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화]80년 광주, 폭압을 눈물로 그린 '화려한 휴가'

꽃다운 누이가 정신을 놓아버리고, 명석하고 의기로웠던 학우는 쏟아지는 총알에 푸른 청춘을 잃었다. '정상'과 '상식'이 통하지 않았던 80년 5월의 광주. 그날의 금남로를 정면으로 응시하는데까지 27년의 세월의 걸렸다.

청산해야 할 한국현대사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려온 5.18 광주민주항쟁이 스크린으로 통해 아프게 되살아났다. 지난 5일 서울에서 열린 언론 시사회장을 눈물로 물들이고 이어진 주말 3대 도시 순환 시사회에서 보는 이의 가슴을 치게 한 '화려한 휴가'는 한국영화 최초로 광주의 열흘을 스크린에 담아냈다.

'화려한 휴가'에 앞서 광주를 다룬 영화는 있었다. 최윤의 원작소설 '저기 소리 없이 한점 꽃잎이 지고'를 장선우 감독이 영화화한 '꽃잎'은 '그날 그곳'에서 오빠가 주검이 된 후 산산히 조각난 소녀의 삶을 그렸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 역시 그곳에 투입된 공수부대원이 기억을 지우지 못하고 파멸해 가는 과정을 담았다. 이처럼 한 개인의 삶을 통해 단선적이고 상징적으로만 그려졌던 5월의 광주는 '화려한 휴가'를 통해 비로소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낸다.

오래전에 이미 대중문화의 틀 안에서 소통돼야 했을 광주이기에, 영화는 낯설지 않다. "정치적인 영화가 아닐 뿐더러 사실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도 아니다"는 김지훈 감독의 말은 영화가 서 있는 지점을 명확하게 설명한다. 때문에 '화려한 휴가'는 매우 '일상적인 시점'과 '대중성'을 견지한다.

그러나 이 평범함야말로 '화려한 휴가'가 대중에게 호소하는 힘의 원천이다. 바로 나일수도 있고 나의 형제와 가족, 이웃일 수도 있는 평범한 민초들이 무자비한 군화에 짓밟히고 총 앞에 스러져갈 때 느끼는 분노와 고통은 더욱 커진다.

보는 내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며 시대의 아픔에 눈물을 흘리게 하는 '화려한 휴가'는 그 냉정하다는 영화 담당 기자들 조차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는 시대, 폭압의 시절이 비춰져지는 영화는 단순히 '불편함'을 넘어서 '고통'으로 남는다.

한국현대사의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은 80년 광주는 너무도 역설적인 제목의 '화려한 휴가'로 다시 태어났다. '누가 그들을 쏘라고 말했을까.' 영화를 보고 난 후 지울 수 없는 물음이다. 사랑과 희망, 청춘과 존엄을 위해 생명을 바친 그날 광주의 민초들에게 한없는 애도를 표하며 부디 영화가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 따위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란다.

단순히 사건을 반추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대중매체를 통해 파급력을 보여줄 때다. 비록 픽션이라 할지라도 대중문화의 외피를 입고 스크린에 현신(現身)한 광주민주항쟁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론의 장을 형성할 여지가 크다.

영화를 본 관객의 눈물과 공분을 넘어서 역사의 오류를 되풀이 하지 않는 교훈을 남기는 것이 대중문화로 재탄생한 '화려한 휴가'에 거는 궁극의 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