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김양수 기자] 한국 시간 7월 20일 새벽 4시, 2026 북중미 월드컵의 마지막 무대가 열린다.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와 2010년 이후 16년 만에 세계 정상에 도전하는 스페인이 뉴욕·뉴저지 스타디움에서 맞붙는다. 한 시대를 더 이어가려는 리오넬 메시와 새로운 시대를 열려는 스페인이 맞붙는 세기의 대결로 기대된다.
90분 동안 22명의 선수가 입고 뛰는 축구 유니폼은 어쩌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동시에 지켜보는 패션쇼라고 할 수 있다. 명품 브랜드의 런웨이는 몇 분이면 끝나지만, 월드컵의 런웨이는 땀과 비, 태클과 환호 속에서 90분 이상 계속된다. 각 팀의 유니폼에는 그 나라의 역사와 국민의 자부심, 심지어 오래된 믿음까지 바느질되어 있다.
![승리 후 포효하는 리오넬 메시. [사진=연합뉴스]](https://image.inews24.com/v1/5013c2293668c0.jpg)
영국에서는 축구 유니폼 한 벌을 특정 활동에 필요한 '장비 한 세트'를 뜻하는 키트(kit)라고 부르기도 한다. 셔츠와 반바지, 양말을 모두 갖춰 입어야 경기에 나설 수 있으니 축구선수에게 옷은 장식이 아니라 장비인 셈이다. 홈경기용은 홈 키트(home kit), 원정경기용은 어웨이 키트(away kit)라고 한다. 잉글랜드의 키트는 흰색이며, 가슴에는 국가대표팀을 상징하는 크레스트(crest)가 새겨져 있다. 크레스트는 방패나 투구 위에 붙이던 가문의 표식에서 유래한 단어다. 문장에 새겨진 세 마리 사자 때문에 잉글랜드 대표팀은 'the Three Lions'라고도 불린다. 그 위에 놓인 별 하나는 1966년 월드컵 우승을 뜻한다. 작은 별 하나지만, 그 안에는 반세기가 넘는 기다림과 자부심이 새겨져 있다.
아르헨티나의 유니폼은 하늘색과 흰색의 줄무늬로 유명하다. 알비셀레스테(La Albiceleste)는 국가대표팀의 애칭으로, 스페인어로 흰색을 뜻하는 albo와 하늘색을 뜻하는 celeste가 합쳐진 말이다. 유니폼 색깔 자체가 국가대표팀의 이름이 된 셈이다. 아르헨티나가 하늘색과 흰색 줄무늬를 대표 유니폼으로 정착시킨 것은 1908년으로 알려져 있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선수들은 바뀌고 패션의 유행도 변했지만, 정체성은 반복해서 돌아오듯 줄무늬(stripes)는 전통으로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번 준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는 익숙한 하늘색 줄무늬 대신 짙은 남색(navy blue)의 원정 유니폼을 입었다. 아르헨티나의 남색 유니폼에는 꽤 극적인 유래가 있다. 1986년 월드컵 잉글랜드전을 앞두고 아르헨티나는 무더운 날씨에 맞는 가벼운 원정 유니폼을 구하지 못했다. 결국 코칭스태프가 멕시코시티의 상점을 돌아다니며 평범한 파란색 셔츠를 급히 사 왔고, 그 위에 아르헨티나축구협회 문장과 반짝이는 은색 번호를 붙여 유니폼을 완성했다. 그렇게 즉석에서 만들어진 키트를 입고 마라도나는 '신의 손'과 '세기의 골'을 축구 역사에 남겼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 유니폼 가운데 하나가 최첨단 디자인실이 아니라 동네 상점에서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기억 때문에 아르헨티나의 남색 유니폼은 단순한 어웨이 키트를 넘어 "이 옷을 입으면 잘될 것 같다"는 믿음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축구 유니폼을 일상복처럼 입는 스타일을 블록코어(Blokecore)라고 한다. bloke는 영국에서 평범한 남자를 친근하게 부르는 속어로 '동네 형'이나 '평범한 아저씨' 정도의 느낌에 가깝다. 한때 '축구 보러 가는 아저씨 패션'이라며 촌스럽다고 여겨졌던 조합이 젊은 세대의 스트리트 패션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제 마지막 결승 무대에는 하늘색과 흰색의 'La Albiceleste'와 붉은 군단 'La Roja'가 오른다. 아르헨티나는 남색 키트로 큰 산을 넘었지만, 결승에서는 다시 자신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 패션도 축구도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를 입고 보여주는 일이다.
결승전의 승자는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만, 유니폼은 그 찬란한 순간을 역사로 남긴다. 7월 20일 새벽, 한 시대의 마지막 페이지와 새로운 시대의 첫 문장이 같은 잔디 위에서 펼쳐지고, 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블록코어 룩 역시 하늘색과 붉은 물결로 장관을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
![승리 후 포효하는 리오넬 메시. [사진=연합뉴스]](https://image.inews24.com/v1/1d33d3860ea3e4.jpg)
◇ 조수진 소장은 베스트셀러 '패션 X English'의 저자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영어교육 전문가 중 한 명이다. 특히 패션과 영어를 접목한 새로운 시도로 영어 교육계에 적지 않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펜실베니아 대학교(UPENN) 교육학 석사와 스톡홀름 경제대학교(SSE) MBA 출신으로 (주)일미푸드의 대표이사와 '조수진영어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김양수 기자(lia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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