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에세이]
요즘 방송가는 사극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편수도 늘어났을 뿐더러 웬만하면 높은 시청률을 얻으니 소위 '안전빵'이다. 이런 추세로 최근 수많은 사극이 제작되고, 시청자들도 사극에 큰 관심을 보이며 열광하고 있다.
하지만 사극에 대한 이러한 인기가 얼마나 갈지 아무도 모른다. 그동안의 경향으로 봐서 어느 순간 새로운 장르의 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그와 비슷한 장르가 뒤를 이을 것이다. 우리 방송가는 늘 그래왔다. 물론 어떤 드라마가 다음의 대세를 이어갈지도 알 수 없다.

특이한 점은 사극에 대한 대우가 과거와 달라지며 배우들의 인식도 바꿔 놓았다는 것. 불과 2년 전만 해도 사극은 배우들의 기피 장르였다. 촬영은 어렵고, 드라마의 성공을 보장 받을 수 없기 때문이고, 나아가 현대적인 이미지를 잃고 표류해 광고와 멀어지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사극 덕을 톡톡히 본 사례가 늘면서 배우들의 사극 기피 현상이 조금은 가신 듯하다. 멀게는 이영애와 지진희, 가깝게는 김명민과 송일국, 한혜진 등이 그 예. 이영애는 '대장금'을 통해 국내 톱스타에서 한류스타로 승격되고, 지진희는 스타 반열에 들자마자 역시 한류스타로 추앙 받기 시작했다.
'불멸의 이순신' 김명민은 연기파 배우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했고, 이후 드라마 '하얀 거탑'과 영화 '리턴' 등에서 주연배우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주몽'과 '소서노' 역의 송일국과 한혜진은 '주몽' 이후 동반 스타덤에 올랐다. 특히 송일국은 현재 '로비스트'에서 주인공으로 활약 중이다.

과거 배우들이 사극 출연을 피했던 이유는 뭘까? 한 마디로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점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기본적으로 현재의 언어생활과 다르다는 점, 의상과 분장 또한 현대극에 비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고 그 자체가 어렵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남자 배우나 여자 배우나 큰 차이가 없다.
좀 더 세세하게 따져보면 사극 연기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먼저 남자 배우의 경우, 머리카락이 길수록 좋다. 대부분 상투를 틀고 가발을 쓰기 때문. 머리카락이 짧으면 상투와 가발의 끝으로 삐쳐 나와 보기에 안 좋고, 가발을 고정하기도 불편하다. 사극의 남자 주인공들이 캐스팅 이후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방송 전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제작발표회에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머리카락만큼 수염도 골치다. 수염을 붙이는 것도, 수염을 제거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보통은 수염을 붙이는 것이 대부분인데, 강력한 접착제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붙이기 때문에 남자 배우들은 분장하는 동안이나 분장 이후에도 꽤 애를 먹는다. 밥을 먹을 때나 크게 웃을 때 자칫 떨어질까 두려워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극중 인물이 내시이거나 성인이 아닐 경우, 실제 수염을 파르라니 깎아야 하는 일도 남자배우들에게 번거로운 일 가운데 하나다. '왕과 나'는 여느 사극에 비해 내시가 많이 등장하는데 전광렬, 오만석 등 내시 역을 맡은 배우들은 매번 촬영 전 깔끔히 면도를 한다. 또 '이산'의 맹상훈도 그렇고, 이서진 역시 아직 성인이 아닌 상태여서 코와 턱 밑이 깔끔하다.
남자 배우들은 신분 차와 상관없이 대부분 상투와 가발을 착용하는데, 이로 인해 두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관자놀이 위 부분이 옥죄기 때문. 또 한 번 분장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투여돼 촬영이 끝날 때까지 중간에 상투와 가발을 풀 수가 없어 더욱 고통스럽다.

여자 배우라고 예외는 아니다. 사극이 대부분 6개월 이상, 때론 1년 이상 방송되기 때문에 쪽머리를 해야 하는 여자배우들은 탈모와 쏠림현상을 감내해야 한다. 머리카락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앞가르마를 하고, 어떨 때는 무거운 가채까지 얹어야 하니 여러모로 수난을 당한다. 어떤 이는 원형탈모증이 생겨 고민이고, 어떤 이는 가르마를 바꾸지 못해 머리의 일부가 비어 보여 걱정이라고 호소한다.
여자배우들이 의복을 갖추고 분장을 하는 시간은 평균 잡아 2시간. 특히 가채는 올리는 것도 힘들지만 그 무게가 꽤 무거워 고개를 자유롭게 움직이기에 쉽지 않다. 가채가 아니더라도 본래 헤어스타일로 연기할 수 없기에 머리카락을 붙이거나 가발을 쓴다.
얼마 전 '왕과 나'에서 성종과의 합궁 장면을 촬영한 소화 역의 구혜선은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바 있다. 이때도 자신의 본래 머리카락이 아니라 일일이 하나하나 길게 붙인 것이었다. 지금은 얼굴보다 큰 가채를 올린 상태로 연기하고 있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남녀 공히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은 촬영 그 자체. 먼저 촬영지가 전국 곳곳에 퍼져 있고, 산간벽지까지 돌아다녀야 하는 경우가 많아 제작 기간 중 이동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요즘에는 전국에 사극 세트가 많아져 촬영에 도움이 된다고는 하나 배우와 스태프들에게는 여전히 피곤한 일이다.
궁권이나 저자거리, 여염집, 산과 들녘 등 카메라에 잡히는 공간이 넓을 경우, 롱테이크로 찍을 때 배우들은 걷고 뛰는 분량이 많아 체력 소모가 크다. 또 곳곳에 보이는 고층 건물과 전기선이 안 보이는 장소를 골라 헌팅하는 일도 녹록치 않다.
그렇다고 사극이 어려운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주인공들은 현대물에 비해 수월한 면이 있다. 현대물, 특히 미니시리즈에서 주인공의 비중은 대본 상 촬영 분량이 보통 70%이상. 어떤 작품에서는 남녀 주인공이 등장하는 분량이 90%를 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미니시리즈가 사극에 비해 전개가 빠르고, 주인공들이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때문. 하지만 사극은 등장인물이 많고 다양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주인공들의 실제 분량은 상대적으로 적다.
게다가 요즘 같아서는 사극 출연 한 번 잘하면 배우로서의 앞길이 열릴 수도 있으니 그리 투덜거릴 일만은 아닌 듯하다.
조이뉴스24 /문용성기자 lococo@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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