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낯뜨거운 '녹취 대선'… 막장극이 따로 없다


잇단 폭로전에 사생결단식 與野공방… 피로감 가중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부인 김건희씨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허위 학·경력 의혹과 관련해서 대국민 사과를 마치고 당사를 나서고 있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

[아이뉴스24 정호영 기자] 요즘 JTBC 드라마 '설강화'를 흥미롭게 보고 있다. 남파 공작원과 안기부장 딸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인데, "어… 이건 아닌데" "이게 말이 되나" 싶으면서도 뒷이야기가 궁금해 습관적으로 보게 된다.

예컨대 극 중 여대 기숙사에서 총탄이 난무하는 인질극이 벌어지는데 둘은 애정관계로 발전한다. 자신들 때문에 사생 전원이 생사의 기로에 섰는데도 말이다. 그 밖에도 여당 사무총장의 불륜, 그 상대는 경력 17년차 간첩. 처녀 13명을 제물로 바치면 남편이 대권을 쥘 것이라 믿는 안기부장 아내 등 자극적 소재도 수두룩하다.

볼 땐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는데, 어김없이 '닥본사(닥치고 본방 사수)'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이른바 '막장극'의 묘미다.

하지만 이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진짜 막장극은 정작 50일도 채 남지 않은 현실 대선판에서 펼쳐지는 듯하다.

최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부인 김건희씨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둘러싼 양당의 '녹취 공방'이 정국을 집어삼켰다. 시점도 절묘하다. 마치 대선 주도권을 얻기 위한 필살기라도 되는 양 선거 목전 벼락같이 등장해 온 국민의 말초신경을 자극했다.

논란이 된 녹음 파일은 가깝게는 지난해, 멀게는 10년 전 통화 내용이 바탕이다.

우선 MBC '스트레이트'는 지난 16일 김씨가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 촬영기사 이모씨와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약 50차례 통화한 내용을 일부 보도했다. 사적 영역의 가십성 대화에 그쳤다는 평가도 있지만, "미투는 돈을 안 챙겨주니 터진다", "(캠프에 오면) 1억도 줄 수 있다" 등 대선후보 아내로서 부적절한 발언이 전파를 탔다. 허위 이력 의혹에 휘말려 지난해 말 대국민 사과를 한 여운이 채 사그라들기도 전에 부적절한 처신으로 또 구설에 오른 셈이 됐다.

'굿바이 이재명' 저자 장영하 변호사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전날 공개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욕설 파일과 관련해 추가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사진=김성진 기자]

다음 타자는 이 후보였다. 국민의힘 이재명국민검증특위 소속 장영하 변호사는 18일 국회에서 이 후보 육성이 담긴 녹음 파일 34개를 공개했다. 사실상 김씨 녹취록 공개에 대한 맞불 성격이다. 녹음 시점은 2012년 전후로, 내용 자체는 상당했다. 이 후보의 친형·형수에 대한 폭언, 대장동 의혹 핵심관계자로 이 후보가 줄곧 측근설을 부인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관련 내용 등이 담겼다.

일련의 녹취 폭로전을 대하는 정치권의 모습도 낯뜨거웠다. MBC 방송을 앞두고 민주당 일각에서는 "본방사수해야 할 방송", "8시 19분부터 본방 대기" 등 소위 '팝콘을 튀기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지난해 2월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김명수 대법원장과의 녹취록을 공개했을 때 민주당이 "비도덕 행위"라고 비판한 것과도 사뭇 다른 풍경.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일방 당사자가 타방 당사자 동의없이 녹음하는 건 민사불법"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 전 장관은 김씨의 녹취를 놓고는 "원본을 들으니 기가 막히고 섬찟하다"고 평가했다.

오는 23일 MBC의 김씨 녹취 관련 2차 방송이 예정된 만큼, 여야 공방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법적 공방도 예정된 수순이다. 이미 민주당은 장 변호사를 후보자 비방죄로, 국민의힘도 이씨를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각각 검찰에 고발했다.

뭐든 하나만 걸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결기(?)도 돋보인다. 민주당이 "국민의힘 선대위 소속 장 변호사를 고발하겠다"고 알리자 국민의힘은 "허위사실 유포"라며 바로잡지 않으면 고발하겠다고 경고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특위 소속'이라고 정정했다. 사실관계를 틀린 민주당 잘못이지만 현 여야 관계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여론 관심이 집중된 양당의 사생결단식 네거티브 공방이 거듭될수록 대선후보들의 국정 청사진이나 공약은 희석되기 마련이다. 막장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자극적이고 혼탁한 대선판 속에서 어찌됐든 대한민국호(號) 선장을 선택해야 하는 유권자의 피로도만 높아간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오명에 걸맞는 흐름인 듯해 안타깝다.

/정호영 기자(sunris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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