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리기자] 우리는 국어시간에 소설은 흔히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이렇게 다섯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배웠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사람의 인생에도 이러한 구성요소로 정리되는 한 페이지가 반드시 존재한다.
'탑 걸(Top Girl)'로 돌아온 가수 지나도 마찬가지다. 가수로 데뷔한 지 약 1년 2개월. 그러나 가수가 되기 위해 지나가 준비하고 감내한 시간은 이것의 몇 배다. 홍대 앞 한 예쁜 까페에서 만난 지나의 즐겁고 유쾌하면서도 눈물겨운 이야기들을 인생 다섯 단계로 짚어봤다.

◆지나의 발단…"어린 지나, 음악에서 위안을 얻다"
부유한 집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컸을 것 같은 지나는 사실 어려운 유년 시기를 보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 지나는 어머니의 일 때문에 이사를 자주 다녀야 했다. 한창 예민할 시기, 지나는 음악을 통해 안정과 위로를 얻게 됐다.
"어릴 때는 음악이 좋아서 교회에서 CCM을 부르며 노래를 시작했어요. 엄마의 일 때문에 한 군데 못 있고 여기저기 옮겨 다녔죠. 제가 안정된 환경에서 자란 것도 아니니까 탈출할 곳이 없었어요. 그 때는 뒤돌아보면 제자리에 있는 것이 음악밖에 없었어요. 자고 일어나고 먹고 생활하는 곳은 항상 바뀌어 있었으니까요. 그게 어릴 때부터 싫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교회는 항상 바뀌었지만 음악은 바뀌지 않았죠. 제가 유일하게 탈출할 수 있었던 곳은 음악이었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CCM을 불렀던 지나는 10살 때 합창단으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음악을 접하게 된다.

◆지나의 전개…"어디서나 당당한 지나, 가수를 꿈꾸다"
학창시절을 캐나다에서 보낸 지나는 동양인이었지만 어디서도 당당하고 당찬 소녀였다. 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들의 추천으로 여러 음악대회에 나가기도 했다는 지나는 "사람들이 내 공연을 좋아하고, 또 내가 무대에 올라가는 기쁨을 느끼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야말로 끼가 철철 흘러넘쳤던 지나는 고등학생 시절 치어리더팀, 컨트리음악팀에서 활동하면서 학교의 학생 부회장까지 맡았다. 음악으로 다른 학교 축제 무대에 서는 것은 물론 봉사활동까지 했단다.
"고등학교 때는 제가 팀을 만들어서 활동했어요. 봉사도 하고 여러 무대에도 많이 섰죠. 고등학교 때는 잘 놀고 친구들 사이에 인기도 많았었어요. 학생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댄스파티나 봉사활동, 동호회 행사는 다 제가 주최했었어요. 당시에 학교 신문도 최초로 만들었죠. 그 신문은 지금까지도 계속 발행되고 있어요. 동양아이가 캐나다 학교에서 막 활발하게 다니니까 엄마랑 할아버지가 맨날 싸돌아 다닌다고 뭐라고 하셨죠(웃음). 오히려 그 때가 지금보다 더 바빴을지도 몰라요. 특히 한인축제 무대에 섰던 기억이 나는데, 생각해보니 그 때가 제 (가수인생) 첫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거기서 캐스팅 됐거든요."
당시 오디션 '배틀신화'의 관계자에게 끼를 인정받아 캐스팅된 지나는 한국으로 가겠다고 가족들에게 선언한다. 그러나 지나는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집안에서 반대가 정말 심했어요.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한국으로 말하자면 예고같은 곳이었는데, 제가 거기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하고 있었거든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굳이 방송에 나가고 싶으면 앵커로 나가라고 하셨어요. '캐나다에 있는데 굳이 한국까지 가서 치열하고 무서운 사회에 나가 살아 남으려고 하는 게 말이 안된다. 수없이 트레이닝 받은 아이들과 분명히 비교될 거다'라고 절 만류하셨어요. 하지만 전 고집이 있어서 일단 해봐야 안다고 했죠."
결국 지나는 오디션 준비를 하면서도 학교성적을 절대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고, 좋은 성적을 거둬 여름방학에만 한국에 나가 있기로 한다. 하지만 지나는 그 후 2년 동안 캐나다로 돌아가지 않았다.

