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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그 후]'허스토리'·'미쓰백'…스크린 누빈 女캐릭터


팬덤의 단체관람, 여성 영화인 활약 향한 관객들의 지지 빛나

[조이뉴스24 권혜림 기자] 2018년은 문화예술계가 페미니즘의 거대한 바람을 맞이한 때로 기록될 법하다.

꾸준했던 문제제기가 폭발력을 띤 해였다. 수 년 전부터 영화계에선 여성 중심 서사의 부재와 여성 배우들의 취약한 입지가, 가요계에선 갈수록 평균연령이 낮아지는 아이돌 가수들의 성상품화가, 연예계 전반에선 성상납 비리 및 강요 등의 성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올랐다.

조이뉴스24는 창간 14주년을 맞아 올해 문화예술계의 가장 큰 진보적 움직임으로 기록될 여성주의 물결에 주목했다. '미투(Me, Too)' 그 후의 상황 진단, 연예계 성평등 문화 정착을 위한 정책적 움직임을 비롯해 영화와 드라마, 예능 등 문화콘텐츠 속 여성의 재현 역시 들여다봤다.

2018년 문화예술계를 휩쓴 여성주의 담론은 산업 현장의 여성 노동자들이 처한 처우 뿐 아니라 문화콘텐츠상에서 재현되는 여성의 모습도 더욱 날카롭게 주시했다. 상업 영화나 TV 드라마 속 여성의 재현은 문화계 중심에 있는 주류 창작자(혹은 창작 자본, 창작 권력)가 대한민국 여성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감지할 수 있는 척도이기도 했다.

영화계에서는 투자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는 탓에 흔히 만날 수 없는 여성 감독·주연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관객들의 움직임도 관찰됐다. 여성 영화인들이 결집한 영화들에 의식적인 관심을 보내는 이런 흐름은 영화의 팬덤 생성으로도 이어졌다. 관객들이 단체관람을 위해 영화관을 임대하거나 SNS를 통해 '함께 보기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허스토리'·'미쓰백', 관객과 함께 가다

'허스토리'와 '미쓰백'은 여성 영화인 주체들의 활약이 여성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낸 케이스였다. 지난 6월 개봉한 영화 '허스토리'는 역사상 단 한번 일본 재판부를 뒤흔든 관부재판 실화를 담은 작품. 지난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 동안 23회에 걸쳐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벌인 조선 위안부·정신대 할머니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싸운 사람들의 끈질긴 법정 투쟁을 다룬 영화다.

공식 개봉 후 흥행 난항을 겪었던 영화는 33만여 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지만, '허스토리'를 응원하는 관객들의 결집은 팬덤 '허스토리언'을 낳았다. 배우들이 참석하는 무대인사에는 여느 아이돌 배우들의 행사 못지 않게 많은 관객들이 참석해 뜨거운 호응을 보냈다. 단체관람 역시 이어졌다. 원고단장 문정숙 역의 김희애를 비롯해 김해숙·문숙·예수정·김선영 등 출연 배우들이 두루 팬들의 관심을 얻었다.

기존 영화들과 달리 중장년 여성 배우들을 전형적 캐릭터 안에 가두지 않은 영화의 선택 역시 관객들의 지지를 얻었다. 뛰어난 연기력을 지닌 남성 중장년 배우들은 그간 여러 영화들을 통해 쉼 없이 다채로운 캐릭터를 선보여왔다. 반면 빼어난 실력을 갖춘 여성 배우들이 그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자랑할 공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허스토리'를 향한 팬들의 호응은 바로 그 지점을 환기해낸 유의미한 움직임이었다.

지난 10월 개봉한 '미쓰백' 역시 관객들의 '함께 보기' 운동으로 흥행 역주행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는 스스로를 지키려다 전과자가 된 미쓰백 백상아(한지민 분)이 세상에 내몰린 자신과 닮은 아이 지은(김시아 분)을 만나게 되고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참혹한 세상과 맞서게 되는 이야기다. 영화를 연출한 이지원 감독을 비롯해 주연 배우 한지민과 김시아가 모두 여성이다.

'미쓰백'은 학대당하는 어린 아이를 보살피는 여성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인물의 감정을 모성애의 감정에 가두지 않았다는 평을 얻고 있다. 가정 폭력의 생존자로서 소녀 지은과 연대하는 상아의 모습이 도리어 많은 여성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관객들은 '미쓰백'의 티켓을 구매해 다른 네티즌에게 선물하는 이벤트를 펼치는가 하면 영화의 손익분기점 돌파를 위해 관람 계획을 논의하는 등 적극적인 소비를 이어가고 있다.

