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경기 나가야지. 프로세계니까."
지난 19일 '윤길현 사태'를 책임지겠다며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던 SK 김성근 감독. 사죄의 의미로 그날 경기(잠실 두산전)에 출장하지 않았고, 다음날인 20일 홈인 인천 문학구장으로 돌아와 하루만에 그라운드로 나가며 한 말이다.
단지 하루 자리를 비웠음에도 기나긴 시간처럼 느껴진 김 감독이겠지만 여느 때와 별로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이날 삼성과의 경기 전 김 감독은 전날 경기장을 떠나 있을 때의 심경에 대해 설명했다. "숙소에서 TV로 경기를 봤는데 1회 채상병에게 홈런을 맞자 (졌다고 생각해) 인천으로 돌아왔다"고 말하면서, "야구인생을 뒤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야구철학에 대해 밝혔다.
감독실에는 지난 스프링캠프 때 일본에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부탁했다는 '일구이무(一球二無)'라는 글귀가 적힌 붓글씨가 액자에 포장돼 있었다.
'일구이무'는 '일시이무(一矢二無)'란 고사성어를 변형시킨 것이다. 중국 한나라 때 한 장군이 해질 무렵 호랑이를 발견했는데, 목숨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활을 당겨 호랑이를 명중시켰다. 그런데 살펴보니 화살이 꿰뚫은 것은 호랑이가 아닌 바위였다고 한다. 즉, 정신을 집중하면 화살로 바위도 뚫을 수 있다는 교훈이 담긴 말로 전해져 내려온 고사성어이다.
김성근 감독은 일본에서 현역 선수로 뛰던 20대 시절 이 고사성어에서 '화살 시(矢)'자를 야구공을 의미하는 '공 구(球)'자로 바꾸어 '일구이무(一球二無)'라는 고사성어를 직접 조어해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공 하나에 온 정신을 다 쏟아 바위(적)를 뚫고야 말겠다는, 야구에 대한 김 감독의 집념을 엿볼 수 있는 좌우명이다.
김 감독은 "불과 5일전에 도착한 붓글씨"라면서, "(부탁한 이가) 이 글자하나 쓰는데 몇 번이고 쓰다 버리고 또 다시 썼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렇게 글자 하나 쓰는 데도 굉장한 노력과 시간이 소모된다. 보기엔 단순한 글이지만 이 한 작품을 완성하려면 피땀 흘린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의 이 말은 현재 SK가 어느 팀보다 강한 전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거저 얻은 결과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선수들의 피땀 흘린 노력이 뒷받침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 감독은 '일구이무(一球二無)' 글자를 SK의 야구전술에 현학적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숫자 '1(一)과2(二)'는 '힘'을 의미하고, '구(球)'는 '기본'을 뜻하며, '무(無)'는 '세심함'을 내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감독은 좌우명 '구(球)'에 담긴 뜻을 설명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지지않는 야구를 해야 한다. 그러나 '기본과 예의'도 최소한 지켜야 SK 야구가 완성된다"고 말했다. '윤길현 사태'를 야기시킨 그라운드에서의 불미스런 행동에 대해 간접적으로 야구에 필요한 '예의와 범절'을 간과한 행동이었다는 질책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감독은 그라운드를 떠난 '고통의 하루' 동안 야구인생을 뒤돌아보며 "내가 왜 여기 있는 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이게 내 방식이다. SK에서 추구하는 것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야구다. 그게 프로가 갖추어야 할 기본사항"이라며 "오늘은 경기에 나가야지. 그게 프로 아니냐"라고 말한 뒤, 경기장에 나갔다.
그리고 김 감독은 이날 삼성전을 12-2 대승으로 이끌었다. 경기 중 한 차례 몸에 맞는 볼(SK 조동화)이 나왔음에도 양 선수는 미안함과 양해의 인사를 나누는 아름다운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조이뉴스24 /문학=손민석기자 ksonms@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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