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형 인터파크 CEO] (5) ‘벤처’를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직원들에게 경영 마인드를 고취시켜 조직활성화를 꾀하고, 새로운 사업기회를 역동적으로 포착하기 위해 사내외 벤처를 만들어 포도송이 경영을 하고자 하는 기업들에게 권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자금을 포함한 사업의 기초 리소스를 주고 나면 일정기간 완전한 독립경영을 하도록 하라는 얘기다. Start-up 컴퍼니가 일정궤도에 성공적으로 오르는 과정에서 핵심은 해당 벤처 사장의 능력이다. 그 사람이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사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느냐 못하느냐가 초기 성공의 요체인 것이다. 인사, 재무가 본사와 어정쩡하게 걸쳐있는 경우 벤처 제도를 도입 안 하느니만 못하다.

나는 사업을 수행하면서 데이콤의 소사장제를 진짜 작품으로 만드는 지난한 작업을 동시에 했어야 했다. 어찌보면 회사도 나도 새로운 경영기법을 어느 기업보다도 먼저 시도를 했기 때문에 치뤄야 할 대가였다.

소사장으로 선정된 후 나에게는 예산승인서류 한 벌이 전부였다. 하루종일 누구와 어떻게 사업을 시작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마음은 뛸 듯이 기뻤다. ‘이제 내 사업이 시작되는구나!’ 뭔가 운명적 냄새가 나는 외침이 마음속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아내와 포장마차에서 미래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설계하면서 다소 의기양양하게 큰소리쳤던 기억도 난다. 그러나 그 이후, 아내가 가졌던 가정생활에 대한 꿈은 여지없이 박살이 났다. ‘나는 당신이 사업할 것 같았으면 결혼 안했어!’라는 말이 행간의 의미를 충분히 밝혀줄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아내 이야기를 조금만 하고 지나가야겠다. 화곡동 어느 골목쯤인가에서 ‘너 내 마누라 될래?’하는 말에 소박한 꿈을 갖고 나에게 날아온 작은새였다. 모래내 20여평 방2칸짜리 전세, 그것도 대출받아 마이너스 상태에서 출발한 결혼생활이었다. 할머니 뻘 되는 시어머니의 옛날 얘기를 1년동안 매일같이 듣다보니 머리가 굉장히 단순해졌다고 한다.

아내가 매일 눈이 빠져라 기다리는 나는, 사업시작하고 6년째 한결같이 늦는다. 이 규칙(?)을 너무도 잘 지키고 있는데, 뭐든 수없이 반복을 하면 도 닦는 심정이 되나 보다. 가끔 한 10시쯤 들어가면 웬일이냐고 눈이 휘둥그레 진다. 이제는 잔소리도 안하는 아내는 어느 때 보면 거의 도인의 얼굴이다. 고마우면서도 그동안 눌러와서 푹 썩어 있을 아내의 소박한 꿈을 생각하면 하염없이 미안해진다. 그래도 지금 아내는 회사 사업의 반절 이상을 이해하는 선수가 되었고, 나도 방치하고 있는 내 건강을 챙기는 것을 보면 여전히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한다.

95년 당시 인터넷 쇼핑몰 사업은 많은 사람들에게 생경하고 별로 돈될 것 같지 않은, 한마디로 ‘그깟 것’으로 보였던 것 같다. 일단 회사 내부에서 동지를 얻기는 힘들었다. 친구들과 그간 알고 지냈던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부터 모아 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상점을 만들어야 하니 기술인력이 필요했다. 꿈은 엄청나게 커서 굉장히 많은 상품을 진열하고 팔아야 겠다고 생각하니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야겠다고 처음부터 계획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술의 시대흐름은 바야흐로 클라이언트-서버 프로그래밍에서 Web프로그래밍으로 넘어가는 시점이 아니었나 싶다. 초기에는 서버를 세팅하고 회선을 연결하여 홈페이지가 작동하게 하는 작업을 수행할 인력을 구하기가 ‘가뭄에 콩 나듯’ 힘들었다. 그놈의 Web-DB연동을 해 본 사람은 손꼽을 정도였고 파트타임으로 일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HTML을 다루고 디자인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사람도 하느님이었다. 혹시나 귀한 분들이 ‘삐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를 하면서, 그 분야에서는 무식하지만 한 번 해보겠다는 도전의식은 충만한 친구, 후배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아는 몇 명 모아서 빨리 따라잡으라고 종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건 마치 집집을 돌아다니면서 종교를 전도하는 것과 같았다. 지금은 웹프로그래머, 웹디자이너와 같은 용어로 정착이 되었고 학교에 해당 과목이 생겨나기도 하고 유망한 직업들이 되었는데, 그 때는 그렇게 될 거라고 아무리 강조하고 떠들어도 공감하는 사람은 별반 없었다. 그래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은 좁다고 했나?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앞으로 어떤 사업, 직종이 유망할 것인가? 대학에서 어떤 전공을 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에 답하는 과정은 결국 다가올 미래를 주도할 부문이 무엇인가?를 예측하는 행위인데, 세상에 큰 변화의 물결이 다가올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오히려 자기자리를 지키고자 노력한다는 점이다.