'박화영'·'마녀', 고정관념 비켜간 캐릭터들

지난 6월 개봉한 '마녀'와 7월 개봉작 '박화영'은 모두 여성 배우 원톱 영화다. 두 작품은 각 주인공이 그간 답습돼 온 고정관념을 일부 탈피한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여성주의적 메시지를 담은 서사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지만, '박화영'의 박화영(김가희 분) 혹은 '마녀'의 자윤(김다미 분)이 보이는 파괴력은 그간 한국영화의 여성 주인공들에게선 찾을 수 없는 유형의 에너지였다.

'박화영'은 '가출팸'의 리더이자 가출 청소년들에게 거주 공간을 제공하는 여성 청소년 화영의 일상을 따라간다. '가출팸'을 소재로 한 여느 영화들처럼 아이들은 공동체의 리더에게 부모의 지위를 부여하고, 화영 역시 '엄마'로 불리며 군림하는듯 보인다. 하지만 화영은 언제든 무리로부터 버려질 수 있다는 불안에 휩싸인 채 위악적인 행동들을 통해 필사적으로 자존감을 지키려 하는 인물.

영화가 모성 결핍을 겪은 화영의 이야기를 비추고, '엄마'라 불리는 화영이 스스로 모성의 역할을 대리하려 한다는 지점은 관습적이다. 하지만 그간 주로 남성 청소년으로 재현됐던 리더를 여성으로 그렸다는 점이나 꾸밈 노동에 복무하지 않는 여성 청소년 화영이 포스터를 장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새롭게 다가온다.

반면 '마녀'는 서사와 인물의 구성에서 성별 이데올로기가 진입할 틈을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다. 주인공이 소녀가 아닌 소년이었다 해도 어색하거나 틀어질 구석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마녀'의 성별 전복은 기계적으로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이 여성 배우들을 더욱 다양한 캐릭터로 활용할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한다.

영화는 시설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은 의문의 사고, 그날 밤 홀로 탈출한 후 모든 기억을 잃고 살아온 고등학생 자윤의 앞에 의문의 인물이 나타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자윤은 지능과 신체 능력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존재로 태어난 캐릭터다. 극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자윤의 액션 시퀀스는 단지 주체의 성별만이 바뀌었을 뿐 기시감이 이는 장면들임에도, 나름의 전복적 쾌감을 안긴다. 극 중 자윤이 단 한 순간도 성애화되지 않는다는 점,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욕망에 집중하는 여성 캐릭터라는 사실은 '마녀'의 가장 큰 미덕이다.

'리틀 포레스트'·'소공녀', 여성 캐릭터에서 출발한 보편성

'리틀 포레스트'와 '소공녀'는 2018년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모습을 비춘 작품들로 사랑 받았다. 두 영화 모두 여성 인물의 삶을 소재로 삼았고, 나란히 성별을 관통하는 보편성 메시지를 던졌다.

지난 2월 개봉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아가씨'를 통해 충무로 라이징스타로 떠오른 김태리의 주연작이었다. 시험, 연애, 취업까지 뭐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혜원(김태리 분)이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고향으로 돌아와 오랜 친구인 재하(류준열 분), 은숙(진기주 분)과 특별한 사계절을 보내며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극 중 김태리가 연기한 혜원은 도시의 일상을 뒤로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캐릭터다. 어린 시절 친구 재하와 은숙을 만나 직접 재배한 작물을 한 끼 한 끼 정성껏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잊고 있던 엄마와의 기억을 떠올리고 친구들과 마음을 나누며 조금씩 성장해 간다.

도시의 혜원이 느끼는 고민들은 현 시대 한국 청년들이 두루 공감할만한 지점들이다. 취업난과 주거난, 불안과 경쟁에까지 내몰린 청년들의 애환은 혜원의 과거를 통해 그려진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귀향한 혜원의 모습은 성별 불문 2030 관객들에게 대리만족에 가까운 평온함을 안긴다. '리틀 포레스트'는 150만 명 이상의 총 관객을 동원해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지난 3월 개봉한 '소공녀' 역시 여성 주인공을 통해 막막한 현실을 살아가는 청춘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였다.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고향행을 택한다면, '소공녀'의 미소(이솜 분)는 집을 포기한 채 친구들의 집을 하나 둘 찾아가며 생활을 이어나간다.

집만 없을 뿐, 일도 사랑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현대판 소공녀 미소의 도시살이는 때로 숨막히게 불안하고 막막하다. 미소에겐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한 모금의 담배, 남자친구 한솔(안재홍 분)의 존재가 행복이다. 영화는 길과 집, 그 중간쯤의 삶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미소의 이야기를 통해 '소확행(소박하고 확실한 행복)' 뒤에 감춰진 해소되지 않는 문제들을 멀찍이 비춘다. 청년들의 도시살이 속 팍팍함을 '리틀 포레스트'와는 또 다른 방향으로 응시한 작품이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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