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권혜림 기자] 이학주의 얼굴은 볼수록 묘하다. 쌍커풀 없이 긴 눈이 얼핏 매서워보이면서도, 멋쩍은듯 웃을 땐 교복을 입어도 어색하지 않을 소년의 표정이 간간이 읽힌다.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표현은 그가 가진 오묘한 인상들을 다 담기엔 조금 구태의연하다.
두려움에 질린 '12번째 보조사제'(감독 장재현, 2014)의 최부제, 맹목적 희망에 갇힌 연인을 보며 절규하던 '갈 수 없는 나라'(감독 송주성, 2017) 속 호재, 철부지 남동생이었던 tvN '오 나의 귀신님'(2015)의 경모, 속물적 욕망과 양심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단편 '티치 미'(감독 김민주, 2016)의 학원 강사 준열까지, 이학주가 그려낸 인물들은 그의 얼굴이 가지고 있는 어떤 복합적인 이미지들이 밀도있게 직조된 결과물 같다.
배우의 얼굴에서 여러 심상을 읽어내게 만드는 것은 다름아닌 그 자신이 남겨 온 궤적이다. 상업 영화와 드라마는 물론, 단편과 장편 독립영화를 통해 꾸준히 그려온 다양한 캐릭터들은 여전히 그의 눈에, 입가에, 고갯짓에 남아있다. 그 지워지지 않는 자국들은 나아가 그가 애초에 가지고 있던 것보다 더욱 넓고 깊은 폭의 이미지를 상상하게도 만든다.

그런 면에서 영화 '나를 기억해'의 고교생 동진이 지닌 입체성은 이학주라는 배우가 소화하기에 썩 어울리는 색깔의 것이었다. 극의 초반까지 모범생으로 보이는 동진은 이야기가 흘러가며 사건의 비밀을 숨긴 의뭉스런 캐릭터로 진화한다. 긴장감인지 분노인지 모를 서늘한 눈빛이 가끔 포착되고, 그에 대한 주변 인물의 설명이 결합되며 동진은 영화가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함정이자 반전의 키로 활약한다.
극의 초반과 중반, 후반 캐릭터의 기능이 극적으로 달라지는만큼, 이학주는 영화의 흐름에 따라 동진 역을 통해 보여줄 인상에 차이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극단적으로 달라져서도, 지나치게 미세한 변화만을 줘서도 안 됐다. 이학주는 "반전의 키(Key)인 만큼 그 간극을 조절하는 것이 힘들었다"며 "너무 변화가 커지면 반전을 노리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렵더라"고 동진 역을 완성한 과정을 돌이켰다.
"또래 배우들과 함께 작업해 즐거운 현장이었어요. 극 중 선생님인 서린 역 배우 이유영과는 거의 친구인 나이인데, 그 친구는 선생님을 연기하고 있고 저는 학생 역을 연기하는 것이 재밌기도 했죠. 이제 저는 전혀 학생같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학생 역에 어울린다고 봐주는 분들이 있어 다행이었어요. 학생 역 보조출연자 배우들은 실제로도 이제 막 스물이 됐을 어린 친구들이었거든요. 그 친구들을 보며 '내가 정말 이 친구들과 비슷하게 보이는 걸까?' 생각하기도 했고요.(웃음)"

극의 중반까지, 관객에게 동진은 동급생 세정(오하늬 분)의 대사에 의해 그 악행이 설명되고, 때로 오해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캐릭터다. 그런 면에서 동진은 자신의 배역과 상대 배역 뿐 아니라 이야기, 관객, 모두와 호응해야 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이학주는 "동진은 후반부를 제외하면 세정의 말에 의해 연기를 하는 사람이 되는데, 세정의 대사로만 볼 때는 '약간 나쁜 아이' 정도의 정보밖에 없겠더라"며 "어디부터 어디까지 만들어가야 할지 감독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답했다.
"그렇게 나쁘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정말 나쁜 사람 같더라고요.(웃음) 제게 그렇게 나쁜 표정이 있는 줄 몰랐어요. 그래서 만족스러웠다기보다는, 조금 깨달은 것 같아요. 그게 고마웠어요. 나도 모르는 새로운 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요. 나도 모르는 또 다른 내 모습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더 발전시켜야겠다고 생각했고요. 제게 더 많은 얼굴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얼굴을 하나씩 발견해나가야 할 것 같아요."
단편 독립영화 '밥덩이'(감독 양익제, 2012)로 데뷔한 뒤 그는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드라마 등을 부지런히 오가며 연기했다. '오 나의 귀신님'과 OCN '38사기동대' 등 드라마 출연작들은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영화 '날, 보러와요'에서의 임팩트 있는 활약으론 상업영화계에도 눈도장을 찍었다. 간간이 독립영화 작업도 이어왔다.
연기와 생활의 틈에서 그가 늘 품어 온 것은 '어떻게 하면 연기를 하는 역량이 커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었다. "농구도 하고, 책도 읽고, 서핑도 하고, 뭔가 계속 다른 것들을 하며 경험을 쌓으려 노력했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얼마 전 ('나를 기억해'에 함께 출연한) 김희원 선배가 그러더라고요. 연기가 좋아지기 위해선 사람의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고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물었더니, '잘 모르겠지만,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 늘 세수를 먼저 한 사람이라면 어느 날 이를 먼저 닦아보고, 아침에 김과 참치를 먹었다면 국수도 먹어보고, 그러다보면 관점이 바뀔 수 있다'고 하셨어요. 행동이 바뀌면 관점도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였죠. 연기력이 좋아진다는 건 결국 사람이나 사건에 대한 해석을 더 잘 하게 된다는 것인데, 그것들을 제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의 문제라는 이야기이기도 했어요."
'나를 기억해' 현장에서 김희원이 연기한 전직 형사 국철 역은 이학주가 맡은 동진 역과 극의 후반까지 거의 마주치지 않는 인물이었다. 이학주는 "김희원의 연기를 가까이서 보고 싶어 촬영장 동선이 겹치면 어떻게 연기하시는지 바라보곤 했다"고도 돌이켰다.

지난 2016년 영화 '날, 보러 와요'의 개봉을 맞아 만났던 이학주는 연기를 가리켜 "처음으로 발견한 재밌는 것"이라 표현하면서도 "재미는 흥미일 뿐이니, 언젠가 없어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러면 내가 무너질 수 있으니 배우라는 직업의 의의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좋은 영화들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며 "적합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계층, 어떤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러면 오랫동안 괜찮을 배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답하기도 했다.
당시의 이야기를 전하자 이학주는 "그 땐 거창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며 크게 웃어보였다. 그러면서도 "패기가 없어진 건지, 아직 그런 역량을 쌓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이라며 "처음에 했던 그런 아름다운 생각을 초심으로 여기고 방에 적어놓아야겠다"고 밝게 답했다.
"50세 전엔 그런(대표작이라 할만한) 작품을 하나 내놓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런 작품을 내놓으려면 그릇이 커져 있어야 하겠죠? 그릇이라는 게, 연기력과도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배우가 연기하는 것은 결국 모두 선택이고 해석인데, 악역이든 선역이든 많은 것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연기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부족함이 많아 채우는 중이지만요."
한편 이학주는 영화 '지하주차장'과 '뺑반'으로도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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