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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범]'야신' 김성근 감독 충격고백 "사실 난 한쪽 콩팥이 없다네"


"난 암에 걸렸고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인간은 그 누구에게도 약점을 보여선 안된다. 그래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10년만에 처음으로 밝힌다."

지난 3일 SK 와이번스-히어로즈의 시즌 13차전이 열린 문학구장. 마운드에 오른 윤길현의 5구째 투구가 히어로즈 장기영을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SK는 8-0 승리를 거뒀고, 김성근 감독은 통산 '1,000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아올렸다.

그 순간 김성근 감독 눈에는 지난 10년간의 힘겨웠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까짓' 1,000승이라는 기록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대한민국 어느 야구인도 모르게 신장암 수술을 받았고, 한쪽 콩팥을 통째로 덜어낸 뒤에도 남모른 고통을 내색않고 꿋꿋이 '생명을 건 야구 인생'을 걸어왔다.

4일 히어로즈와의 시즌 14차전을 1시간 앞둔 문학구장 SK 감독실. 기자들과의 얘기 도중 김 감독은 "이제는 괜찮다. 10년만에 처음으로 하는 얘기"라면서 무려 10년 동안이나 가슴에 품고 품어왔던 속내를 털어놨다. 바로 10년전 김 감독은 신장암 수술을 받았고, 최근까지도 아무도 모르게 암 관리를 하면서 팀을 이끌어왔다는 것. 이야기를 듣던 기자들은 너무 놀라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고, 김성근 감독은 1시간 동안 아무한테도 털어놓지 못했던 '야구인 김성근'의 암투병사를 담담히 이어갔다.

김 감독은 쌍방울 감독을 맡고 있던 1998년 8월경 아무도 모르게 신장암 수술을 받았다. 경기가 끝난 후 밤새도록 데이터를 분석하고, 쉬지도 못한 채 노크볼을 치는 등 야구에만 미쳐 있던 탓이었다.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않고 밤낮없이 무리한 결과, 결국 한쪽 콩팥에 악성종양을 키우게 됐던 것이다.

처음에는 이상이 생긴 몸을 김 감독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단순히 요도염 정도라고만 생각해 참고만 있었다. 나이도 있는 야구 감독이 비뇨기과를 들락날락 거린다는게 창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고통이 예전같지 않자 김 감독은 어쩔 수 없이 비뇨기과를 찾았지만 역시 병명은 요도염과 방광염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기 시작하자 김 감독도 단순히 앉아만 있을 수는 없었다. 주변 지인의 충고와 도움으로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진을 받은 결과 신장암 초기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시즌 중에 구단에게도, 선수에게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홀로 병원에서 한쪽 콩팥을 통째로 덜어내는 암수술을 받았다. 문병온 야구계 인사들에게도 단순히 결석이라고 얘기했다.

"허허, 병문안 온 사람들한테는 담석이라고 했지. 지금은 콩팥이 한쪽 밖에 없어. 사람은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절대로 안돼. 당시 문병온 사람들이 '김성근 감독은 끝이구나'라고 생각하는 게 눈에 보였고 심지어 반말까지 하는 이도 있었어. 세상 무서운지 그 때 절실히 깨달았지."

암 수술을 받은 후에도 야구 감독으로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몸 회복과 지속적인 암관리를 해야하는 병이지만 매일 늦게 끝나는 야구와 상대팀에 대한 분석, 그리고 끊임없는 외부의 비판 등에 시달리며 김성근 감독은 남모를 고통 속에서 야구팀을 이끌어왔다.

아침에 너무 피곤해서 일어나지 못하는 일은 수도 없이 있었고, 디스크까지 겹쳐 왼쪽 다리가 마비되는 증상까지 생겨도 김성근 감독은 이를 악물고 매일 매일 야구장에 나갔다. 그리고 냉철한 승부사로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팀을 이끌어왔다.

그리고 그 생활은 오늘 아침까지도 이어졌다. 김 감독은 "오늘 아침 닥터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조직검사 결과 아무 이상 없으니 야구나 열심히 하시라'고 하더군"이라며 소탈하게 웃었다.

