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8년]배번 8번의 슈퍼스타① 최강 미드필드의 상징 '8번'


[이성필기자] 축구에서 등번호 8번은 보통 미드필더가 주인인 경우가 많다.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의 상징적인 배번이다.

8번은 공격의 맥을 잡는 역할을 한다. 9~11번으로 대표되는 공격수들을 조율하며 때로는 직접 상대 문전으로 침투해 골까지 넣는 다재다능함을 보유해야 한다. 킥 능력까지 좋으면 일품이다.

'지구방위대'로 불리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명문 레알 마드리드의 8번은 '하얀 펠레' 카카다. 카카는 레알 입단식에서 5만여 관중의 환영을 받으며 8번을 부여받았다. 2009년 여름 입단하면서 기록한 이적료만 무려 6천700만유로(당시 환율 기준 1천200억원)였다.

최근 기량이 다소 떨어지면서 AC밀란(이탈리아)으로 돌아간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지만 브라질 대표팀에 복귀해 완숙한 기량으로 실력 과시중이다.

스페인대표팀과 FC바르셀로나의 핵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도 빼놓을 수 없는 '8번' 스타다. 이니에스타는 유소년 시절 고향팀 알바세테에서부터 8번을 달았다. 결혼도 지난 7월 '8일'에 하며 8번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잉글랜드 대표팀 미드필드의 쌍벽 스티븐 제라드(리버풀), 프랭크 램파드(첼시)도 모두 소속팀에서 8번이다. 리버풀과 첼시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제라드는 기성용(스완지시티)이 가장 존경하는 미드필더다. 그는 SNS계정을 '기라드'라고 만드는 등 제라드의 플레이에 매료된 선수다.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은 팬들 사이에서 램파드에 빗대 '구파드'로 불린다.

현재는 10번을 달고 뛰는 웨인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2006년에는 8번을 달고 뛰었다. 대표팀에서는 9번이었다. 갈수록 공격 능력이 극대화되면서 등번호가 변경된 케이스다.

국내에서는 안정환이 프로 데뷔 시절 8번을 달고 뛰었다. 2008년 오랜 해외 생활을 정리하고 부산 아이파크로 복귀한 후에도 초심을 잃지 않겠다며 8번을 달고 나섰다.

K리그 팬들에게 사랑받는 주요 외국인 선수들도 8번을 달고 뛴다. 한때 귀화까지 검토했던 에닝요(전북 현대)와 아디(FC서울)가 8번을 달고 뛴다. 아디는 수비수이지만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8번을 달았다. 아디가 부상으로 나서지 못할 때 FC서울 동료들은 아디의 등번호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연습을 할 정도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시민구단 대전시티즌은 8번이 팀 그 자체다. 대전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시리우스' 이관우가 달았던 번호다. 2006년 여름 이관우가 수원으로 이적해 공석이 된 번호는 그 해 말 영입된 공격수 '데빡이' 데닐손에게 돌아갔다. 데닐손은 "내게 8번을 달라"라며 강력한 자신감으로 무장했다. 이듬해 2007년 대전은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데닐손은 1등 공신이 됐다. 이후 대전의 8번은 그 무게감으로 인해 선수들이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바뀌고 있다.

이 외에 윤빛가람(성남 일화), 김정우(전북 현대) 등이 대표팀에서 8번을 달기도 했다. 특급 유망주로 FC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서 활약중인 백승호도 롤모델 이니에스타를 따라 8번을 달았다.

북한의 유명한 배번 8번 선수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 진출의 주역 박두익이다. 그는 이탈리아전에서 결승골을 터트리며 아시아 국가 최초 월드컵 8강을 이끌었다. 포르투갈과 8강전에서 3-5로 역전패했지만 이미 박두익은 영웅이었다. 오죽하면 40년이 지난 뒤 포르투갈의 에우제비오가 "이름은 잊고 있었지만 등번호 8번은 기억한다"라며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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