◆지나의 위기…"지나, 연이은 데뷔 실패로 좌절하다"
지나는 '배틀신화' 오디션이 끝난 후 굿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 오소녀로 데뷔를 준비한다. 케이블에서 고정으로 방송되던 다큐프로그램까지 출연하며 얼굴을 알리던 지나와 오소녀 멤버들은 갑작스러운 회사의 부도로 갈 길을 잃게 된다.
"계속 안 좋은 결과만 보여드려서 엄마가 한국으로 오셨어요. 그런데 저희가 곧 데뷔한다고 해서 엄마는 마음의 안정을 찾고 다시 캐나다로 가셨는데 그 때 회사가 부도가 났어요. 이런 상황이라고 말씀 드리면 캐나다로 다시 오라고 하실까봐 얘기도 못했어요. 지금 시크릿의 리더인 효성이가 그 땐 그룹의 막내였거든요.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되겠다는 생각에 전화영어도 하고 학원도 나가면서 되는 대로 돈을 벌었어요. 숙소 관리비도 제가 다 낼 정도로 어려운 시간들이었죠."
닥치는 대로 돈을 벌던 지나는 엎친데덮친 격으로 성대에 혹이 생겨 수술까지 받게 된다. 가수 데뷔가 또 좌절된 것을 안 지나의 어머니가 다시 한국으로 왔고, 지나는 어머니와 함께 캐나다로 돌아가게 됐다.
"불과 3개월만에 다시 돌아왔어요(웃음). 지금은 오소녀 멤버들이 다 잘돼서 정말 좋아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속에서 데뷔하는 많은 사람들이 겪는 수많은 일들을 저는 한 번에 겪었어요. 좌절도 하고 힘들었죠. 사랑도 해보고 이별도 하고, 친구들하고 이별도 하고 거절도 당했죠. 너무 힘들었던 일들이 많았지만 오히려 그런 일들 때문에 지금의 지나가 있다고 생각해요."
항상 웃기만 할 것 같은 지나는 과거의 이야기를 속사포처럼 뱉어낸다. 하지만 눈물뿐인 아프고 힘든 이야기를 하면서도 지나는 웃고 있다. 과거의 힘든 일들은 지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준 더 큰 힘이 됐기 때문이다.
"엄마가 '너는 쉬운 팔자가 아니다'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 땐 엄마한테 '왜 그렇게 말해'라고 짜증도 냈죠. 하지만 사실 맞는 말 같아요. 항상 제게는 쉽게 주어진 일이 없었거든요. 늘 혼자였으니까 누구한테 기댈 곳이 없었어요. 대신 마음의 준비가 됐죠. 10가지가 안 좋으면 그 중에 조금이라도 제게 좋은 일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어려움 속에서 긍정을 배운 지나는 밝고 씩씩하다. 지나는 "사실 무대 위에서만 잘하면 된다, 무대 위에서만 예뻐보이면 된다, 이런 얘기들은 다 말은 쉽다"며 "이 냉정한 세계에서 그 외에 더 안좋은 일은 어떻게 견뎌야 하나, 이런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일들 때문에 제가 아직 조금 부족해도 이런 과정들을 알아주는 분들이 많이 생긴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어려웠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지는 않아요. 이 일들이 창피하기만 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겠죠? 아주 예전부터 저를 아셨던 분들이 아직도 응원을 많이 해주고 계세요. 제가 항상 화려해 보이고 환하게 웃고 있지만 아직도 눈물이 난다고 하세요. 어려운 일들 때문에 이 친구들과 인간적인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돼서 정말 좋아요."

◆지나의 절정…"지나, 두려움 없이 오늘에 최선을 다하다"
'꺼져줄게 잘 살아', '블랙 앤 화이트(Black&White)'에 이어 '탑 걸'로 돌아온 지나는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지나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생각이다.
"사람은 실수를 해봐야 잘 아는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너는 실패나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물어보세요.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실수나 실패를 하는 건 당연한 것 같아요. 두려워해서 좋을 것도 없고, 한 번쯤은 다쳐봐야지 정상에 올라가서 정상에 대한 의미를 확실히 알 거라고 생각해요. 항상 '지나야 잘했어, 네가 최고야' 이런 얘기 들으면 제 자신이 부족한 걸 찾을 여유도 없을 거에요. 늘 제가 최고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실수도 해보면서 거칠게 갔던 사람과 늘 안전한 길만 갔던 사람은 언젠가는 무대 위에서 확연히 차이가 날 거라고 생각해요."
'탑 걸'은 가사 전체를 11번이나 수정한 끝에 탄생한 곡이다. 지나가 직접 쓴 가사도 계속 안된다는 딱지만 붙었다. 결국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한 여자를 노래한 가사로 완성된 '탑 걸'. 그러나 지나는 "가사가 어색하고 싫었다"며 "나는 이렇지 못한데 왜 거짓말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가사 때문에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고 회상했다.
엔지니어도 고개를 저을 정도로 호된 수백 번의 녹음 끝에 완성된 '탑 걸'은 지나에게도 의미가 남다르다.
"휘성 선배님의 도움을 받아서 녹음실에서 수정을 미친 듯이 했어요(웃음). 제가 이걸 제대로 부를 수 있는 단계가 되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거라고 저를 격려해주셨죠. '탑 걸'은 사실 내가 잘 나가는 여자라는 걸 얘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최고가 될거야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은 노래에요. 무대 위에서 부르면서 점점 느껴가고 있고, 저도 그렇게 돼가는 것 같아요. 제일 처음에 노래를 듣고 '가사가 이게 뭐야'라고 구박했던 친구가 어느 날 전화를 했어요. 남자친구랑 이별을 하고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우연히 나온 '탑 걸'을 듣고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더래요. 그 때 처음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용기가 났죠. 저도 항상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탑 걸이 되자는 주문을 외워요."

