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필기자] 어쩔 수 없었다. 바벨을 들어올리는 순간 그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최선을 다했지만 운명은 너무나 가혹했다.
사재혁(27, 강원도청)은 2일 새벽(한국시간) 영국 런던 엑셀 사우스 아레나3에서 열린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역도 77㎏급체 출전, 인상 2차 시기에서 162㎏ 바벨을 들어올리다 오른쪽 팔꿈치가 꺾이면서 플랫폼에 쓰러졌고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1차 시기에서 158㎏을 들어올리며 순항했지만 불의의 부상은 사재혁을 쓰러트렸다. 대한역도연맹 관계자는 "팔꿈치 부상이다. 우려했던 탈골은 아닌 것 같지만 상황은 좋지 않다. 부상을 달고 살았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역도에서 팔이 꺾이는 경우는 드문데 너무 열망이 강했던 것 같다"라고 전했다.
사재혁은 부상 극복의 아이콘이라 할 정도로 온갖 부상에 시달려왔다. 2001년 무릎을 시작으로 2003년 어깨에 두 번, 2005년엔 손목 수술을 받았다. 네 번이나 수술을 받은 그의 몸은 만신창이에 가까웠다.
그래서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은 기적이었다. 인상 163㎏, 용상 203㎏을 들어올려 합계 366㎏으로 중국의 리훙리(366㎏)를 몸무게 차이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재혁은 리훙리보다 450g이 가벼웠다.
부상을 견딘 투혼의 승부사였다. 의료진이 "계속 운동을 하게 될 경우 손목이 썩어들어갈 수 있다"라고 경고를 했지만 올림픽에 대한 집념이 몸의 이상 신호를 눌렀다. 2008년 당시 그의 금메달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전병관 이후 16년 만에 역도에서 맺어진 결실이라 의미가 남달랐다.
한 번 각인된 금메달리스트 이미지는 런던 올림픽을 준비하는 데 있어 큰 부담이었다. 런던으로 향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의 몸은 더욱 엉망이 돼갔다. 한때 오른 손목뼈가 제대로 붙지 않아 무혈성 괴사 위험에 시달렸다. 혈류가 차단돼 뼈 조직이 죽는 질환으로 심하면 뼈가 부스러질 수 있다.
역사(力士)에게 손목은 무척 중요한 부위다. 재수술을 하게 될 경우 선수 생명은 사실상 끝이다. 사재혁은 늘 위험한 상황을 안고 있었다. 손목 상태는 지속적으로 확인중이지만 아직까지도 손목 재수술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투혼이라는 이름으로 더 아름답게 포장됐다. 2010년에는 오른쪽 어깨 힘줄 수술을 받았다. 은퇴를 고민했지만 그는 웃으며 런던 올림픽을 준비했다. 와중에 지난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인상 157㎏, 용상 203㎏를 들어 합계 360㎏로 동메달을 획득하며 런던에 대한 희망을 밝혔다.
그러나 올림픽을 한 달 앞두고 이번엔 엉치뼈와 척추뼈 사이가 벌어져 허리 통증에 시달렸다. 3주 가까이 바벨을 잡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웃음과 의욕으로 견뎠다. 중국이 같은 체급에 뤼샤오쥔(28)과 뤼하오지(22) 등 2명을 내보내 심리적인 압박도 거셌지만 신경 쓰지 않고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갔다.
안타깝게도 결말은 또 부상이었다. 온전하지 않은 몸은 사재혁을 울렸다. 다시 수술대에 오르게 된 오뚝이 사재혁의 잊을 수 없는 올림픽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그가 해맑은 미소로 다시 돌아오기를 기원한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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