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욱의 바이오세상]멜라민-우유그릇 재료가 우유로 둔갑


미국에서 태어난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의 대표적인 시의 하나인 ‘황무지’에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하지만 그가 요즈음 한국에서 살았더라면 아마 2008년 9월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하였으리라 싶다.

우리나라는 지난 9월부터 동시 상영 중인 두 편의 공포영화를 매일 보고 있는 느낌인데, 하나는 미국 월가에서 시작된 금융위기이고 또 하나는 중국발 멜라민 사태라 하겠다. 장르가 전혀 다른 두 편의 영화가 우리를 공포로 떨게 하는 이유는 아마 일련의 사태들이 끝나더라도 다른 유사한 사태가 또 일어날 수 있다라는 불확실성과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의식주가 자유롭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감이 아닌가 싶다.

멜라민 사태, 우유 물타기 작전으로 시작된 '글로벌' 먹거리 사고

이번 중국의 멜라민 사태가 일어나게 된 배경은 이렇다. 지금은 엄격한 품질관리로 그런 일이 없지만 한 때 우리나라의 영세 낙농업자도 납품하는 우유의 양이 많아지도록 물을 섞는 일이 간혹 있곤 하였는데 실제 중국에서는 규모가 큰 목장주들이 의도적으로 우유에 물을 타 납품을 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보통 유제품 회사로 납품된 우유는 신선도 등 여러 가지 항목의 검사를 받게 되는데 가장 기본적으로 거치는 시험항목이 우유 속 총단백질량 분석시험이다. 우유 속의 총단백질량의 기본 수치는 어느 젖소에서 짠 우유라도 거의 일정하기 때문에 우유의 품질을 가늠하는 중요한 수치로 여겨지고 있다. 납품된 우유로부터 현격하게 낮은 수치가 나오면 물을 탄 우유라고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유 속 총단백질량의 분석은 지난 50년간 변함없이 가장 간편한 질소분석법이라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질소가 단백질을 구성하는 성분 중의 하나이고 지방이나 탄수화물의 구성성분이 아니라는 점에서 질소분석법을 통하여 우유 속 질소의 양만을 측정, 역으로 우유 속 단백질의 양을 추정하게 된다. 이러한 기본 검사법의 원리를 파악하고 있는 중국의 악덕 낙농업자들은 우유에 물을 타고 이 사실을 속이기 위하여 물을 탄 만큼 질소원도 보충하여 주었는데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흔하고 값싼 질소원이 바로 멜라민이었던 것이다.

물 탄 우유 속의 멜라민이 질소분석법에 반응하여 수치가 올라가게 되면 그 우유는 물을 타지 않은 좋은 우유로 무사히 검사를 통과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멜라민 사태가 심각한 이유는 이러한 우유를 가지고 수많은 가공식품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낙농업의 발달과 물 탄 우유의 공급 등으로 매일 전세계적으로 생산되는 우유의 양은 늘어 났지만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모든 나라 사람들이 예전보다 우유를 덜 마시다 보니 유통기한이 짧은 우유를 가공하여 유통기한이 긴 가공식품을 생산해야만 관련 업계로선 경제성이 있게 됐다. 이 때문에 멜라민이 모든 유제품과 우유를 원료로 하는 과자 속에 비교적 높은 농도로 퍼져 나가게 된 것이다.

이번 멜라민 사태로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고 진앙지인 중국 역시 사태수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모유대신 멜라민 분유를 먹고 신장 결석이 생긴 유아들이 사망한 당사국 중국이 가장 큰 시련을 겪고 있겠지만 지난해 중국에서 생산된 멜라민이 함유된 애완동물용 사료가 전세계로 수출되어 미국의 개와 고양이가 신부전으로 사망하는 건이 발생하였을 때에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정부가 서둘러 덮어버리는 바람에 이번 멜라민 사태가 오고야 말았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울 듯싶다.

멜라민, 원래 식기 등 합성수지 제조용 화학물질

화학적으로 멜라민(melamine)이란 공업용 화학물질로 요소를 가열하여 쉽게 만들어지는 물질인데 대부분 공업적으로만 사용되고 있으며 주로 합성수지를 만들 때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멜라민은 포름알데하이드와 반응하여 메티롤멜라민이라는 물질로 바뀌게 되며 열과 충격에 강한 멜라민수지의 원료가 된다. 만능식기로 알려져 한때 ‘부엌의 혁명’이라고 불리었던 멜라민 식기가 바로 멜라민 수지로 만들어진 것이며 식기 이외에 기계부품, 기계조립용 접착제, 바닥타일, 산업디자인 재료, 건축 마감재 등 어느 분야에서든지 광범위하게 쓰이는 물질로 현대 산업에 없어서는 안될 소재라고 하겠다.

미국에서는 1958년경부터 질소원을 공급할 목적으로 소에게 멜라민을 사료첨가제로 사용한 적도 있지만 실제 소에게 질소원으로 효율성이 낮다라는 이유로 1970년대 중반에 사용을 금지한 바 있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멜라민을 카페인과 함께 인체에 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이 아니라고 분류를 하고 있으며 인체에 흡수된 멜라민은 24시간 내에 소변을 통하여 90% 이상 배설된다고 하므로 극미량의 경우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하겠다.

또 멜라민은 실험용 쥐에서 경구투여에 의한 반수 치사량 (LD 50)이 1-3g으로, 멜라민 자체의 독성중독은 비교적 낮은 편이지만, 멜라민과 멜라민 합성시 생성되는 부산물인 시아눌산이 요(尿) 중에서 반응하여 생성되는 결정인 멜라민시아눌레이트가 우리 몸 속에서 신부전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아무튼 중국을 진앙지로 발생하는 일련의 먹거리 파장으로 온 국민이 불안한 가운데 이를 책임지고 있는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대한 비난이 연일 뜨겁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바이오산업을 대표하고 전체산업규모가 약 40조원에 이르는 4대 산업분야인 식품, 의약품, 화장품, 의료기기 산업을 직접 책임지고 있는 식약청의 경우, 전체 일년 예산은 정부 전체 예산사업 규모의 0.1%에도 못 미치는 1천500억 원 정도에 불과한데 이 정도의 예산과 제한된 인력으로 우리나라의 식품, 의약품, 화장품, 의료기기 산업의 안전관리를 모두 책임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여 보인다. 해마다 예산을 늘리고 관리감독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관련업계의 자율적인 안전관리가 시급한 시점이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연에 사태를 방지하고 사태가 이렇게 커질 때까지 신속한 대응을 못한 식약청만 비난할 것이 아니라 값싼 원료와 가격경쟁력만을 추구해온 관련업계와 정부 관계자가 모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우리의 먹거리를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할 것이다.

아무튼 몇 해전 굴비와 꽃게의 무게를 더 나가게 하기 위하여 중국의 업자들이 납덩이를 생선 뱃속에 넣는 사건이 있었는데 멜라민을 우유에 넣은 업자들과 비교하면 크게 다를 바 없지만 그나마 애교가 있었다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정성욱 인큐비아 대표(column_sungoo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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