'야신' 김성근 감독, 그는 이 시대 진정한 최고의 명장이다.

<1시간 동안 이어진 김성근 감독의 얘기를 요약 정리했다. 그냥 묻혀버리기에는 아까운 얘기이기에...>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10년만에 처음 하는 얘기야. 쌍방울 때야. 사실 내가 암에 걸렸었어. 콩팥. 신장암이지. 지금도 아무도 모르고 있어. 선수도 모르고, 구단도 모르고. 수술하고 다음날 그 때 세상이 정말 무섭다는 걸 알았어. 수술하고 문병온 사람들이 냉정히 뒤돌아설 때, '이 사람은 다 됐구나'라고 생각하는게 느껴졌어. 태도가 확 달라졌거든.

처음 암 진단을 받고도 벤치에 앉아 있었지. 사실 암이 금방 진행되는게 아니잖아. 쌍방울 맡고 3년째 되는 해였지. 그 동안 비밀로 한 이유는... 우리나라는 많이 따지잖아. 병이 있으면 고용을 안해. 허허. 지금은 상관없어. 이 말 하고 잘리면 할 수 없지 뭐.

어느 순간 소변 보는데 이상하더라고. 처음에는 요도염인 줄 알았지. 그런데 병원가기가 창피하잖아. 비뇨기과에 김성근 감독이 드나들면 사람들이 다 알아보는데. 그래도 여러 병원을 다녀봤는데, 가벼운 방광염이라는 거야. 대학병원도 갔었고. 그런데 언젠가 소변에서 피가 나오더라고.

병문안 온 사람들한테는 담석이라고 했지. 지금은 콩팥이 한쪽 밖에 없어. 쌍방울 시절 밤새 무리하고, 데이터 분석하고, 그리고 밤새도록 뒤풀이하고. 몸이 나빠지지. 또 화장실도 잘 안갔잖아. 그런 몸 상태서 노크 2~3000개 칠때는 '이거 쓰러지겠다'는 생각도 들었어. 난 내가 암에 걸렸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그때는 '야구인이면 이렇게 죽는 것도 괜찮겠구나' 싶었지.

아무리 아파도 정면 돌파했어. 아프다고 야구장 안나간 적이 없어. 힘들어서 방에서 일어나지를 못할 때도 많았어. 내가 약하다는거 절대 남에게 보이지 않았지. 오늘 아침에 닥터 전화왔는데 "조직 검사 해보니 괜찮으니 야구나 열심히 하라"고 하더라고. 사람이 뜻이 있으면 사는거야. 수술 후 배에 호스를 꽂고 피와 소변이 모이는 병을 들고 걸으면서 '난 반드시 야구장 돌아간다' 그 생각만 했더랬지. 신장암 초기였는데, 요도타고 전이될 위험성이 있다고 해서 하나 다 들어냈어. 야구(감독)하면서, (암)검사(와 관리)하면서 10년을 버텨온거야. 하루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달았지. 몸이 피곤하면 쉬어야 하는데 쉬지를 못한 거지.

지도자는 책임감과 의무가 있어야 해. 나만 바라보고 있는 애들이 있는데, 야구 없었으면 난 벌써 쓰러졌을 거야. '난 야구장 가야된다, 돌아가야 된다' 그 일념으로만 살아왔어. 야구없는 인생은 생각할 수 없어. 직업의식으로 버텨온 게 아니야. 사명감이야. 감독으로서의 사명감. 김응룡이라는 감독계의 거목도 현장에서 없어졌잖아. 그래서 내가 야구계 원로로서 야구 전체를 돌봐야한다는 사명감이 들었어.

절대 남한테 약점을 보이지 말게. 고개 숙이면 모든게 끝이야. 디스크 증상으로 왼쪽 다리가 말을 안들었을 때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버텼어. 우리나라는 권리만 주장하잖아. 그게 아냐. 의무와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하면 그 다음에 권리가 따라오는 거야. 난 몸이 아파도 도망치지 않았어. 난 그렇게 살아왔어.

조이뉴스24 /문학=권기범기자 polestar17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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