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사기꾼들-15] 드라마에선 조연배우, 현실 사기극에선 주연배우


 

80년대 후반 아역탤런트로 명성을 날리던 전은호(38세). 아역 출신 탤런트는 성인배우로 성공하기 힘들다는 흔한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주목받던 어린시절과는 달리, 성인이 되어서는 가끔 조연으로 출연하는 것 외에 이렇다 할 출연작이 없다. 그나마 조연으로 들어오는 섭외도 나이가 드니 드문드문 하였다. 나이가 있는 조연은 튀지 않아야 하는데, 어려 보이는데다 아역 때의 앳된 인상이 남아 있어 더 이상 연기생활에서는 기대할 것이 없었다.

연기 수입으론 더 이상 생활을 감당할 수 없었던 은호는 호구지책으로 관광 리조트의 통역 일을 병행하였다. 민간인으로서는 잘 생긴 외모, 세련된 말솜씨와 영어능력이 있었던 은호는 리조트에서는 제법 일을 잘 하였다.

이렇듯 틈틈이 연기하고 또 통역 일까지 병행하며 열심히 살았지만 은호는 항상 빚 독촉에 시달렸다. 어린시절부터 방송국을 드나들며 몸에 밴 헤픈 씀씀이와 언젠가는 뜰 것이라는 기대로 돈을 많이 당겨썼기 때문이다. 돈은 제법 벌었지만 빚 갚고 나면 끝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빚꼬리에 꼬리를 무는 빚 아무리 갚아도 줄어들 줄 모르는 원금......

은호는 지긋지긋한 빚으로부터 탈출하는 방법은 딱 한 가지 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한 탕만 하고 나르자!'

은호는 리조트 통역원으로 일하면서 태국의 유명한 투자회사 CITRUS의 사장 칸츠마와 개인적으로 서신을 나누고 있다. 사적인 심부름 때문인데, 이를 이용하여 사기를 치기로 하였다. 먼저, CITRUS의 한국 지사장이라는 그럴듯한 명함을 파서, 탤런트로서 잘 알려진 안면과 CITRUS 칸츠마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유기농 천연 화장품 사업을 준비 중인 사업자 이국환(43세)에게 접근하였다.

좋은 상품을 개발해 놓고도 투자자가 없어 애를 태우던 국환은 CITRUS에서 한국에 투자처를 찾고 있다는 은호의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뻤다. 얼굴이 잘 알려진 탤런트인데다 CITRUS 사장과 수시로 이메일을 나누는 은호를 의심하기는 힘들었다. 100억 투자유치에 브로커피(Broker Fee)는 5%, 투자유치신청비용과 업무추진비로 절반만 선불로 주고 나머지는 유치되고 난 뒤 달라는 것도 업계 관행을 볼 때 적절한 것이었다. 국환은 2억5천을 마련해 은호에게 지급하였다.

자신이 처음으로 주연한 첫 사기극에서 대성공을 거두자 은호는 점점 대담하게 행동했다. 강남의 잘나가는 빌딩에 'CITRUS 한국지부'라는 간판을 내 걸고 사무실까지 차린 뒤, '강원도 정동진 리조트' 사업에 강원도와 협의가 되었다며 위조문서를 내걸고 투자자를 모집해 10억이 넘는 돈을 편취했으며, '산양유 베이스 아이스크림'을 출시하려는 某벤처기업에도 CITRUS 투자를 장담한 뒤 착수금 3억을 받기도 하였다. 이런 식으로 편취한 돈이 1년 동안 30억이 넘었다.

피해자들은 탤런트로 얼굴이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인데다, CITRUS 사장의 친서를 갖고 있어 은호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게다가 은호는 아는 사람이나 알아보는 점잖은 명품 액세서리로 코디한 세련된 옷차림, 잘 나가는 사람들에게서 자연스럽게 풍겨나는 여유롭고 안정적인 풍모를 완벽히 연기하여 어떤 피해자들은 먼저 호감을 갖고 접근해 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은호의 사기행각은 거기까지였다. 박수칠 때 떠나야 하는데, 괜히 어설프게 커튼콜을 하다 덜미가 잡힌 것이다.

CITRUS의 확실한 투자를 장담하고도 일이 진척되지 않자 국환은 은호에게 없었던 일로 하자며 착수금 2억5천만원을 돌려 달라 하였다. '이제 사라질 때가 된 건가' 생각한 은호는 남은 돈과 사무실 보증금을 들고 튀려고 하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귀찮게 구는 국환에게서 예전의 지긋지긋한 빚쟁이를 연상하고, 다른 건 몰라도 국환은 혼내주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환을 조용히 불러 자기를 건드리면 자기가 알고 있는 정치권, 조직권(?) 실세들이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은근히 협박하면서, '일을 진행하느라 돈을 다 써서 돌려 줄 돈이 없다. 계약금은 원래 해약하면 포기해야 하는 것'이라고 일갈하며 그 동안 빚쟁이들에게 당한 분풀이를 하였다. 심하게 모욕을 느낀 국환은 이판사판으로 은호를 경찰에 신고하였고, 전은호 주연 사기극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조폭 연기는 많이 부족한가 보다'고 후회를 했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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