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공기살인', 실화라 더 가슴 아픈 가습기 살균제 人災

[조이뉴스24 김지영 기자]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모두가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보면서 가슴 아프고 분노가 치미는 동시에 깊숙한 곳에서 울림이 느껴진다. 영화 '공기살인'이다.

영화 '공기살인'은 봄이 되면 나타났다 여름이 되면 사라지는 죽음의 병의 실체와 더불어 17년간 고통 속에 살아온 피해자와 증발한 살인자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한 사투를 그린 영화.

극 중 대학병원 교수 정태훈(김상경)은 하루아침에 아내를 잃고 어린 아들은 혼수상태에 빠졌다. 오랜 기간 건강이 좋지 않았던 아들은 급성 폐 질환이라는 진단명이 나오고, 아내 역시 이와 같은 이유로 숨을 거뒀음이 드러난다.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건강검진에서 이상이 없었던 아내는 왜 갑자기 폐가 굳어버렸을까. 병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하나씩 파헤치던 정태훈은 아내와 비슷한 피해자가 여럿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병의 실체에 다가간다. 알 수 없는 바이러스인 줄로만 알았던 병은 뜻밖에도 인재(人災)였다.

영화 '공기살인'은 국내에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 '균'을 각색해 스크린으로 재탄생했다. 해당 사건은 1995년부터 2011년까지 약 천만 통이 판매되면서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를 잡았던 가습기 살균제에 폐 섬유화를 진행하게 하는 성분이 있었던 것으로, 피해자만 백만여 명이 넘는다. 생활용품 중 화학물질 남용으로 인한 세계 최초의 환경 보호 사건으로 기록된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화학 참사이기도 하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재구성한 만큼, 관객에게 전해지는 메시지는 더욱 강렬하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어가는 특정 집단, 이유를 찾기 위해서 사방을 뛰어다니고 나서야 드러나게 된 원인, 가해가 명확함에도 피해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 끝나지 않는 분쟁은 가슴 속 깊은 곳을 저릿하게 만든다. 특히나 최근 3년간 코로나19 피해를 겪어 온 만큼, 극 중 피해자들의 아픔이 더 가까이 느껴진다.

줄거리만으로 밝지 않은 이야기임이 느껴지지만, 마냥 어둡지 않은 '공기살인'이다. 병의 원인을 쫓아가는 과정은 흥미롭고 가해 집단과 맞서는 피해자를 응원하게 만든다. 극 중간중간 그려진 가슴 아픈 사연들은 눈물샘을 자극하고 극 말미 예상치 못한 반전은 충격을 선사한다. 영화적 재미와 실화 소재의 핵심 메시지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적당한 선을 유지한다.

'살인의 추억', '화려한 휴가' 등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던 김상경은 이번 작품에서도 영화를 힘있게 끌어간다. 그의 처제로 등장하는 이선빈과 함께 사건을 파헤치고 가해 집단과 맞서며 정의로운 인물을 소화했다. 극 중반부를 넘어서선 영화적 재미를 함께 선사하기도 한다.

윤경호 역시 이번 작품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다. 대기업의 더러운 일을 처리하는 기회주의적 인물로 그려지는 서우식을 사실적으로 표현함과 동시에 극적인 반전을 부여, 극에 더욱 몰입케 한다. 특히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난 후 눈물을 터트리는 장면에서는 윤경호의 진가가 드러난다.

실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피해자는 존재하고, 이를 다룬 '공기살인'은 피해자들에게 포기하지 말자고 힘을 준다. 그리고 같은 일을 반복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짐과 동시에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며 정부 부처와 대기업에 경고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영화 '공기살인'은 오는 22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