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데뷔 이후 늘 안정적인 연기력과 사랑스러운 비주얼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아온 박보영도 연기 앞에서는 고민이 참 많은 배우였다. 특히 '연기 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연기를 너무나 잘하는 이병헌과 호흡을 맞추면서 무력감까지 느꼈다고. 이에 혼자 끙끙 앓기까지 했다는 박보영이 내린 결론은 대선배들도 늘 연기에 대한 고민을 하기 때문에 자신이 고민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그래서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다짐으로 완성한 박보영의 명화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메시지를 관통하는 중요한 인물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과 여운을 안겼다. 늘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변화하고 성장하려 하는 박보영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재난 드라마로, 이병헌과 박서준, 박보영, 김선영, 박지후, 김도윤 등 '믿고 보는' 배우들이 완벽한 합을 이뤄냈다.
거대한 지진이 모든 콘크리트를 휩쓸고 폐허가 된 도시를 배경으로 아파트 안팎에 살아남은 인간들의 각기 다른 심리와 관계성을 탄탄하게 그려내 관객들에게 "올여름 최고의 영화"라는 호평을 얻었다. 이에 9월 6일 기준 365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순항 중이다.
특히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제48회 토론토 국제영화제 초청과 함께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제96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영화 출품작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박보영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재난 속 가족을 지키고자 차츰 달라지는 남편 민성(박서준 분)의 아내이자 끝까지 신념을 지키며 영탁(이병헌 분)과 대립하는 명화 역을 맡아 극을 탄탄하게 이끌었다. 그간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가 강했던 박보영은 명화를 통해 지금껏 본 적 없는 강렬한 분위기와 강단 있는 면모를 드러내 관객들의 마음을 꽉 사로잡았다. 다음은 박보영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제작보고회에서 이병헌 배우가 슛하자마자 돌변해서 소름 돋았다고 했었는데, 언제 그랬나.
"혜원을 발견하고 헤치고 가던 장면이었다. 그 전까지 평온하게 계시다가 갑자기 눈으로 레이저를 쏘시더라. 선배님은 예열이 필요 없으시더라. 또 현장에서 선배님이 연기했던 것을 볼 때보다 스크린으로 볼 때 더 크게 다가와서 '우와'하면서 봤다."
- 이병헌 배우 연기를 보고 촬영하는 동안 슬럼프를 겪었다고 하던데, 어떤 마음이었나.
"평소 연기 잘하는 분들과 작품을 같이 하는 것이 소원이다. 병헌 선배님은 연기를 너무 잘하시니까 늘 같이하고 싶었다. 마주해서 연기하는데 정말 너무 잘하시니까 무력감이 느껴진다. 부딪히는 것이 당연한 건데 정답을 찾는 것이 힘들다. 선배님은 정답이 많고 그걸 다 찾으시는 것 같다. 이것도, 저것도 다 정답 같아 보인다. '난 왜 이렇게 못하고 부족한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이 감정을 이병헌 선배님뿐만 아니라 김선영 선배님에게도 느꼈다. 같이한 배우들이 연기를 잘해서 좋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오는 것이 있어서 고민했는데, 결과적으로 저는 이병헌, 김선영 선배가 아닌 병아리라서 갈 길이 멀고, 열심히 하면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 또 선배님들도 긴장하고 걱정하신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위안이 되더라."
- 그런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힘든 시간이었을 것 같다. 혼자 고민하는 스타일인지, 아니면 주변에 고민 상담을 했는지 궁금하다.
"혼자 끙끙 앓았다. 또 잘하고 있는지, 소속사 대표님과 친한 선배님에게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다 제가 예전에 봤던 김혜수 선배님의 인터뷰가 생각났다. 촬영 한 달 전까지 '왜 이걸 선택했나' 고민한다고 하시더라. 선배님도 그러시는데, 내가 고민하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 남편 역 박서준 배우와도 얘기를 나눈 게 있나?
"그분은 (연기를) 너무 잘해서 고민 안 할 것 같더라. 이런 고민은 나만 하는 것 같아서 혼자 끙끙 앓았다."
- 박서준 배우와의 부부 호흡은 어땠나.
"부부라면 편안하고 신뢰가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박서준 오빠는 불편함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 연기하기 전에 대화를 많이 안 해도 되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하실 거에요?' 그런 말이 필요 없는 상황이라서 편안하고 익숙했고, 잘 맞았던 것 같다. 감사하다."
- 부부의 행복한 모습이 담긴 민성의 가상 인스타그램도 화제가 됐다.
"그건 감독님 아이디어다. 웨딩사진 같은 소품이 쓱 지나가서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감독님이 부부의 전사를 그렇게 담아내고자 의견을 내셨다. 처음 만나 찍었던 사진들이 담겼다."
- 첫 만남 후 곧바로 찍었던 웨딩 촬영은 어땠나.
"영화보다 키 차이가 덜 나는데, 웨딩 촬영은 신부 배려를 많이 해준다. 서준 오빠가 장난기가 많아서 잘 나올 수 있게 해줬다. 또 웨딩 촬영을 많이 했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되돌아보니 참 많이 찍었더라."
- 황도신도 화제가 정말 많이 됐다. 예상했나.
"전혀 몰랐다. 그냥 가벼운 신이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분이 정말 좋아해 주시더라. 영화에서 훅 지나갔는데, 워낙 그런 달달한 장면이 안 나오다 보니 좋아해 주시나 했다."
- 눈물이 차오르는 클로즈업 샷이나 명화가 광기를 드러내는 장면에서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클로즈업 샷을 이렇게까지 할 거냐고 했었는데, 영화를 보고는 왜 그렇게 했는지 정확하게 이해가 됐다. 시사회에서 처음 볼 때 제 연기를 마주하는 것에 부끄러움이 많아서 다른 사람 반응을 봤다. 눈물을 닦길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명화가 아들 찾아주겠다고 하는 장면에선 명화가 갑자기 그렇게 확 감정이 올라오는 것이 맞나 해서 걱정이 됐다. 장르적인 부분에서 서스펜스가 필요했던 것 같다. 촬영하면서 새로운 얼굴, 낯선 얼굴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화장기 없이 메마른 얼굴과 늘 똑같은 옷 등 외적인 표현에 중점을 둔 것은?
"어떻게 하면 못 씻은 사람처럼 나올까.(웃음) 가장 먼저 티가 나는 건 머리라고 생각해서 기름기 있게 표현을 했다. 옷도 매번 같은 것을 입으니까 충분히 드러날 거라 생각했다."
- 명화 역을 통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박보영과는 또 다른 연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배우 스스로에게도 이번 캐릭터가 큰 도전이었는지 궁금하다.
"많은 분이 저에게 기대하는 얼굴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게 어떤 건지도 안다. 그것을 깨고 싶은 건 배우로서의 욕심이다. 알게 모르게 도전을 많이 해왔고 명화는 그 연장선이다.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서 거부감 없이 다 받아들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대한 많은 변주를 주고 스며드는 작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조금씩 이런 작품,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고 있다. 명화도 낯선 얼굴이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안 보여드린 얼굴은 아니다."
/박진영 기자(neat24@joy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