급류를 타기가 두려운 것이다. 그러다가 몇몇 먼저 몸을 던져 도원경에 도달한 사람들이 ‘여기 별천지가 있다’고 외치면 지켜보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뛰어든다. 아귀다툼이 벌어지고 각각의 손에 잡히는 것은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먹다남은 찌꺼기 뿐일 수도 있다.

낭떠러지가 있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먼저 들어가느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맞는 얘기다. 그런데 세상은 어차피 변화한다. 누군가 얘기했듯이 끊임없는 도전과 응전의 과정이다. 큰 기업들이 쇠퇴하는 것은 무리하게 일을 벌이다가 크게 손해를 보아서라기보다는 도전을 멈추고 주어진 시장에 안주할 때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흐름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계속적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곡선일 것이다. 안정은 단지 변곡점에서 순간적으로밖에는 존재할 수 없는 데 흐름을 타지 않고 그 불안한 점에 머무르려 하는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다.

나도 회사를 경영하면서 안정에 대한 유혹을 많이 받게 된다. 그러나 머리를 맑게 하고 생각해보면 사업를 그만두기 전까지는 ‘안정’이란 절대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명확해진다. ‘불안정함을 당연시하고 오히려 역동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까?’ 계속 자각하고 체화시켜야 할 과제다.

‘눈치를 보다가 될 것 같으면 한꺼번에 뛰어들기’가 잘못됐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가 항상 그래왔으니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먼저 뛰어들면 천년 묵은 복숭아를 따먹는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내가 사업을 시작했던 때는 인터넷이 혁명적으로 경제, 사회, 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시기였으니 이런 현상이 생생히 목격되는 것은 당연했다.

어쨌든 나의 교리(?)에 동조하거나 전도에 넘어간 몇몇 사람들과 함께 사이트 구축에 들어갔다.

그 때 나를 핵심적으로 도와줬던 친구가 있었다. 조용필 노래를 한용필(?)이라는 유사가수로부터 사사를 받아 구성지게 잘 불렀던 ‘이일신’이란 친구다. 술자리에서 인기도 대단했고, 선(禪)에 대해서 해박하고 얘기 하기를 좋아해서 별명이 ‘봉천거사’였다. 미래를 그리는 감각이 뛰어난 친구였는데, 내가 데이콤을 알게 된 것도 그 친구 때문이었다. 인터파크 쇼핑몰의 초기 기술기획은 거의 이 친구 머리에서 다 나왔다.

그 외에도 지금은 창업컨설팅으로 유명한 분인데 나의 라디오 인터뷰를 듣고 그 날로 찾아와 멀쩡히 다니던 대기업에서 처사위를 끌어내다 합류시켜 준 분도 있다. 초기 영업은 이 친구가 맡았다.

기술실무는 ‘봉천거사’와 함께 대학내내 공을 즐겨 차던 후배가 코꿰어서 맡게 되었다. 나중에는 이네트 창업멤버가 된 이상훈 이사는 같이 일한 적인 있던 웹디자이너인 여동생의 소개로 합류하게 됐다.

당시 그는 대학졸업하고 취직도 안 하고, 매일같이 방에 쳐박혀 채팅을 즐기던 온라인 가객이었다. 그 친구는 네티즌의 요구사항을 잘 파악하고 잘 모르는 일도 뭐든지 달라붙어서 신속히 소화해 내는, 전투력과 순발력을 두루갖춘 재원이었다. 이렇게 해서 신사동 데이콤 무선데이타 기지국 한켠에 ‘공포의 외인구단’이 창설되었다.

지금은 롯데닷컴이 된 당시의 대홍기획 인터렉티브팀도 만만치 않은 만남이었다. 처음에는 같이 제휴해서 사업하는 그림을 그리다가 나중에는 서로 경쟁적으로 시장을 열어가는 선수들이 되었다. 마라톤에서 항상 마음을 다잡게 하고 고독한 승부가 되지 않게 하고, 잘 되면 기록을 달성하게 만드는 그런 상대말이다.

당시에 인터파크와 롯데는 인지도나 덩치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지금은 시장에서 경쟁자라고 얘기한다. 나는 당시에도 그렇게 될 거라고 믿었고 그렇게 얘기했다. 자기를 가두고 항상 그 정도로 머물게 하는 것은 자기로부터 나온 생각일 뿐이다. 그 생각을 깨치고 ‘까짓 것 한번 도전해보지’ 하면 벌써 목표가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죽어라 열심히 하면 마이크로소프트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벤처란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이 정도 성장하게 되는 과정에서 겪고 싶지 않은 고통도 많이 있었지만 내가 인터파크를 통해서 벤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전달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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