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사기꾼들-5] 여심 농락한 황당 사기극


 

2004년 5월 경남 함안군. 5월의 햇살 아래 하루가 무섭게 잡초가 번지고 있는 고추밭을 매느라 고된 하루를 보낸 임순례씨(56세)는 이른 저녁부터 꾸덕꾸덕 졸며 TV를 보다, 서울에서 유학중인 대학생 아들에게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소주를 한 사발 들이켰다. 술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아들의 이야기를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들이 울먹이며 어렵사리 꺼낸 이야기......

얼마 전부터 몸에 이상을 느꼈던 아들은 병원을 찾았는데, 놀랍게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해 발기부전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다 한다. 현대의학으로는 도저히 고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황망한 마음에 용한 무당을 찾았는데, 무당이 자신의 집도 아래 엄마와 관계를 하면 나아질 수 있다고 했다 한다. 지금 그 무당과 함께 마산 완월동 W여관에 와 있는데, 돈 30만원을 들고 나오라고 한다.

남편을 잃고 혼자 살며 고된 농사일 속에서도 장한 아들 하나 바라보고 살아왔던 순례. 체면이고 수치심이고 문제가 안 되었다. 자식의 불치병을 고치는 것이 우선이었다. 베개닢 속, 버선발 안, 이불 섶 속에 꼬깃꼬깃 쑤셔 넣은 만원짜리 지폐 30장을 올올이 맞추어 허리춤에 차고 일어섰다. 아들부터 살리고 보자는 생각외엔 아무 생각이 없었다.

W여관 201호실. 아들이 시키는 대로 30만원을 침대 옆 선반위에 정성껏 놓고, 손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침대에 누웠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아들이 들어오고, 그리고......순례는 아들이 신신당부한대로 아들에게 말을 걸지도 않고, 얼굴을 보려고도 않고 조용히 대사를 치렀다.

집으로 돌아와 정신을 차려 보니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순례. 망설이고 망설이다 서울 아들의 하숙집으로 전화를 해 보았다. 그런데, 그 시간에 아들은 서울에 있었다. 순례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걸 느끼며 그냥 기절할 도리 밖에 없었다.

그랬다. 아들이 아니었다. 아들인 줄 알았던 그 사람은 2년 전에도 동일한 수법으로 사기극을 벌이다 복역한 적이 있는 김선인(39세)이었다. 선인은 아무 전화번호나 눌러 남자가 받으면 끊어버리고, 여자가 받으면 상대여성의 나이에 따라 아들, 애인, 동생, 남편 심지어 조카라고 하며 여성들을 속였다.

전화 수화기를 들고 "저예요.", "나야"를 몇 번 반복하면 순진한 여자들이 이내 스스로 입을 열었고, 여자들의 스토리에 따라 그 사람 행세를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여느 사기꾼이 그러하듯, 선인도 언변이 교묘하고 능수능란할 뿐 아니라 임기응변도 강했다. 선인이 급박한 상황을 꾸며 피해자들이 정상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면 누구라도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성적인 문제가 있다", "액땜을 해야 한다"는 선인의 유인에, 순박한 이 여인네들은 곧 인정을 발휘하여 돈과 정조를 바쳤다.

이렇게 마련한 돈이 넉달새 700만원. 얼굴도 모르고 별다른 증거도 없어 영원히 꼬리가 잡히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선인은 여대생 차보림(20세)을 상대로 군대 간 남자친구 행세하다 그만 그 행각이 들통나고 말았다. 보림의 외모에 반한 선인은 천신만고 끝에 보림의 전화번호를 기억해 내 재차 만날 것을 요구하다, 보림의 신고로 나타난 경찰에 덜미가 잡힌 것이다. 선인의 행각이 신문과 방송에 보도되자, 인근 지역 피해 여성들이 "얼굴이나 한 번 보자!"며 경찰서로 들이닥쳤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중에는 70대 할머니도 있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세상에서 제일 악질적인 사기가 순박하고 갸륵한 여심을 농락하는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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