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리미노이드(232회) …제8장 메시아의 눈물 (33)


 

호치의 고향인 한단 제국에서는 더러 초보적인 이에스피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주 오래 전, 공룡과 함께 살던 시절의 한단의 조상들은 육신의 힘과는 별도로 넋을 움직여서 가공할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죽은 자도 살린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고 후세의 사람들이 그것을 이에스피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나 점차 과학과 기계문명에 의존하는 삶을 살게 되면서부터 이에스피는 급속히 퇴화되기 시작했고, 이에스피는 전설로만 남게 된 것이었다. 이에스피가 온전하게 유지된 유일한 혈통은 타알 가문이었다. 그 이외에는 기와 혈의 작용을 이용한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후천적인 이에스피를 연마한 사람들이 전부였다. 그런데 아미타가 굉장한 이에스피를 쓰고 있는 것이었다. 인조인간 우머노이드의 자식인 아미타가.

“아, 포소르 아저씨…”

호치는 누워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허페부르크 혁명군 시절에 죽은 동지들의 장례를 도맡아 처리하던 말더듬이 아저씨 포소르가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포소르라는 이름을 부르고 나니 만감이 교차했다. 포소르 때문에 결국 이곳 프리즌 행성까지 끌려오게 된 것이 아닌가. 벌써 십 년이 훌쩍 넘은 일이었다.

“내, 내, 내 말을 들어봐. 나, 나, 난 지금까지 사람을 따, 따, 땅에 묻는 일만 해왔어. 그, 그, 그런 내가 생명을 구한 거야… 정말 시, 시, 신기한 일이잖아…?”

그때 말더듬이 포소르는 인조인간이 갓 낳은 아기를 하나 주워왔다며 기뻐했다. 지능이 낮은 포소르는 방금 전에 호치의 아기가 죽었다는 것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차라리 이 아기를 키워보라고 불쑥 건네 준 것이었다. 호치는 부들부들 떨었다. 아내가 병원에 가지 못해 제 새끼가 죽게 되었을 때에는 혁명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네사루 네트워크에 항복하고 싶었다. 포소르가 내미는 인조인간의 아기를 볼 때는 환장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그때 네사루 네트워크 경찰당국은 우머노이드가 낳은 아기를 특별단속하며 모조리 수거하여 폐기 처분하라는 지시를 내린 상태였고, 경찰관 몇몇이 호치의 아지트까지 수색해 들어왔었다. 그때 그냥 내주었더라면, 호치와 아미타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었다. 호치는 물론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서 아미타를 내주려고 했었다. 그런데 호치의 아내 카릴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자궁을 드러내 보이며 내가 낳은 아들이라고 울부짖었던 것이었다. 결국 경찰의 추궁을 견디지 못한 젊은 청년 대원이 경찰을 쏘아 죽였고, 그 바람에 아지트가 발각이 나고 경찰을 피해 도망 다니다가 부랑자 취급을 받아 한 순간에 이곳 프리즌 행성에 뿌려지게 된 것이었다.

호치는 아미타의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지금까지 호치 자신은 아미타에 대해 한 번도 아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건만, 아미타는 끝내 호치를 제 친아버지로 믿고 살아온 것이었다. 호치는 처음으로 아미타의 뺨을 어루만지며 내 아들 메시아, 하고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러자 문득 그가 진짜 우리 인류의 메시아가 될 것 같은 마음에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이 아미타의 콧잔등에 떨어지자 호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다음 날부터 시작된 하늘 정원의 피라미드 신전 작업은 사흘만에 쉽게 끝났다. 상단의 틀어진 부분을 헐어내고 다시 바르게 세워 쌓으면 되는 일이었으므로 정확한 측량과 설계도면이 없이도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더욱이 아미타의 능력에 탄복한 서쪽마을 주민들이 앞 다투어 신전 쌓는 일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작업은 더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새로 개축된 신전 위에서 샤만리스또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죽은 자의 넋을 안전하게 하늘로 올려보내는 장례 의식은 서쪽 마을 사람들이 모두 참여한 가운데 엄숙하게 치러졌다. 마을 주민들은 일손을 놓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집에서 손수 만든 조화를 들고 올라가 샤만리스또의 시신 위에 올리고 내려왔다. 조화는 무화과나무의 뿌리를 소금물에 절여서 달빛 그늘에 말린 것이었다. 그 조화에 데나리 동전을 하나씩 매달았다. 저승 갈 때에 필요한 노잣돈이었다.

호치 일행도 샤만리스또의 시신 위에 무화과나무 뿌리를 올리고 손가락 마디마다 노잣돈을 올려놓았다. 아미타가 제단에 올라갔을 때에는 며칠 새에 더 쪼그라든 노파 샤마넬라가 몹시 서럽게 울었다. 그 바람에 잠시 눈물바다가 되었다.

그런데 장례절차가 다 끝난 뒤에도 그들은 엄숙하게 누군가를 기다렸다. 갈 길이 바쁜 호치가 슬그머니 옆에 서 있던 지킴이 청년에게 물었다.

“서쪽 마을에서는 바로 화장하지 않나요?”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무엇을?”

/이대영 중앙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animorn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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