◆지나의 결말…"지나, 한계를 넘다"
지나의 스마트폰 속에는 지나가 보낸 지난 시간들이 빼곡히 저장돼 있다. 밤 12시, 새벽 3시, 오전 6시, 시간을 가리지 않고 녹음실에서 연습하고 녹음한 곡들이 지나의 노력을 보여준다.
"저는 아이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 일단 나이가 많잖아요(웃음). 저는 아이돌이랑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과 싸우기 위해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제가 가수라면 그냥 예쁘기만한 아이돌은 아니구나라는 말은 아니더라도 일단 나이는 좀 더 있구나 그런 말이라도 나와야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방송에 나가면 노래가 아니라 늘 춤이나 몸매를 부각시키는 섹시댄스, 모델 워킹 이런 거를 하게 돼요. 처음에는 '난 노래가 좋은데 왜 노래를 안 시켜주지?' 이런 생각도 했었어요."
가수로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때 지나의 말에는 쉼표가 없다.
"많은 분들이 '지나는 음악을 알아달라, 들어달라고 하는데 왜 몸은 드러내지?'라고도 하세요. 하지만 음악과 제 몸매를 드러내는 것은 별개라고 생각해요. 예쁜 몸매는 직업적으로 또 여자로서 굉장히 큰 매력이고 강점이잖아요. 제가 열심히 만든 것을 보여주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물론 '항상 몸매를 드러내지는 않아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을 때도 있죠. 청바지 모델을 할 때는 '여러분도 할 수 있어요. 여러분도 입으면 예뻐요'라는 마음으로 하는 거고, 다른 광고할 때도 마찬가지거든요. 한때는 조금 아팠지만 지금은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광고모델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음악과 광고모델은 별개라고 믿어요. 음악 때문에 이런 일도 하게 된 거고, 그런 일들로 나중에는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거든요."
TV 속에서 바비인형처럼 웃고 있는 지나를 생각했다면 지금부터는 잊어도 좋다. 지나는 자신이 놓인 위치와 자신의 갈 길을 너무나도 잘 아는 현명한 아티스트였다. 트렌드 아이콘 그리고 아티스트 둘 다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쟁이 지나는 "음악으로 모든 것을 시작했고 음악으로 모든 걸 끝냈다. 항상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정리한다.
"25년 동안 살아오면서 의도치 않았지만 항상 제 인생엔 배경음악이 있었어요. '탑 걸'도 마찬가지에요. '부족해도 괜찮다, 당당해도 좋다'라는 메시지를 담은 저를 위한, 또 여러분들을 위한 응원곡이에요. 앞으로 조금 더 노력하는 모습, 계속 변하고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저는 많은 분들께 제 자신을 숨길 생각은 절대 없어요."
이제 결말이다. 그런데 벌써 지나의 인생을 결말지어도 되는 걸까? 그는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는데. 그냥 지나의 '시즌1'이라고 생각하자.
"음악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것을 아직 딱 짚을 수는 없어요. 제 자신이 어디 서 있는지를 알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제 숙제 같거든요. 아마 미래에도 계속 음악은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디바도 되고 싶고 아이콘도 되고 싶어요. 딱 디바와 아이콘 그 사이에 서고 싶죠. 여성분들에게는 닮고 싶은, 알고 지내고 싶은, 또 친해지고 싶은 여자로, 남성분들에게는 옆집 동생, 옆집 누나처럼 친근하지만 무대 위에서는 누구보다 멋진 그런 가수가 되고 싶어요. 제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는지, 또 얼마나 열정이 넘치는지 아직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 분들께 지나를 더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겠죠? 앞으로도 피나는 노력으로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 꾸준히 보여드리는 지나가 될게요. 지켜봐주세요."
조이뉴스24 /장진리기자 mari@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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