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기자] 배우가 드라마를 살릴 때가 있다. '다섯손가락'의 주지훈이 그랬다.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다섯손가락'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불호는 뚜렷하게 갈렸다. 복수에 복수가 거듭되고, 억지스러운 설정이 이어지면서 막장드라마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주지훈의 연기에 토를 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차가워진 눈빛에 깊은 분노, 처연한 슬픔까지. 주지훈이 캐릭터를 살렸고 존재감을 아로새겼다.

'다섯손가락'을 마친 주지훈을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지켜보는 이가 아슬아슬할 정도로 직설적이고 솔직했다. 작품에 대해 아쉬운 점을 가감없이 털어놓았을 정도로, 연기에 대한 열정이 넘쳤다.
KBS2 '마왕' 이후 5년 만의 복귀작이었던 '다섯손가락'의 종영 소감을 묻자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는 대답이 먼저 돌아왔다.
"드라마 전개가 많이 빠르죠. 사건이 반복해서 일어나다 보니 사건도 많고, 대사도 많았어요. '조금 더 집중을 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주지훈이 맡은 극중 천재피아니스트 유지호는 믿었던 어머니에게 배신을 당해 복수의 화신으로 변하는 인물. 굴곡진 인생사에 극과 극을 오가는 감정 연기가 필요했다. 주지훈은 캐릭터로부터 기쁨과 분노, 슬픔과 사랑 등 다양한 감정을 이끌어내야 했다.
주지훈은 "감정이 많이 소진됐다"며 "굉장히 고된 작업이었다"고 털어놨다. 캐릭터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도 주지훈의 몫이었다.
"충분히 현실에서도 이런 사건 사고가 날 수 있어요. 다만 드라마의 특성상 전개가 빠르다보니 중간이 없어서 제가 만드는 부분이 많았어요. 예를 들면 대본에서는 1년 뒤로 뛰지만, 저는 그 안을 만드는 작업들 한 거죠. 매 신마다 감독님과 상의를 해가며 촬영했어요."
"드라마가 감정의 시퀀스를 많이 보여주는, 친절한 스타일의 드라마죠. 예컨대 오열을 하는 장면 다음에 차에서 혼자 우는 장면이 있어요. 시청자들에게는 친절하지만 연기자 입장에서는 힘들어요. 이미 한 감정을 써버렸는데 또 감정을 써야하니까. 그래서 기술적인 부분을 많이 배웠어요. 같은 감정일 수 밖에 없는 신은 그 감정을 더 잘게 쪼개면서 연기했죠."

주지훈이 연기한 지호는 마지막까지 얄궂은 운명을 지닌 캐릭터였다. 마지막회에서 영랑(채시라 분)은 지호를 쫓아오다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지호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결말은 아쉬웠고, 지호는 안타깝고 가여웠다.
주지훈은 결말에 대해 "그 뒤의 이야기는 상상도 하기 싫다.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친엄마인 영랑을 용서했을 것 같냐는 질문에도 "애매하다. 못 만나고 끝나지 않았느냐. 연기를 했으면 어떻게 했을지 궁금하다"고 답했다.
일부에서 '다섯손가락'을 막장 드라마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주지훈은 이에 대해 "시청자들이 보는 것이 정답이다"며 "재미있게 봤으면 재미있는 거고, 아니면 아닌거다. 개인의 호불호가 있으니까"라며 쿨하게 답했다.
시청률에 대한 아쉬움을 묻는 질문에도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저는 주어진 대본에 맞춰 연기를 열심히 한다. 꾸준히 10%를 넘었으니 나쁜 시청률은 아닌데 시청자들의 기대치가 컸던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내 능력이 안 닿는 부분은 스트레스 받지 않아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시청률을 떨어뜨리는데 한 몫을 했다면 걱정을 했을 것 같아요."
다만 자극적인 정서를 추구하는 드라마와 시청자의 현실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다.
"비단 우리 드라마만의 문제는 아니예요. 시청자들이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니까 그렇게 만드는 건지, 자극적인 것을 만들다보니 시청자들이 길들여진 건지. 지금은 자극적이고 직설적인 드라마가 많은 것 같아요. 배우 입장에서는 선택권이 넓어질 수 있도록 작품이 다양해지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작품에 대한 외부적인 평가와 상관 없이 현장 분위기도 좋았다고. 주지훈은 "스태프들도 다 친하고, 웃으면서 촬영했다"고 말했다. 특히 함께 연기한 채시라와 지창욱, 진세연 등 배우들에 대해서도 만족감을 드러냈다.
"채시라 선배는 한 신도 안 놓칠 정도로 집중력이 대단하세요. 저는 릴렉스하는 편인데, 채시라 선배님은 제가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죠. 대단하고, 존경해요. 창욱이는 연기할 때 굉장히 센스가 있어요. 또래 연기자 중 상위 클래스라고 생각해요."
11살 차의 진세연과의 로맨스는 어땠을까.
"진세연 씨가 20살이지만, 멜로신 찍을 때는 상관 있나요. 진세연 씨가 연애를 한 번도 안 해봐서 키스신을 찍을 때는 어려움이 있긴 했어요. 그래서 제가 더 열심히 했는데, 모니터를 봤더니 제가 굉장히 괴롭히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평소에는 제가 막내삼촌 같은 느낌이었어요. 세대 차이도 좀 났죠. 저희 세대가 아는 노래를 잘 모르더라구요. 귀여운 꼬맹이 같은 느낌이었죠."
주지훈은 군 제대 후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와 드라마 '다섯손가락'까지 부지런히 달려왔다. 주지훈은 "당분간은 좀 쉬어야겠다. 시간이 되면 피아노도 배우고 싶고, 영어도 배우고 싶다. 할리우드를 가는 것이 배우로서의 개인적인 꿈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좋아하는 외국 영화와 드라마를 줄줄이 읊는 주지훈의 눈빛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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