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의 NOW 평창]성적 지상주의여 이제는 안녕

최선 다하는 선수들 앞에 금메달 몇 개의 예상은 무의미했다


[조이뉴스24 이성필 기자] "괜찮습니다. 상대가 워낙 잘했어요."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습니다. 한국은 금메달 5개, 은메달 8개, 동메달 4개로 종합 7위를 기록했습니다. 당초 대한체육회가 목표로 제시했던 8-8-8-4(금-은-동-순위)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역대 최다 메달 수를 기록하며 동계스포츠 강국이라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조이뉴스24는 개막부터 폐막까지 대부분 현장을 지켰습니다. 주로 평창과 강릉을 오가는 일정이었는데 생각보다 꽤 버거운 일정이었습니다. 거리상으로는 40분이면 오갔지만 경기장별로 동선이 다르다 보니 처음에는 관중 못지않게 혼란을 겪었습니다. 이리 돌고 저리 돌다보면 '혼이 비정상'이 됩니다.

함께 취재했던 류한준 기자는 강릉에서 평창으로 이동할 때면 "고지대라 그런가 힘들다(?)"고 하더군요. 해발 700m에서 가장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며 'happy 700'을 내세운 평창에서 좋은 공기를 폐에 밀어 넣다 보니 그런 모양입니다.

김동현 기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습니다. 토비 도슨 프리스타일스키 대표팀 감독을 닮아 대한체육회 행사에서 한 임원으로부터 "아이고 토비 도슨 씨 "라는 인사(?)를 받았다고 하네요.

어쨌든 각자의 추억을 남긴 올림픽이 끝났습니다. 한 가지 큰 변화라면 선수들과 자원봉사자, 운영인력 등 수많은 올림픽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많이 들은 이야기가 "괜찮아 잘했어"입니다. 자신에 대한 위로이자 상대를 격려하는 중의적인 의미로 들렸습니다.

25일 강릉 센터에서 열린 여자 컬링 결승전에서는 스웨덴에 3-8로 완패했습니다. 연전연승을 거두며 '안경 선배', '영미야~' 등 다양한 화제 몰이를 했던 컬링이라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이 조금은 안타까웠습니다.

김민정 감독은 기자회견이 끝난 뒤 자원봉사자들에 가려져 사인 세례에 시달리고 있는 선수들을 보면서 그럽니다. "아, 더 할 수 있었는데 말이죠. 메달 색깔이 바뀔 수 있었는데. 금빛이면 좋았겠는데"라고요.

그렇지만, 이제 시작입니다. 컬링 대표팀은 만화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들입니다. 방과 후 클럽 활동으로 시작해 우여곡절을 겪으며 국가대표가 되고 올림픽에 나서 은메달을 목에 겁니다. 소위 '생활 체육', 그것도 취미형으로 하는 클럽 스포츠에서 나온 첫 메달이라는 점은 한국 체육사(史)에 상당한 의미입니다. 엘리트 스포츠만 메달을 딴다는 인식을 완벽하게 바꿔 준 것이죠.

김 감독은 부친이기도 한 김경두 의성컬링훈련원장 겸 경북컬링협회 부회장의 생각을 전하며 "컬링을 한국에 도입했던 김경두 교수의 목표가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에 부합하지 않았나 싶다.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김 감독의 철학이 부친의 목표를 이어받아서 그래서 그런지 선수들은 실망 대신 메달 획득을 좋아합니다. 스킵 김은정은 "스웨덴이 워낙 잘했다"며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합니다.

다른 종목에서도 선수들은 상대와 희비를 가른 것에 대해 생각보다 빨리 인정하며 다음을 위한 지렛대로 여기는 자세들이었습니다. 동메달을 수확한 쇼트트랙 서이라(화성시청)은 당당하게 "올림픽을 즐기겠다.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고다이라 나오(일본)에게 금메달을 내준 '빙속 여제' 이상화도 "고다이라는 성실한 친구"라며 상대를 인정합니다. 메달 대신 둘 사이의 우정이 더 주목받았죠.

한국을 대표해 나선 선수들은 세대를 지나오면서 가치관이 변하는 모양새입니다. 올림픽을 즐기고,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무대로 삼은 것은 소위 성적 지상주의에서 벗어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 됩니다. 예전 선배들처럼 "금메달을 꼭 따서 국민들에게 기쁨을 안겨드리겠다"는 류의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각오도 거의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회 시작 전 스켈레톤의 윤성빈은 금메달 기대감에 대해 "올림픽이라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월드컵 시리즈 중 하나인 것 같다"고 합니다. 과거였다면 올림픽에 대한 각오가 약하다고 대중으로부터 비판받을 이야기지만 이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트랙 레코드를 쓰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는 그 자체가 아이러니겠죠.

관중석에서 관중들은 패배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응원하거나 "괜찮아. 잘했어요. 다음이 있잖아요"의 말로 위로와 격려를 합니다. 과거처럼 '체력은 국력' 같은 이유로 메달권에 들지 못하거나 금메달이 아니면 '죽일 사람'처럼 되는 시대에서 확실히 벗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일로 뭇매를 맞고 있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의 한 관계자는 "대회 전 누구는 금메달, 은메달 이렇게 예상하는 것이 점점 무의미한 일이 되고 있다. 물론 그 예상들은 윗분에게 보고하는 용도인데 예상하지 못했던 선수들이 소위 '깜짝 메달'을 따는 것을 보면서 선수들과 대중들은 변하는데 단체만 그렇지 않은 건가 싶다. 짚어봐야 할 부분"이라고 자조하더군요.

다음 올림픽은 4년 뒤 중국 베이징, 하계까지 끼면 2년 뒤 일본 도쿄입니다. 아니군요. 당장 8월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립니다. 분명한 것은 성적에 목을 매는 시대에서 벗어나고 있는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져 참가의 의미와 색깔이 다른 메달이 모두 동등한 가치로 인정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조이뉴스24 평창·강릉=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사진 이영훈기자 rok6658@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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