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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힐' 고경표 "만족하는 순간 도태된다"(인터뷰)


영화 속 차승원 동경하는 막내 형사 역

[권혜림기자] 쉴 틈 없는 행보다. 말간 표정으로 능청스럽게 코믹 연기를 하던 청년의 얼굴에는 기대보다 많은 빛깔의 매력이 숨어있었다. 연기자로 첫 발을 뗀 지 어느덧 5년. 고경표는 장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재주를 뽐내 왔다.

고정 크루로 출연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tvN 'SNL 코리아', 특유의 능청스러움을 정극 연기에 녹인 tvN '이웃집 꽃미남', 까칠한 엘리트 사장부터 7세 지능 20대 남성의 얼굴까지 고루 그려낸 tvN '감자별 2013QR3'는 브라운관에서 배우 고경표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필모그라피였다. 지난 2013년 개봉한 옴니버스 호러 영화 '무서운 이야기2'의 '탈출'로는 그가 지닌 남다른 잠재력을 스크린에서도 입증했다.

지난 4일 개봉한 장진 감독의 영화 '하이힐'은 고경표가 소화할 수 있는 연기의 외연을 한 뼘 더 넓힌 작품이다. 영화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기로 결심한 순간 치명적인 사건에 휘말리게 된 강력계 형사 지욱(차승원 분)의 운명을 그린 이야기다. 고경표는 지욱을 동경하는 형사 진우 역을 맡았다. 막내 형사의 순수함에 더해, 여자가 되고 싶어하는 지욱을 향한 먹먹한 감정을 연기했다.

영화의 개봉을 맞아 조이뉴스24와 만난 고경표는 감성 느와르 영화를 표방한 '하이힐'을 가리켜 "지욱의 감정선을 따라가 보면 두 배, 세 배 더 재밌을 영화"라고 설명했다. 이어 "영화를 두 번 봤는데, 처음엔 '우리가 찍은 게 이렇게 나왔구나' 하는 마음이었고 두 번째엔 내 연기를 배제하고 영화 자체를 보려고 했다"며 "좋더라"고 돌이켰다.

"제 출연작이라는 점을 떠나서도 재밌다고 느꼈어요. 한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전개된다는 점도 좋았고 차승원 선배의 절제된 연기가 완벽하다고 생각했죠. 이번 영화를 통해 차승원 선배를 다시 보게 됐어요. 볼수록 진짜 멋있더라고요. 여장 장면들도 그랬어요. 극 중 첫 번째 여장은 어색했고 두 번째에도 그런 느낌이 있었는데 세 번째엔 관객들도 웃지 않았어요. 모두가 몰입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죠. 차승원 선배는 현장에서도 정말 친절하게 해주셨는데, 저는 왜 그렇게 떨었는지 모르겠어요.(웃음)"

극 중 진우는 내면의 여성성을 숨기고 살아 온 지욱이 바에서 일하는 매력적인 여인 장미(이솜 분)를 특별히 생각한다는 것을 눈치챈다. 영화의 후반부, 진우는 둘의 사이에 호기심을 품고 장미를 찾아간다. 딱히 러브라인이랄 것 없는 진우 캐릭터가 지욱 외 유일하게 얽히는 인물이 장미이기도 하다. 이 장면에서 진우가 지욱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은 관객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길 법한 순간이다.

"진우가 장미를 좋아한 것은 아닌지 묻는 분들도 계신데, 그렇다면 제가 뉘앙스를 잘못 풍긴 것일 수도 있어요. 진우는 지욱을 너무 좋아하는 후배 형사에요. 평소 여자를 만나지 않던 지욱이 장미를 자주 만나니 이상한 낌새를 느꼈겠죠. 장미를 찾아간 건 떠 보기 위해서였을 거예요. 장미를 향한 진우의 감정은 지욱과 어떤 관계인지에 대한 호기심, 탐문 수사 같은 거였죠. 노래를 부르는 장미의 모습을 보면서도 지욱은 '저 여자 슬퍼보인다'는 생각을 했을 테고요."

장미를 향한 진우의 감정이 자신의 의도와 달리 전달된 것 같다며 "뉘앙스를 잘못 풍겼을 수 있다"고 말하는 모습에선 제 연기를 엄격한 눈으로 평가할 줄 아는 영리함이 느껴졌다. 자신의 성취에 까다로운 편인지를 묻자 망설임 없이 "엄한 편이다"라는 답을 내놨다.

"맞아요. 제 연기가 마음에 안 들어요.(웃음) 물론 잘 했다고 격려해 주시는 분들 앞에서 괜히 '못 했다'고 말하긴 그렇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들이 있죠. 어떤 장면에선 눈을 감을지 뜰지를 오래 고민한 뒤 '감는 게 맞다'고 결정했었는데 영화로 보니 눈이 보이는 것이 더 좋았겠더라고요. 사실 이제까진 만족할 만큼 인물을 연구한 뒤 작품에 들어가질 못했어요. 늘 급박하게 진행됐고 현재 진행형으로 캐릭터를 구축하다보니 더욱 그런 마음이 있죠."

자신의 연기를 쉽게 호평하지 않는 자세는 "만족하는 순간 도태될 것 같다"는 욕심 많은 청년의 철학이기도 하다. 고경표는 "매 작품, 연기는 만족하면 안 될 것 같다"며 "만족하는 순간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분명 좋았던 순간이 있지만 '아, 나 이거 잘하네'하고 생각하는 순간 거기서 멈출 것 같다"며 "발전이 없는 셈"이라고도 말했다. 마냥 순해 보이던 얼굴에서 강단이 엿보였다.

배우인 동시에 건국대학교 영화과 학생이기도 한 고경표는 연출 공부에도 열심이다.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쉼 없이 연기 활동을 이어 왔지만 틈틈이 학교 친구들과 단편 영화 작업을 준비했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하이힐' 이후 당분간 상업 영화와 드라마 활동에선 숨을 고르려 했었다. 단편도 찍고 못 해본 해외 여행도 다니려 했지만 그새 욕심이 나는 작품이 생겼단다.

"올해 단편을 찍어서 나중에 미쟝센단편영화제에도, 전주와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출품하려 했는데 계획대로 잘 될지는 모르겠어요. 여행도 가고 싶고 단편 작업도 하고 싶지만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새 작품을 긍정적으로 논의하고 있거든요.(웃음)"

8개월 간 달려온 시트콤 촬영이 최근에야 끝이 났는데도 에너지는 여전히 뜨겁다. 촬영 당시 불규칙한 수면 습관 때문에 만성 피로가 왔다며 "아직도 3시간 단위로 깨서 '아, 촬영하러 가야지' 한 뒤 다시 잠든다"고 토로했지만 표정만은 밝았다. 분명 쉴 틈 없이 달려왔는데도, 고경표는 다음 행보를 궁금케 만드는 배우다. 보여줄 얼굴이, 숨겨둔 재능이 한참이나 쌓여있을 것 같아서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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