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희 소프트맥스 CEO] (1) "CEO는 책임감과 싸우는 자리"


 

CEO......

언제부터인가 '대표이사' 혹은 '사장'이라는 표현 보다는 'CEO'라는 단어에 우리는 익숙해지고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도 CEO를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잭 웰치를 비롯, 많은 성공 사례담이 넘쳐나고 있다. 또한 많은 CEO들이 잊혀져 가고 있다.

CEO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흔히들 4C(CHARACTERISTIC, CAPABILITY, CREDIT, CAPITAL)를 얘기하곤 한다. 하지만 CEO의 가치는 철저하게 그 기업의 결과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의 영속성을 생각해 볼 때 사실 'CEO스토리'라는 것을 지금 쓸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inews24 측의 간곡한 청에 밀려 CEO스토리를 집필하게 되는 것을 계기로 지난 8년여간을 되짚어 보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사회를 살아가면서 많은 책임이 주어진다. 우선 CEO로서 가장 큰 책임은 직원들과 고객, 그리고 투자자들에 대한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직원들...

지난 1993년 12월 30일 소프트맥스 사업자등록증을 받고 난 뒤로 줄곧 어깨를 짓누르는 것이 있었다. 나를 믿고 따라주는 직원들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직원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직원들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들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항상 나를 채찍질했다.

창업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게임산업은 미래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또한 게임 개발보다는 외국 게임을 유통하거나 일본 게임을 모방, 판매하는 블랙마켓이 성행 하고 있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그나마 개발자들이 판매를 위해 유통사를 접촉할 경우에도 상호 신뢰가 뒷받침되던 시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우스운 얘기지만, 창업 당시 명함을 내밀며 "게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입니다"라고 소개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반면, 요즈음은 반색하며 인정해주는 분위기다. 참 세상이 좋긴 하다.

이 좋은 세상을 만들기까지 8년 동안 게임 개발 이라는 힘든 작업을 해 온 소프트맥스의 개발자들이 큰 역할을 해냈다고 나는 감히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

사실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작업이다. 여러 가지 요인중에서도 게임에 대한 사회 전반의 부정적인 인식은 가장 힘들게 한 요인이었다. 번듯한 집안의 아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보장돼 있는 인생을 포기하고 게임이라는 것을 개발한다고 거의 집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을 어떤 부모가 이해할 수 있을까? 초창기에는 한 직원의 부모가 회사로 직접 찾아온 경우도 있었다. 굳이 그들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직원들에 대한 책임의식은 단순히 피고용자에 대한 고용자의 고용 유지라거나 복지 향상 이상의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게임 개발을 하는 직원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계속해서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창업 초기 일본에서 수입, 판매한 게임의 수익금을 자체 개발비로 투자하며 게임을 개발했다.

'창세기전'이 팔려 어느 정도 수익이 확보된 이후에는 직원들과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더 이상 일본에서 게임을 수입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게임 개발을 하는 사람들과는 대화하기가 참 힘들다. 더구나 나는 게임 개발에 직접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과 공통으로 나눌 수 있는 대화를 찾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게임을 마케팅하고 판매하여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그들과의 대화가 필수였다.

대부분의 창업 스토리에 나오는 얘기지만, 거의 매일 직원들과 대화하고, 함께 밥먹고, 옆에서 같이 졸면서 그렇게 8년을 보내온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개발자들은 창조의 고통과 싸우며 하얀 밤을 새우고 있다. 사회적인 지위나 금전적인 여유는 아랑곳없이...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다른 그 어떤 것은 함께 나눌 수 있지만 창조의 고통만은 함께 나눌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고객들...

소프트맥스는 올해로 5회 째 제작 발표회를 열어 왔다. 그 때마다 잊지 않고 우리 고객들에게 하는 얘기가 있다. '소프트맥스는 고객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회사입니다.' 상투적인 표현일 수도 있지만, 소프트맥스는 철저하게 고객에 의해 만들어지는 회사이다. 그것도 요즘 한창 얘기하는 1318세대가 주 고객 층이다.

청소년층이 대다수인 우리 고객들을 위해 소프트맥스는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게임은 개발하지 않는다.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고객들을 위해 첫 게임을 출시할 때부터 수익금을 쪼개서 고객엽서를 동봉하고, 반송된 고객엽서를 DB화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DB에 포함된 고객들에게는 매년 신제품이 나오기 전에 체험판을 발송,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고객들을 대상으로 모니터 요원제나 베타테스터제를 실시했다.

또한 고객들과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97년부터 제작발표회를 개최했다. 그 후 해마다 꼬박꼬박 치른 이 행사는 게임업계에 많은 기록을 남겼다.

소프트맥스의 고객층은 참으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그 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고객들을 위해 온라인상에 함께 연결하는 작업이 소프트맥스 온라인 커뮤니티인 '4LEAF'이다. 현재 4LEAF는 130만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4LEAF회원을 바탕으로 소프트맥스는 또 다른 사업인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 사업을 시작했다.

4LEAF은 소프트맥스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사업이라고 감히 말 할 수 있다.

4LEAF의 여러 가지 이벤트 중 매일 금요일 8시 '개발자와의 대화' 시간이 있다. 매번 1천명 이상이 신청하는 열기를 보며 나는 우리 고객들에게 뜨거운 감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소프트맥스의 게임들을 번들로 판매하지 않을 때는 회사를 경영하는 입장에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동안 고객에게 쏟은 정성이 전달되고, 고객들의 커뮤니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면서 신뢰의 밑거름을 쌓게 됐다는데 대해 후회는 없다.

우리는 오늘도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게임으로 고객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즐거워진다. 물론 고객들의 질타도 우려되지만, 그 모든 것이 서로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투자자들...

직원들과 하얀 밤을 새우며 커뮤니케이션하는 일, 그리고 소프트맥스의 고객들을 한사람한사람 늘려가며 관계를 형성하는 일에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투자자들에게는 그 만큼 하지 못했다는 것을 이 글을 통해 처음으로 인정한다.

직원들에게도 그랬었고, 고객들에게도 그랬듯이 언제나 함께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으로 본연의 일을 묵묵히 해 나가면 신뢰가 구축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점이 있었다. 우리 직원이나 고객들은 게임이라는 것을 기반으로 특화된 관계였지만 투자자들은 우리의 게임을 즐기는 고객이 아니라는 점이다.

결과로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인 관계, 즉 게임이라는 특수상황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기업으로서의 커뮤니케이션 창구를 마련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르다고 했던가? 과거 소프트맥스의 조직은 사실 게임 개발에 집중돼 있었다. 변화를 시도했다. 투자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하기 위해 경영지원실 조직을 확대하는 등 투자자들과 연결하는 창구를 강화하고 다변화했다. 게임을 만들고 게임을 홍보하는 일 못지 않게 투자자들에게도 회사를 알리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됐다.

우리 직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고객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투자자들도 소프트맥스를 믿고 함께 할 것이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소프트맥스는 8년간의 개발을 바탕으로 컨텐츠를 만들어 내는 회사이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시간 그 이상으로 투자자들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기업의 결과로 보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정영희 소프트맥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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