의 팀과 감독 홍명보의 팀 중 누가 더 위력적이었을까.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는 결론이지만, 당당하게 말해 본다. 주장 홍명보 팀의 압승을 예상한다. 아니 확신할 수 있다.
축구는 개인이 아닌 팀 스포츠다. 그렇기에 감독 홍명보가 이끄는 개인 능력이 좋은 팀 보다 조직력이 좋은 주장 홍명보의 팀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주장 홍명보의 팀은 감독 홍명보 팀과는 달리 오랫동안 훈련하며 발을 맞췄다. 역대 최강의 대표팀이라는 명성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주장 홍명보 팀이 감독 홍명보 팀을 능가할 수밖에 없다. 상상이지만 현실처럼 주장하려 한다. 분명 주장 홍명보가 더욱 강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가상 대결에 대한 통계 자료가 있다는 것이다. 현실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 하지만 가상의 현실, 게임 속에서는 가능했다.
게임 업체 넥슨이 이런 가상 대결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전국 성인남녀 79.9%가 2002 대표팀의 승리를 지목했다. 대부분의 축구팬들이 이런 파격적인 상상에 주장 홍명보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그리고 넥슨이 시뮬레이션으로 두 팀의 가상 대결 1천 경기를 실시해봤다. 결과는 2002 대표팀이 677승을 거뒀고, 2014 대표팀이 323승에 그쳤다고 한다. 2002 대표팀이 804골을 성공시켰고, 2014 대표팀이 673골에 만족해야 했다. 2002 대표팀에서는 안정환이 259골로 가장 많은 골을 넣었고, 2014 대표팀에서는 김신욱이 198골로 최다골을 기록했다. 기대를 모았던 박주영은 아무래도 최근의 부진과 부상 탓인지 68골에 그쳤다고 한다.
게임 상에서도 주장 홍명보의 팀이 압승을 거뒀다. 하이라이트로 꼽을 수 있었던 장면, 박주영은 주장 홍명보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던 것이다. 개인보다 팀이 중요하다는 축구의 기본. 게임도 이렇게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가상의 맞대결이라고 해도 제대로 된 평가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현 시점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상상과 예상과 예측이다. 두 팀이 제대로 맞붙으려면 2014 브라질 월드컵이 끝난 다음이라야 가능할 것이다.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는 2002 월드컵 4강 신화라는 업적이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독 홍명보 팀의 장점을 눈을 크게 뜨고 보려 해도 2002 팀의 4강 업적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2014 브라질 월드컵 한국 대표팀 일정이 끝난 후 다시 판단해야 한다. 홍명보호의 성적에 달렸다. 홍명보호가 16강에 진출하고, 사상 첫 원정 8강을 달성하고, 그 이상의 기적을 또 일궈낸다면 상상은 다른 이야기로 전개될 수 있다. 하지만 홍명보호가 16강에 오르지 못하고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다면 지금의 평가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확실한 것 하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은 2002 월드컵 대표팀 그 이상의 대표팀이 나와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의 영광과 환희, 그 이상의 것들을 다시 한 번 만끽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다시 이런 '파격적인 상상'을 하고 있다. 2014 홍명보호에 거는 기대도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감독 홍명보는 기량, 경험, 철학, 카리스마 등 주장 홍명보가 가졌던 모든 것들을 넘어서야 한다. 히딩크 감독의 그늘에서도 이제 벗어나야 한다. 브라질 월드컵을 기다리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해, 감독 홍명보는 주장 홍명보를 '초월'해야 한다.
조이뉴스24 /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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