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그리고 히딩크 감독의 '황태자'로 한국 국가대표팀 중원의 '핵'으로 군림한 선수. 바로 김남일(32, 빗셀 고베)이다.
2002년부터 구축된 김남일의 아성은 공고했다. 김남일은 부동의 주전 중앙 미드필더로서 대표팀의 한 기둥이 됐고, 그의 파트너가 누구일 지가 관심거리였을 정도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도 그의 아성은 지속됐다. 가히 대표팀 중원은 '김남일 시대'였다.
허정무호가 출범한 후에도 '김남일 시대'는 이어졌다. 김남일은 허정무호 부동의 주전이었고, 주장 역할도 담당했다. '김남일 시대'가 2010년 남아공월드컵까지 무난히 지속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김남일 시대'에 위기가 찾아온다. 2008년 9월10일 펼쳐진 월드컵예선 북한전에서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펼친 김남일은 허정무호에서 멀어졌고, 동점골을 성공시킨 '히어로' 기성용이 허정무호의 '혜성'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후 김남일은 더 이상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했고 기성용은 허정무호의 '중심'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기성용이 중심인 허정무호 중원은 승승장구를 계속했다. 그리고 김남일이 차던 '주장' 완장 역시 박지성이 이어받았다. 새로운 '캡틴' 박지성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중원의 '핵' 기성용과 '캡틴' 박지성은 월드컵 본선 7회 연속 진출이라는 금자탑을 쌓는데 지대한 역할을 해냈다.
그렇게 김남일은 조금씩 잊혀져가기 시작했다. 대표팀의 중원에서도 주장의 역할에서도 김남일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 보였다. '김남일 시대'가 막이 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축구팬들과 전문가들은 '포스트 김남일'의 등장을 기다렸다.
기성용이 성장하기는 했지만 아직 시대를 풍미한 김남일에 도달하려면 멀어, 더욱 성장해야만 했다. 그리고 조원희, 김정우 등 경쟁자들이 가세해 '포스트 김남일' 자리를 놓고 무한경쟁을 펼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경쟁이 월드컵 본선까지 이어질 분위기였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반전이 일어날 조짐이다. '포스트 김남일'을 기다리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 앞에 진짜 김남일이 돌아온 것이다. 허정무 대표팀 감독은 오는 5일 호주와의 친선경기에 나설 축구대표팀 명단에 김남일을 포함시켰다. 지난해 북한전 이후 처음으로 김남일은 허정무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김남일은 예전과는 다른 영향력과 위상을 가지고 돌아왔다. 많이 작아진 김남일이다. 그래서 더욱 큰 열정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지, 그리고 마지막이라는 절실함을 함께 가지고 한국 땅을 밟았다. 부상도 김남일의 의지를 막아서지 못했다.
호주전을 앞두고 대표팀에 합류하기 위해 지난달 31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김남일을 만났다. 김남일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미간에 피멍이 들어있었고, 많이 부어있었다. 김남일은 미간에 살짝 금이 가는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김남일은 "우라와 레즈와의 경기에서 상대 백헤딩에 맞아 다쳤다. 미간쪽에 살짝 금이 갔다. 일단 대표팀 경기 끝나고 돌아가 추가 검사를 받을 것이다. 병원에서 뭐라고 하든 선수 의지가 그렇다면 뛰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보호대를 맞춘 상태고 내일 도착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남일의 의지와 열정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부상을 당했지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 김남일은 포기할 수 없었다. 더욱 큰 부상을 당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김남일은 태극마크를 다시 달고 월드컵에 나가고 싶었다. 그만큼 김남일은 독을 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예전의 영광은 다 잊었다. 화려했던 위상과 팀의 중심 역할 역시 과거의 추억으로 넘겨 버렸다. 김남일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시대를 풍미한 김남일이 아닌 대표팀 새내기(?) 김남일이 찾아온 것이다.
김남일은 "오래 걸린 것 같고 길게만 느껴졌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악재가 겹쳤다.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 과정이 있어 많이 성숙해졌다. 원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처음 대표팀에 뽑힌 기분이다. 찾아온 기회 놓치고 싶지 않다. 마지막 기회다"며 의지를 다졌다.
이어 "후배들이 많이 성장 했다. 기성용, 조원희가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나도 긴장을 많이 하고 있다. 훈련부터 더 성실히 해야겠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100% 이상 더 보여줄 것이다. 제2의 김남일을 찾는다고 하는데 부활하는 김남일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김남일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음을 알렸다.
지금 한국축구는 기로에 서 있다. '김남일의 시대'가 지속될 것인가, 정말 '김남일 시대'가 막을 내릴 것인가. 그 결말은 김남일의 발 끝에 달렸다.
조이뉴스24 /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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